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라는 책의 부제는 첫 페이지에서 구체화한다. '인간에게는 몸의 모든 느낌들 가운데 고통만이 배를 타고 운행할 수 있는 강, 인간을 바다로 이끌어주는 마르지 않는 물을 지닌 강과 같다.'(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
책은 '고통공포'가 만연한 사회에 대한 성찰의 결과물이다. 저서 '피로사회'로 유명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썼다. 이번에는 고통의 의미와 필요성을 두고 대담한 통찰을 소개한다. 한병철에게 고통이란 '사회를 이해하는 열쇠가 담겨 있는 암호'로 기능한다. 이 때문에 고통의 부재는 건강한 사회 비판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정치의 발전을 저해한다. 예술의 속성이 창조를 통해 기존의 가치에 익숙해져 있던 이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고통의 상실은 예술의 결핍을 뜻한다.
하지만 오늘날 고통이란 '부정성 그 자체'이며, 퇴치해야 할 대상이다. 어느새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긍정 심리학'의 영향이 컸다. 행복과 낙관만이 최우선 가치로 각광받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개인은 '좋아요(Like)'라는 진통제를 강요받고, 데이트 포털 사이트는 "아픔 없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고 광고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에서조차 고통을 배제하고 있다. 고통이 때론 결속을 강화하며, 카타르시스를 통해 정화의 작용을 한다는 사실은 잊힌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팬데믹 시대에도 고통의 의미는 적지 않다. 고통에 대한 공포는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점에서 생존의 가치가 극대화된다. 생존을 위해 신앙을 희생하고, 이웃은 잠재적인 바이러스 운반자로 취급된다. 재택 근무가 보편화하면서 집은 "팬데믹 시대의 신자유주의적 강제노동수용소"가 된다. 생존사회는 좋은 삶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거세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