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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사노동을 너무도 모른다

입력
2021.04.26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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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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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들에는 사회안전망이 있고 미국에는 여자들이 있다." 사회학자 칼라코 교수가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여성의 희생으로 때우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꼬집으며 한 말이다. 세계 1위 경제대국이라는 미국은 서구 다른 나라들에 비해 사회복지가 취약한 복지 후진국이라고 할 만하다. 가령 OECD 국가 중 출산휴가가 보장되지 않는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다. 허술한 사회안전망의 틈새를 한편으로는 교회, 비영리 조직, 주민 조직 등 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와 기부가,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이 보완하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칼라코 교수의 지적처럼 이 시민사회와 가족의 사회안전망 기능은 여성의 비임금 노동이 있어 가능하다. 재정이 부족한 공립학교 도서관 기금 마련을 위해 빵과 쿠키를 굽는 것도 엄마들이고 교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지역 주민들을 위한 봉사도 주로 여성의 몫이다. 가정에서 여성들이 부담하는 가사와 육아 노동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흔히 가사노동이라고 하면 우리는 요리, 빨래, 청소 등 몸으로 하는 노동을 떠올리지만, 사회학자들은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감정적 노동과 인지적 노동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학자 혹실드가 제안한 감정적 가사노동은 입시 공부에 지친 아이들을 위로해 주고 직장일로 스트레스받는 남편의 기분을 달래는 등의 가족의 감정적 웰빙을 돌보는 노동을 의미한다. 엄마가 직장과 가사노동의 이중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에도 이런 감정적 노동은 주로 엄마의 몫이다. 그 엄마의 감정을 돌보는 노동은 누구의 몫일까?

인지적 노동은 감정적 노동보다 더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회학자 다밍거는 가정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다양한 필요를 예측하고, 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살피는 인지적 노동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한 주 식단을 짜고 식재료 목록을 만드는 일은 물론이고 가족과 친지 생일 등 집안 대소사 일정을 관리하는 일, 아이들의 학원이나 과외활동에 대한 정보 수집과 결정 등, 생각해보면 가정 모든 일에 누군가의 인지적 노동이 필요치 않은 것이 없다. 다밍거의 연구는 미국 중상층 가정에서 이런 인지적 노동도 대부분 여성의 몫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육체적 가사노동은 공평히 나누는 부부도 인지적 노동은 주로 아내가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고 남편들은 이런 불평등한 분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흔히 인용되는 가사노동의 성별 분업 통계도 이런 감정적, 인지적 노동의 불평등은 반영하지 않는다.

코로나로 학교가 문을 닫고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어 온 가족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런 감정적, 인지적 가사노동의 양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 추가 부담도 역시 여성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는 시간과 공간의 분리로 잘 보이지 않던 그 성별 분업이 이제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서 일어나다 보니 그 불평등이 숨을 구석이 없다. 코로나 시대에 이런 잘 보이지 않던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다면, 그래서 가족 내 여러 가사노동의 분배를 둘러싼 논의와 재협상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칼럼 준비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역시 '너나 잘하세요'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다음 주 저녁 메뉴를 생각한다.



임채윤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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