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말살 정책 한창이던 1931년
소학교 음악책 '초등창가'에 '이퇴계' 수록?
"일제도 퇴계 선생 인품과 도덕성 인정한 것"
일제강점기 소학교(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퇴계 이황 선생을 추모하고 존경한다는 내용이 담긴 악보가 공개됐다. 조선총독부의 민족 말살 등 식민지 정책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 발간된 것이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26일 한국국학진흥원과 경북유교문화원에 따르면 안동 고성 이씨 며느리인 류기남(65) 여사는 최근 1931년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 '초등창가(初等唱歌)'를 입수하고, '이퇴계'라는 제목의 악보를 발견해 공개했다.
해당 교과서는 경성사범학교 음악교육연구회가 조선총독부의 의뢰를 받아 편찬한 것으로 일본창가출판소와 오사카 보문관이 발행한 책이다. 이퇴계 노래는 교과서 내 수백개 수록곡 중 하나로 총 4절로 구성됐다. 노래는 경성여고 음악교사였던 오바 유노스케가 작곡하고 나가네 젠소쿠가 작사했다.
1, 2절에는 '어린 시절 항상심은 주위 사람보다 뛰어났네, 아버지 일찍 여의고 어머니의 자애를 한몸에 받았네, 엄한 숙부 교훈 가슴에 품고, 아침부터 밤까지 성현 학문에 몰두해 공부한 시간이 얼마일까'라는 가사로 퇴계 선생을 소개했고, 3, 4절에는 '학업을 갈고 닦은 보람이 있어, 이윽고 급제해 학업을 이루었네, 빛나는 그분의 인덕과 명예는 널리 알려졌네, 동해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사람들은 존경했네, 도산서원과 그의 공적은 얼마나 고귀할까 추모하네'라며 퇴계 선생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시대 최고 지성인으로 손꼽히던 퇴계이황을 기린 노래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것은 당시 일제도 퇴계 선생의 인품과 도덕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평가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박사는 "아이들의 인성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퇴계 선생의 노래가 실렸다는 것은 일제도 이를 인정한 것"며 "1930년대는 최고도의 식민지 관계가 형성됐을 시기인데, 그런 상황에서 이 같은 사료의 발견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조만간 해당 음악책 기탁식을 열고 일제강점기 당시 학술 연구자료 등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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