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칠레-아르헨티나 국경 넘기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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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칠레-아르헨티나 국경 넘기 요지경

입력
2021.05.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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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파타고니아 자가 차량 여행법 5탄

비포장도로의 아르헨티나 로바요스 검문소(Paso Roballos)를 지날 때 받은 선물. 날개 달린 구름 천사가 길을 인도한다. ⓒ강미승

이 두 나라 국경에서는 여권 도장을 받을 때 모자를 써도 괜찮고, 이민 경찰관과 왁자지껄하게 대화를 즐길 수도 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사이,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국경의 천태만상이 펼쳐진다.

“여기 산티아고로부터 칠레 남단까지 쭉 내려가다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여행하는 게 좋아요.”

남미 여행자를 위한 비공식 가이드 포럼이 열리던 날, 중고차 거래업체인 수지 산티아고(Suzi Santiago)의 공동대표가 조언했다. 여기서 말한 ‘좋다’는 대체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는 가설이다. 칠레 차량을 보유한 외국인이 칠레 북쪽의 국경에서 페루나 볼리비아로 건너려면 실패할 확률이 80%다. 두 나라 사이 밀수 거래를 막기 위한 방침 때문이라는데, 그 역시 짐작일 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우기기와 오기로 절대 건널 수 없는 게 국경의 법칙. 우린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집중 공략하는 여행자로서 모범생처럼 기분 좋게 남쪽으로 직진했다.

중고차를 구입한 고객을 위해 중계업체 대표가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여행은 역시나 예측 불가다. 그이 말대로 따라 해도 언제나 문제는 발생한다. ⓒ강미승


‘바다를 나는 차가 있다면…’ 하루 한번 운항, 9일을 대기해야 하는 페리를 결국은 포기했다.

그런데 망했다. 길이 막혔다. 칠레 중부 오르노피렌(Hornopirén)과 칼레타 곤잘로(Caleta Gonzalo) 사이의 페리 예약이 꽉 차 있었다. 길고 얇은 칠레는 산이 전체 면적의 약 80%를 차지한다. 빙식곡(빙하의 침식 작용으로 횡단면이 U 자 모양이 된 골짜기)도 많다. 빙식곡이 침수돼 피오르가 생기고 땅이 두 동강난 지형이 흔하다. 이 부근도 그랬다. 파타고니아로 통하는 7번 국도가 산과 피오르의 영향으로 뚝 끊겼다. 대통령이라도 무조건 페리를 타고 건너야 한다(물론 전용기를 타겠지만). 페리는 야박하게도 매일 오전 9시30분 딱 한 대만 운항한다. 이쯤 되면 제 나라 땅이라도 맘대로 건너기 어렵다. 교통 상황만 따지면 칠레 사람들은 옆 나라인 아르헨티나를 제 나라로 여길 듯하다.

오늘만 사는 여행을 해온 우리로선 난처한 일이었다. 날짜를 넘겨 가며 배편을 검색했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9일 후에나 가능했다. 당시 우리의 위치는 오르노피렌에서 약 123㎞ 떨어진 코차모(Cohamó)란 작은 마을, 작전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마을에 틀어 박혀 이대로 기다릴 것이냐, 아니면 아르헨티나로 서둘러 건너갈 것이냐. 후자라면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서 국경을 넘어야 했다. 196㎞, 약 3시간이 걸리는 여정이다.

망설인 데에는 국경 문제도 있었다. 칠레 차를 보유한 외국인 여행자에게 유독 야박한 국경이 있다. 누구는 건너고 대다수가 못 건너는 로또 같은 곳이 있고, 아예 가능성이 제로인 국경도 있다. 대체 왜? 알 수 없다. 나라 사이의 길고 오래된 숙명과 더불어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비밀이 있었다. 결국 후자를 택했다. 아르헨티나로 건너는 첫 국경은 카르데날 사모레 검문소(Paso Cardenal Samoré). 중고차를 구입한 수지에 이 국경에 관해 물으니 답이 왔다. “No Problem!”

차량등록증인 빠드론이 발급된 후라면 세관 검사 시 빠드론과 함께 차량 허가 서류(가운데)만 보여주면 된다. ⓒ강미승


쓰레기통마저 뒤지던 짐 검사의 완결판 검문소(Paso Monte Aymond). 심장이 괜히 쪼그라들었다. ⓒ강미승


스탬프 부자를 꿈꾼다면 파타고니아 여행을 권한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똑같은 스탬프가 애석하게 반복되지만. ⓒ강미승


어디나 언제나 국경 넘기의 3단계

유럽에서 차를 몰면 가끔 어느 나라에 있는지 갸우뚱할 때가 있다. 국경이 불분명하다. 여권에 도장은 고사하고 그나마 구분이 되는 국기조차 펄럭거리지 않는다. 남미의 국경은 분명하다. 같은 언어권이라 해도 통화가 다르고 체류 기간을 명기한 여권 도장(스탬프)가 필요하다. 검문소 앞 차단기가 올려져 있다고 해서 그냥 통과하는 용기는 오만이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국경을 넘을 때마다 늘 긴장을 했다. ‘칠레 국적’이라는 차를 몰고 이동하는 까닭이다. 성가시다고 간단히 도로에 버릴 수도 없는 물건이다.

차와 함께 국경 넘기는 3단계를 거친다. 일단 국경을 넘을 자격이 되는지 여행자의 여권을 체크한다. 이후 차의 여권, 즉 차량등록증(빠드론)을 확인하는 세관 검사(Aduana), 이어 차를 샅샅이 뒤지는 짐 검사가 마지막 단계다. 빠드론이 발급되기 전, 첫 검문소에 섰다. 빠드론을 대체할 여러 서류를 한 뭉치 준비한 상태였다. 이때 세관 검사를 두고 시간을 질질 끌기도 한다는 첩보를 들은 바 있다. 고로 오전 11시경 방문을 권한다. 이들도 사람이다. 곧 점심 시간이 다가온다. 본능적으로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어지는 까닭에 국경 통과가 한결 수월해진다.

압수수색 수준의 짐 검사

총 3단계에서 우리를 귀찮게 한 것은 마지막 짐 검사였다. 애초 국경을 넘기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 함께하는 애완동물이 있다면 국경을 건너기 전 약 10일간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관련 등록 절차를 마쳐야만 허락된다. 다른 짐의 규제는 항공편을 이용할 때와 비슷하다. 씨앗이나 식물류, 꿀과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 고기, 생선, 야채류는 모두 금지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유류에 관해서다. 주유소를 찾기 힘든 오지에 대비해 차박 여행자는 대부분 20리터짜리 기름통을 따로 보유한다. 그러나 국경을 넘을 땐 통 안에 단 1%의 휘발유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를 망각한 채 국경을 넘다가 기부 천사가 된 바 있다. 이유를 물으니 산불 예방을 위해서란다. 참 희한한 이유를 같다 붙인다. 캠핑용 버너나 부탄가스는 왜 제재하지 않는 걸까.

칠레보다 휘발유 가격이 저렴한 아르헨티나. 그렇다고 비상용 기름통을 꽉 채워 국경을 넘다가는 탈이 난다. ⓒ강미승


짐 검사할 때 문제는 식량이었다. 사람에겐 음식물이, 차에겐 휘발유가 걸림돌이다. ⓒ강미승

어느 국경은 트렁크만 겨우 열었다 닫았다 하는 수고를 하고, 어느 국경은 가히 압수수색를 방불케 하는 조사가 이뤄진다. 어떤 국경을 만날지는 알 수 없다. 같은 국경이라 해도 검사자에 따라 다르고, 시간대마다 조사 스타일이 바뀌었다. 덕분에 국경을 건너기 전, 늘 미니멀리스트 생활자로 되돌아가야 했다. 냉장고를 비워 과일, 채소 등으로 늘 포식한 채 국경을 넘었다.

사람에게 허락된 시간 vs 차에게 허락된 시간

차를 몰고 신나게, 그리고 장기간 여행하다 보면 기본을 잊을 때가 있다. 우리의 국적과 차량의 국적이 다르다는 사실 말이다. 칠레에는 ‘차량 비자 규칙(Salida y Admisión Temporal de vehículos)’이 있다. 칠레를 벗어난 뒤 6개월 이내엔 돌아와야 한다. 기쁜 소식은 1시간만 칠레에 머물러도 된다는 사실. 만일 기한을 넘기면 어떻게 될까? 2년 후 칠레로 돌아온 여행자의 전설이 있다. 그가 낸 벌금은 고작 30유로(약 3만9,000원). 그러므로 많은 여행자들은 이 6개월 법칙을 정중히 어기고 계속해서 자기 길을 간다고 한다. 돌아왔다가 다시 갈 때 드는 휘발유 값과 시간이 벌금보단 몇 배의 값어치를 하기 때문이다.

차량 국적에 신경 쓰다가 자신의 국적을 간과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한국인이 남미 각 나라에 체류 가능한 기한은 90일이다. 만일 이를 어긴다면? 차의 목숨도 거기서 끝난다. 비싸게 어렵게 주고 산 금쪽 같은 차를 몰수 당한다. 울고 짜고 생떼를 부려도 안 돌려준다. 이때 경찰에게 뒷돈을 주며 넘어가 보려는 잔꾀도 애초에 접어두자. 남미를 여행하면 나라마다, 경찰마다 행태가 다르다. 뒷돈을 부업으로 삼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친절과 청렴을 목숨처럼 여기는 경찰도 많다. 이 부분에선 전 남미가 공통이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어떤 성역과 같은 느낌. 칠레에서 아르헨티나 바릴로체(Bariloche)로 향하는 국경선이 그러했다. ⓒ강미승


국경 넘을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기분 좋은 풍경이 있다. ⓒ강미승

국경 여행에 익숙해질 무렵, 국경을 넘는 일이 생각보다 길어지는 경험을 자주 했다. 우리 잘못이 아니었다. 풍경 탓이었다. 인간이 불모지라고 부르는 그곳엔 자연 본연의 아름다움이 자리했다. 카르데날 사모레 검문소(Paso Cardenal Samoré)를 넘을 땐 영화 ‘겨울왕국’의 주인공이 되는 신비를 접했고, 로바요스 검문소(Paso Roballos) 근방에선 자연 다큐멘터리 피디라도 된 듯 동물 관찰하기에 몰입했다. 마지막 꿀팁이 있다면 바로 이것. “카메라도 꼭 충전해두세요, 국경을 넘는 사이에 풍경이 폭발하니까.”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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