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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터키 집단학살' 표현 꺼낸 美... 바이든 '가치외교' 지역 정세 흔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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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터키 집단학살' 표현 꺼낸 美... 바이든 '가치외교' 지역 정세 흔드나

입력
2021.04.26 00:1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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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추모 성명 발표
1981년 레이건 이후 첫 집단학살 표현 사용 눈길

1915년 발생한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106주년을 맞은 24일 아르메니아계 시위대가 워싱턴 터키 대사관저에서 터키대사관까지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당시 사건을 '집단학살(genocide)'로 표현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1915년 발생한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106주년을 맞은 24일 아르메니아계 시위대가 워싱턴 터키 대사관저에서 터키대사관까지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당시 사건을 '집단학살(genocide)'로 표현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터키 전신인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박해를 ‘집단학살(genocide)’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대통령이 이 같은 단어를 쓴 것은 40년 만이다. 인권 문제를 중시하는 바이든 식 ‘가치외교’ 실천인 셈이다. 터키는 강력 반발했다. 터키의 지정학적 위치는 유럽에서 대(對)러시아ㆍ중동 최전선에 해당된다. 때문에 지역 정세 불안정 요인이 되지 않도록 미국은 관리도 병행했다.

동맹 터키 약한 고리 ‘집단학살’ 건드린 美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오스만제국 시대에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로 숨진 모든 이들의 삶을 기억한다”며 “미국민은 106년 전 오늘 시작된 집단학살로 목숨을 잃은 모든 아르메니아인을 기리고 있다”고 밝혔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인 1915~23년 오스만제국은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에 동조할 것을 우려해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이렇게 해서 1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숨진 것으로 추산되지만 터키는 집단학살을 부인해왔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24일 주말을 보내기 위해 머물고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브랜디와인 성요셉 성당에서 여동생 발레리와 함께 미사를 마친 뒤 돌아가고 있다. 윌밍턴=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24일 주말을 보내기 위해 머물고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브랜디와인 성요셉 성당에서 여동생 발레리와 함께 미사를 마친 뒤 돌아가고 있다. 윌밍턴=로이터 연합뉴스

문제는 터키의 전략적 가치다. 미국은 터키 인지를리크 공군기지를 활용해 이슬람국가(IS) 공습을 진행했고 러시아와 이란을 견제했다. 터키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해야 미 해군의 러시아 앞바다 흑해 진입이 가능하다. 터키는 세속화한 이슬람 국가이기도 하다. 19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에 가입한 뒤 미국의 동맹 역할을 해왔다. 미국 입장에선 터키의 전략적 가치가 그만큼 컸고 관계도 괜찮았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터키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학살 표현을 쓴 뒤 어떤 미국 대통령도 아르메니아인 추모 성명에서 이 단어를 쓰지 않은 이유였다.

바이든, 외교관계 흔들려도 인권 가치 중시

바이든 대통령은 달랐다. CNN방송은 “바이든은 터키와의 관계가 한 세기 전 아르메니아인들의 곤경을 입증하고, 오늘날 인권에 대한 약속을 나타내는 (집단학살이라는) 용어 사용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터키의 러시아제 S-400 지대공미사일 구입으로 양국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고, 바이든 대통령이 인권 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외교 원칙을 세운 것도 결정적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3개월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전화통화도 하지 않는 것으로 이미 강경한 태도를 취해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집단학살 성명 발표 후 “제3자가 정치화하거나 터키 간섭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맞섰다. 터키 외교부도 데이비드 새터필드 터키 주재 미국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해 1월 8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해 1월 8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다만 미국과 터키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터키가 당장 러시아나 이란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다. CNN은 “이번 (집단학살) 선언은 터키에 어떤 새로운 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고, 단지 외교적인 여파만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터키를 때리면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하루 전 에르도안 대통령과 취임 후 첫 전화통화를 하며 집단학살 표현 사용 방침을 미리 귀띔했다. 6월 벨기에 브뤼셀 나토 정상회의 참석 때 미ㆍ터키 정상회담을 갖기로 약속도 돼 있다. 또 성명에서 “우리는 비난을 던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어난 일이 절대 되풀이되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이 일을 한다”며 수위도 조절했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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