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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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죽지 않는다

입력
2021.04.22 15:00
수정
2021.04.2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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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
김선지작가

전래동화를 위한 변론


월터 크레인, 신데렐라 삽화, 1873년


잘생기고 부유한 왕자님과 결혼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고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오래된 것이다. 미술사에서도 수많은 화가와 삽화가가 신데렐라를 그렸다. 오랜 세월 살아남은 신데렐라의 매력은 무엇일까?

위 그림은 19세기 후반 영국 화가이자 그림책 작가인 월터 크레인(Walter Crane)이 그린 '신데렐라'의 삽화다. 그는 전 세계의 어린이들을 기쁘게 한 멋진 동화책 시리즈를 남겼다. 크레인은 아이들이 선명한 드로잉, 명확한 형태, 밝은 색상을 선호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 정교하고 예술적인 삽화를 통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북돋우려고 했다. 크레인은 미술공예운동과 라파엘 전파에 동조하면서 중세 장인의 꼼꼼한 수공예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을 추구했다. 그의 동화책에서는 당시 유럽 미술계에 돌풍을 일으킨 일본 색판화에서 영감을 얻은 선명한 검정 윤곽선과 섬세하고 우아한 색채 조합을 볼 수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전 세계에 수많은 판본이 있다. 착한 소녀가 고난을 극복하고 보상을 받는다는 기본 플롯은 유사하지만, 각 시대와 나라의 판본에 따라 다양한 의미와 가치 체계를 지니고 있다. 책 자체도 슈퍼마켓에서 파는 조잡한 싸구려 판에서 크레인같이 유명 삽화가가 공들여 그린 것까지 수백 개의 변형판이 있다. 한 이야기가 오랜 세월 그렇게 많은 변종으로 이어져 오고 수없이 인쇄된 것은 그만큼 특별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데렐라는 오늘날 가장 격렬하게 비난을 받는 동화 중 하나다. 신데렐라가 순종적, 수동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최근 수십 년간 백설공주, 신데렐라 같은 동화가 성차별적인 시각의 산물이라고 생각한 페미니스트들이 전래동화를 다시 쓰는(rewriting) 작업을 해왔다. 이들의 동화에서는 개성이 강하고 진취적인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못된 계모와 사악한 마녀는 자애롭고 현명한 여성으로 탈바꿈한다. 작년에는 할리우드 여배우 내털리 포트먼이 자신의 딸에게 신데렐라 같은 고전동화를 들려주고 싶지 않다며 직접 쓴 동화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민담과 설화에서 유래한 동화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와 매우 다르다. 원래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던 민담에는 여과되지 않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잔혹함, 어두운 현실이 그대로 녹아 있다. 현대의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는 본래의 잔인한 이야기를 비교적 순화한 17세기 프랑스 문학가 샤를 페로와 19세기 독일 민속학자 그림 형제의 책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이들의 판본도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여전히 거칠다. 20세기에 다시 디즈니에 의해 아이들이 읽기에 적합하지 않은 부분을 과감하게 삭제하거나 변경한 각색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디즈니 동화는 성차별, 인종주의, 왜곡된 현실 인식과 달콤하기만 한 감상주의의 종합 선물 세트였다.

문제는 전래동화 자체가 아니라 디즈니 버전의 동화다. 포트먼이 말한 동화의 문제점은 디즈니 동화에 기반한 것이다. 옛이야기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지역에서 구전되고 다양한 버전으로 이어져 오는 동안 축적된 인간의 내면세계와 삶에 대한 통찰로 가득 차 있다. 어린이는 옛이야기를 통해 삶의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대면하게 된다. 나아가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다. 동화는 어떤 가치관도 강제로 주입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이야기에서 장차 삶에서 유용하게 쓸 지혜를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다. 전래동화에서 불편하고 괴로운 것들을 모두 빼 동심을 보호하려고 한 디즈니 동화는 어린이가 이야기를 통해 실제 인생에서 겪을 어려운 상황을 간접 체험하고 대비할 기회를 박탈해버린 것이다.

페미니즘 동화, 대안 동화,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가치 체계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그러나 그중 일부는 동화를 여성주의 시각으로만 본 나머지 표면적인 줄거리 속에 담긴 보물을 보지 못했다. 수천 년 동안 신데렐라가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은 보잘것없는 인물의 성공, 누더기옷에 가려진 진가, 자매 간의 경쟁 심리, 소원 성취 판타지, 권선징악 등 복잡하고 심층적 의미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문학과 예술은 한 방향만 보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이야기'는 그 고유의 즐거움과 문학적 특성이 존중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미국 여성학자 바버라 G. 워커가 쓴 '페미니스트 동화 Feminist Fairy Tales'는 매우 실망스럽다. 그의 동화에서는 백설 공주의 계모도 착하고 신데렐라의 언니들도 쉽게 착해진다. 모두 사이좋게 지내고 해피 엔딩이다. 결과적으로, 인간 세상의 본질적 측면인 갈등을 없애버림으로써 맹탕이 된 인물 캐릭터와 무미건조한 스토리만 남았다.

요즘은 디즈니 영화조차 전통적인 동화 캐릭터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여주인공들을 창조하고 있다. 고전적인 신데렐라가 신세대 디즈니 공주와 대척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신데렐라는 외모가 예뻐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과 인간성 때문에 복을 받는다. 계모나 이복자매처럼 고약한 사람들은 왕자를 얻지 못한다.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은 성적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선함, 배려심, 인내, 근면, 의지 같은 덕목을 가진 신데렐라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곡물 골라내기는 악과 선이 혼재한 세상에서 선을 선택하면서 착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 혹은 삶에서 필요한 인내와 극복의 시간을 뜻한다.

현대 여성은 교육, 직업, 피임, 차별 금지법, 페미니즘 등으로 인해 좀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었고, 자신의 능력에 의해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도 생겼다. 사실, 진짜 마법 지팡이는 요정 대모나 왕자가 아니라 이런 것들이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신데렐라 서사를 좋아한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소설, 드라마, 영화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엇비슷한 이야기 패턴이 반복되는 것은 신데렐라가 인간의 뿌리 깊은 욕망을 투사하기 때문이다. 삶이 멋진 말이 끄는 황금 마차보다는 호박 수레에 가까운 현실에서, 신데렐라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판타지를 제공한다. 신데렐라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데렐라는 오랜 시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가감되면서 만들어진 소중한 문화 자산이다. 과거의 유산을 현대의 가치관에 맞게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보적이고 '올바른' 것이 아니라 파괴적이고 독선적이다. 어린이에게 각기 다른 의미와 가치관을 보유한 페로, 그림 형제의 판본들과 대안 동화를 다양하게 읽도록 지도하면 어떨까? 월터 크레인의 그림책같이 예술적인 삽화로 제작된 책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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