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피해자에 대해 공개 사과한 두 사람이 있다. 피해자는 한 명의 사과에 대해선 “무엇이 잘못이었는가에 대한 책임 있는 사람의 진정한 사과”라고 고마워했다. 다른 한 명의 사과를 두고는 “제발 그만 괴롭히시라. 부탁 드린다”며 고통스러워했다. 전자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과이고, 후자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호중 원내대표의 사과다. 둘의 사과는 무엇이 달랐을까.
윤 원내대표는 22일 서울ㆍ부산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사과 장소로 국립서울현충원을 골랐다. 현충탑 앞에서 무릎도 꿇었다. 그러나 현충원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이 생생히 살아 있는 민족의 성지’(현충원 홈페이지)다. '고위공직자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 사건'과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다. 성추행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희화화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윤 원내대표가 왜 국회가 아닌 현충원을 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에 윤 원내대표는 “국민들에게 드리는 말씀이었다. 별도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고만 했다.
오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는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저는 현충원에 안장된 순국선열이 아니다. 도대체 왜 현충원에서 제게 사과를 하시냐”고 반발했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도 "너무나 뒤늦은 시점에 호국영령을 모신 곳에서 한 사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윤 원내대표의 사과 문구도 논란을 불렀다. 그는 현충원 방명록에 "선열들이시여! 국민들이시여! 피해자님이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썼다. '선열'과 '국민', '피해자님'을 나란히 호명한 것 자체가 이질적이었다. 무엇보다 구체적으로 뭘 잘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고쳐나가겠다는 '사과의 기본 요소'가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는 “말뿐인 사과는 필요 없다”며 “(2차 가해자에 대해 당 차원에서 조치하겠다는) 말씀에 책임 지시라”고 지적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로부터 “진정한 사과”라고 호평 받은 오세훈 시장의 사과와 대비된다. 오 시장은 지난 20일 시청에서 온라인 브리핑을 열고 “전임 시장 재직 시절 있었던 성희롱ㆍ성폭력 사건에 대해 현직 서울시장으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또 “즉각적인 대처는 물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대해서도 서울시의 대처는 매우 부족했다”며 “서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를 보면서 피해자는 또 하나의 엄청난 위력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잘못을 하나하나 짚었다. 피해자가 요청한 사건의 묵인·방조 의혹에 대한 재조사를 약속했고, 성비위 확인시 즉각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 도입, 성희롱·성폭력 심의위원회 설치 등 대안도 제시했다. 당시 민주당에서조차 “진정성 있고 책임있는 사과”(이수진 의원·서울 동작을)란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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