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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아닌 '집'이 필요하다

입력
2021.04.23 2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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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원룸.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성동구 원룸. 한국일보 자료사진


MZ세대가 아트테크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트테크는 예술과 재테크의 합성어로 예술작품을 감상의 용도뿐 아니라 투자의 목적으로도 구입하는 걸 말한다. 청년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미술 작품을 살까 싶지만 여럿이 돈을 모아 고가의 작품을 구매하는 공동구매 형식도 있다. 부자들의 취미 혹은 중장년층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미술 작품 구매가 젊은 세대에게까지 확대된 것은 보기 좋은 현상이다. 20대 30대를 겨냥한 골프웨어가 유행이고, 테니스와 승마 같은 스포츠가 어느 정도 대중화되는 걸 보면 취향을 통한 구별 짓기는 옛말인가 싶기도 하다. 이제 ‘고급 취미’ 같은 건 없는 걸까? 우리는 여가 앞에 평등한 세상에서 사는 걸까?

코로나 시대에 취미를 즐기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무엇보다 안전한 ‘집’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주거공간에서 현재보다 더 필요한 내부 공간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47%의 사람들이 취미, 휴식 및 운동공간을 꼽은 것에서 볼 수 있듯(부동산 애플리케이션 직방의 설문조사) 사람들은 집을 취미 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여긴다. 헬스장이나 공공운동시설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없는 코로나 시대에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모두에게는 정말 ‘집’이 있을까? 1인 가구 비율이 전체의 29.9%에 육박했다. 20대가 18.2%로 가장 많고, 30대가 16.8%로 그 다음이다. 이 1인 가구 중 상당수의 사람이 10평 이하의 원룸에서 산다. 서울시가 ‘서울 청년 월세 지원’ 신청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청년 신청자들이 사는 곳의 평균 크기는 7.3평이었다. 정부가 행복주택, 청년주택, 사회적주택 등의 주거 지원을 진행 중이지만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1인 가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청년이 10평 이상 규모의 주택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확률은 희박하다. 기본소득당 창당에 참여한 신민주 작가의 책 제목대로 이들은 ‘집이 아니라 방에’ 살고 있다.

방에서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은 무엇이 있을까?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사는 한 친구는 집에서 똑바로 누워 팔을 쭉 뻗으면 팔끝에서 발끝까지 모두 벽에 닿는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의 방 크기가 택시만 한가, 타다(TADA)만 한가는 술자리에서 재밌는 토론거리가 되었지만, 기약 없이 원룸에서 지내 온 경험이 있던 누구도 마지막까지 웃지는 못했다. 택시만 한 방에서 유튜브를 보며 요가라도 할라치면 밥상을 접고 이불을 개어야 할 테니까.

나는 열세 평 원룸에 넷이 사는 두 커플을 알고 있다. 한 명이 체조를 하면 나머지 셋은 일어나야 하는 그 방에서, 그들은 글도 쓰고 밥도 먹고 운동도 한다. 여덟 평 방에 사는 청년들에게는 취미 생활 운운하는 것은 사치일지 모른다. 사람과 만나는 것조차 언감생심일 때도 있다. 서울시 청년활동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 1인 가구가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74분뿐이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시대, 그녀에게 필요한 건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의 돈이었을지 모른다. 우리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방과 돈이 필요하지만, 8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적어도 그게 ‘방’이 아니라 ‘집’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아니라 집이 필요하다. 그렇게 말하면 지나친 사치일까? 배를 곯아 본 적 없는 청년들의 탐욕일까?



박초롱 딴짓 출판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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