공정위, 쿠팡 총수로 김범석 의장 대신 법인 지정
외국인 지정 어려운 현행 동일인 제도 탓
공정위 "동일인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화 작업 추진"
쿠팡이 각종 법 규제의 집중 대상이 되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지만, 실질적 소유주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총수(동일인) 지정을 피했다. 현재 동일인 지정제도는 '국내용'으로 만들어져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더라도 관련 법을 집행할 수 있을지가 불명확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이번 쿠팡 동일인 지정을 계기로 동일인의 정의, 요건 등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쿠팡 총수, 김범석 아닌 쿠팡 법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71개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을 다음 달 1일자로 지정한다고 29일 밝혔다. 대기업집단은 지난해보다 7개 늘었는데, 쿠팡도 올해 대기업집단에 새롭게 지정됐다.
하지만 공정위는 쿠팡의 동일인(총수)으로 김 의장 대신 쿠팡 법인을 지정했다. 김 의장은 쿠팡 전체 지분의 10.2%, 차등의결권 적용 시 76.7% 의결권을 가진 실질적 소유자이지만 동일인 지정을 피한 것이다.
동일인은 대기업집단 지정 자료와 관련된 모든 책임을 지며, 동일인이 누구냐에 따라 특수관계인, 총수 일가 사익편취 제재대상 회사도 바뀐다.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됐다면 그의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의 거래에 대한 공시를 해야 했다.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은 핵심 이유는 그가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선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다만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현행 경제력 집중 억제시책은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면서 "동일인을 지정하는 것은 처분(가능)성이 있는 일종의 법률행위로서 법적인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아마존코리아나 페이스북코리아 자산이 5조 원이 넘었다고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를 동일인으로 지정해 형사제재 대상으로 지정할 것인지 등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집단 지정자료에 허위·누락이 있으면 동일인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데, 현실적으로 외국인에게 형사제재를 내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문화에 특화된 '국내용' 제도... 동일인 개념도 불명확
이 같은 문제는 30여 년 전 만들어진 동일인 지정제도 자체가 갖는 한계 때문이다. 동일인 제도는 과거 정부가 소수의 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불균형 성장정책'을 실시하면서 형성된 특수한 기업집단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애초 태생 자체가 한국의 기업문화에 특화돼 있는 것이다. 이후에도 외국인이 동일인으로 한 차례도 지정된 사례가 없을 정도로 '국내용' 제도에 머물렀다.
동일인 개념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단지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에 대한 정의를 통해 '사실상 그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자연인 혹은 법인'으로 해석 가능한 정도다. 이 때문에 동일인 지정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기존 재벌과 다른 정보통신(IT) 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상황에 동일인 제도만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네이버, 카카오 등은 순환출자, 친족 경영 등 기존 재벌 그룹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데 같은 규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쿠팡 계기로 공정위 "제도 개선하겠다"
공정위도 동일인 제도 손질에 나섰다. 공정위는 이날 연구용역을 통해 동일인의 정의·요건·확인·변경 절차 등 구체적인 제도화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특히 "실제로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을 때에 과연 법 집행이 가능한 건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점은 없는 건지, 전체적으로 고려해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IT기업 등 신생기업에 다른 잣대를 대야 한다는 지적에는 난색을 보였다. 김 부위원장은 "IT 기업들은 특정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점, 소유·지배구조가 보다 단순하고 투명하다는 점에서 개선된 점이 보이는 건 분명하다"면서도 "승계나 사익편취,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문제가 향후 이들 기업에서도 일어날 수 있어 (기존 재벌과) 달리 볼 필요는 없다는 게 공정위 입장"이라고 했다.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되지 않은 것이 낡은 제도가 아닌 공정위 의지 탓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외국인도 국내법을 위반하면 똑같이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외국인이라서 형사 처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포기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제도상으로도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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