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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가치 없는 가상화폐 거래, 규제 서둘러야"

입력
2021.04.29 16: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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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의 응시]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인터뷰

이병욱 교수는 26일 서울 서대문구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코인 거래는 중국처럼 거래소를 폐쇄하거나 규정을 정해 시세조종꾼과 무분별한 상장을 없애지 않으면 이번 같은 혼란을 반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이병욱 교수는 26일 서울 서대문구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코인 거래는 중국처럼 거래소를 폐쇄하거나 규정을 정해 시세조종꾼과 무분별한 상장을 없애지 않으면 이번 같은 혼란을 반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지난 13일 비트코인 시세가 8,074만 원을 찍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1,000만 원대이던 가격이 8배나 뛰어오른 것이다. 또 다른 가상화폐 도지코인은 일론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폭등세를 이어가며 올해 들어 60배 올랐다. 한컴에서 만든 아로와나 토큰은 최근 국내 코인거래소에 50원으로 상장돼 30분 만에 가격이 5만3,800원으로 뛰었다. 상승률이 무려 10만7,600%다.

가상화폐 거래의 높은 변동성에 솔깃해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나는데도 거품을 걷어내고 투기를 차단할 방법이 묘연하다. 관련 제도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3년 전 가상통화 거래 금지를 꺼냈다 투자자의 반발이 거세자 "자기 책임하에 신중하게 판단"으로 물러섰다. 다시 코인 가격 상승이 문제가 되자 이번에도 똑같이 "거래소 폐쇄" "자기 책임"이 반복된다. 여당에서는 투자자 보호를 앞세워 정부와 엇박자까지 놓고 있다.

이런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코인 거래의 제도적 관리와 규제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블록체인 해설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가상자산의 실체 2/e'를 낸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를 만나 코인 열풍의 실체는 무엇인지, 투기를 진정시키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들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의 이 교수는 1999년 국내 최초로 실시간 보험료 비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험넷'을 만들었고, 이후 삼성생명 등 여러 보험사에서 상품, 서비스 개발을 총괄한 공학 전공의 금융전문가다.

-코인 논란이 3년 만에 재연됐다. 왜 이런 사태가 반복되나.

“요즘처럼 새로운 기술이 급격히 나타날 때 정책 당국에서 정체성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보여준다. 가전제품 고장 날까 무서워 잘 못 다루는 것처럼 기술을 모르니까 두려워 접근 못하는 측면이 있다. 행정, 사법 관료에 기술 전문가가 보강되지 않는다면 유사한 문제는 계속 나타날 것이다. 분명 사기 같은데 기술이라고 하니 의아해하면서 자문에만 의존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자문이란 이견이 존재하고 이해당사자들의 왜곡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만 보낸 거다.”

-정부가 마냥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나.

“정체를 잘 모르니 민법상의 사적 자치에 맡겼다. 돌멩이를 돈을 주고 사는 것에 개입할 건 아니라는 식의 접근이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일본, 중국 정도를 제외하면 전 세계가 코인을 물품으로 본다. 화폐가 아니라는 거다. 섣불리 개입해 금융상품처럼 보이면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마침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해 각국에 자금세탁과 테러자금 조달 방지 대책을 강구하도록 촉구했고 그래서 나온 것이 지난달 시행에 들어가 현재 6개월 유예 기간인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다. FATF는 투자자나 가상자산시장 보호를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나라가 투자자 보호는 등한시하고 그동안 자금세탁 방지에만 집중했다.”

-가상화폐의 정체를 모르는 것이 관리가 부실했던 이유인가.

“국내 정책이 해외의 대세를 따라 가는 편인데 미국, 유럽이 물품으로 보고 사적자치로 내버려 두니까 우리만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기 어려운 측면도 없지 않았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선제적으로 개입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을 모른다고 판단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기술이냐 사기냐 논란을 걷어내고 코인이 활성화됐을 때 과연 사회에 무슨 이득이 있느냐를 보면 된다. 코인 발행 업체나 거래소는 일자리 창출과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 육성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카지노 일자리를 늘린다고 반드시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듯 늘어나는 일자리가 가치 있는 일자리여야 한다.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은 지금 코인시장과는 무관하다.”

-어떤 규제 공백이 문제인가.

“대표적으로 코인거래소의 시세조작이다. 고소ㆍ고발이 많다. 그런데 시세조작을 확인하고도 처벌을 못했다. 관련 법 조항이 없어서다. 문제가 되면 대부분 사기죄로 기소된다. 그러면 코인거래소는 마켓메이킹을 했다고 주장한다. 증권시장에 허용된 것처럼 거래활성화를 위한 시세조작이라는 거다. 하지만 증권시장에서는 이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가를 받아야 하고 거래 폭도 제한이 있다.

그런데 마켓메이킹이라고 하면 먹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거래가 한 거래소에서만 200조를 넘는다. 규제받지 않은 마켓메이킹은 시세조작일 뿐인데도 결과적으로 합법이 된다. 예전에는 겁먹던 거래소들이 지금은 대놓고 한다. 시장이 엄청나게 활성화된 것도 그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하루 매매회전율은 보통 전체 자산 대비 0.3~0.4%이고 많을 때도 2%를 안 넘는다. 코인시장은 40~50%다. 2, 3일에 한 번씩 다 샀다가 팔았다가를 반복한다. 여기 들어온 사람은 빨리 수익 내고 빠지려는 목적뿐이다.”

-제도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가상자산에 관한 업법권을 새로 만들자는 사람도 있지만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특금법은 원래 금융거래의 자금세탁방지에 한정한 법이었는데 가상자산은 금융이 아니어서 이번에 전문을 ‘금융거래 등’으로 고쳤다. 비슷한 방식으로 전자금융업자가 위변조 사고나 도난, 안전성 확보를 안 했을 때 책임지도록 한 전자금융거래법을 수정하는 방법이 있다. 가상자산 취급업자는 현재는 통신판매업자로 분류된다. 전에 한 거래소가 해킹당해 소송이 났을 때 판결이 전자금융업자가 아니어서 책임이 없다고 나왔다. 전자금융거래법의 전문을 ‘전자금융거래 등’으로 고쳐 가상자산 취급업자까지 포괄할 수 있다. 거래소 해킹은 지금도 엄청나다.”

-정부는 실명계좌 등록을 하지 않는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했다.

“당연한 것으로 본다. 실명등록 않는 거래소를 폐쇄하지 않는 것은 자금세탁 위험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금융시장은 기득권이 넘치기 때문에 금융실명제 같은 긴급조치가 아니면 시장을 바꿔가기 어렵다. 코인 시장도 비슷하다. 많은 이권이 이미 들어와 있다. 예를 들면 리플에는 대주주가 유럽 최대인 산탄데르은행, 구글벤처스, 소프트뱅크벤처스 같은 테크 기업이 다 들어와 있다. 그냥 없애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 재무부 금융범죄단속국(FinCEN)은 하나의 금융기관에서 다른 금융기관으로 자금이 갈 때 반드시 송신자의 모든 정보가 함께 가야 한다는 '트래블 룰'을 가상자산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게 기본 기조다. 자금세탁이 이 과정에서 일어난다.”

-가상화폐 과세 방침을 두고는 여당에서도 반발이 나오는데.

“많은 나라가 이미 세금을 매기고 있다. 소득이 발생하는데 과세는 당연하다. 일본은 최대 55%를, 미국은 37%를 매긴다. 우리는 지방세까지 해서 22%다. 지금 비과세하는 곳은 몰타, 버지니아아일랜드, 케이만군도 같은 조세회피처 정도밖에 없다.”

-국내 코인 거래 열기가 유난히 뜨거운 이유는 무엇인가.

“코인은 초창기부터 커뮤니티 위주로 활성화됐다. 입문하려면 대부분 누가 부자됐다, 몇 십억 벌었다, 어떤 코인이 좋다는 정보를 얻어야 한다. 한국은 경제력이 10위권이고 IT 문화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보니 그런 커뮤니티가 생겨나기 좋은 환경이다. 청년실업이 높아 돈 벌 방법이 많지 않은 것도 그런 풍조를 부추겼을 것이다. 이런 커뮤니티들에 젊은이들이 쉽게 노출된다. 가만히 있어도 감염이 될 수준이다.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의 내러티브 경제학에 대입해 이야기하면 이런 버블은 전염병과 같다. 확산되려면 퍼뜨리는 구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환경이 잘 발달돼 있는 거다. 그러다 보니 알트코인 대부분이 한국에서 상장을 한다. 해외에서도 국내 코인시장 참여가 적지 않다. 지난 4월에 중국으로의 외화유출액이 전달에 비해 10배 이상 늘어난 것은 중국인 참여가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부동산, 주식에 이어 코인에 뛰어든 젊은이들의 투자 행태를 어떻게 봐야 하나.

“변동성이 큰 자산에는 누구나 주목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 판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20, 30대 1,400만 명 중 코인 하는 사람은 200만 명이다. 코인 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우리를 이리로 내몰았다고 주장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가상화폐가 미래의 기술이고 금이기 때문에 코인 시장에 온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변동성이 주식보다 재미 있는 것이다. 규제의 공백은 당연히 메워야 하지만 그런 투자 책임은 스스로 질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정부와 투자자 사이 인식의 간극을 좁혀 가며 단계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제도권화를 서두르자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제도권화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다. 지금처럼 복마전이 아니고 사기꾼이 다 사라지고 깨끗한 시장이 됐는데도 똑 같은 수익이 날 것으로 생각하지만 세상에 그런 시장은 없다. 제도권화의 의미를 잘 전달하면서 제도권에 끌어들여야 한다.

완전 폐쇄하든지 그러지 못한다면 규정을 정해 시세조종꾼과 무분별한 상장을 없애 변동성을 사라지게 하고 사고가 나면 민형사 책임을 거래소에 지워야 한다. 이런 규제 장치를 만들어 지금 같은 변동성이 없어지면 올 사람도 없다.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잠시 수그러들었다가도 전염병 변이가 오듯 다시 나타나 똑같은 혼란이 되풀이될 것이다. ‘제도권화할 수 있다, 그러나 변동성은 사라질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명료하고 일관되게 내야 한다.”

-가상화폐를 두고는 긍정론과 부정론이 엇갈린다.

“가상화폐와 미래의 디지털 자산을 구별해야 한다. 가상화폐는 관이 주도하고 중앙집권적인 금융에 대항한다는 주장으로 공감을 얻고 있다. 미래의 디지털 자산이 이런 걸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가상화폐가 과연 그런 자산이냐는 거다. 이들은 제도권 금융이 문제라면서 제도권화해 달라고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한다. 지급결제용으로 만든 거라면 거래소 없이도 그게 가능해야 한다. 디지털 자산이라고 하면 어떤 목적의 기술인지도 밝혀야 한다. 극소수의 코인이 외화송금액 낮추려고 한다는 등의 목표를 밝혔을 뿐 대부분의 가상화폐는 코인을 발행해 되파는 기능 말고는 없다. 디지털 자산 사업 하겠다고 회사를 차려 기업공개(IPO)도 했는데 잘 안 되면 코인 발행하는 식이다.

제대로 된 디지털 금융을 하려면 이처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사라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중앙집권 금융 해결은커녕 일개 개인이나 회사에 종속되는 형국밖에 안 된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가상화폐를 김정은보다 더 독재적인 시스템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다들 공감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나와야 하고 그 기술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상화폐는 신기술이 아니라는 말인가.

“코인 하나 발행하는데 몇 시간이면 된다. 그 결정판이 만든 사람조차 장난이라고 한 도지코인이다. 도지코인은 3시간 만에 만들었다. 거기에 무슨 기술이 있나. 지금 코인의 대부분은 이더리움 ERC-20 기반 토큰이다. 숙련자는 반나절이면 되고 초보자도 일주일 공부하면 만들 수 있다. 대부분의 회사는 자기 매출을 늘려 투자자에게 이익을 돌려주는데 코인은 발행만 하면 알아서 고객이 모여든다. 그래서 기술 개발은 안 하고 코인만 발행하는 거다. 이렇게 발행되어 판매 대기 중인 것이 이더리움에만 40만 개가 넘는다. 아무런 사회적 가치가 없다는 소리다.

도박장의 유일한 승리자가 도박장 주인이듯 코인은 활성화하면 할수록 중개소와 코인 발행자만 배 불리고 청년들은 사지로 몰린다. 코인 발행자는 불로소득을, 중개소는 부당이득을 챙기는 거다. 일부 정치인들이 신기술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코인 거래자 눈치 보느라 건전한 상식을 뒤엎어서는 혼란만 더 부추길 뿐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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