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맹의 신' 관우가 '장사의 귀재' 산시 상인의 우상이 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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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의 신' 관우가 '장사의 귀재' 산시 상인의 우상이 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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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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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산시성 ⑤ 제슈 왕가대원과 윈청 관제묘

산시성 링스의 상인 저택인 왕가대원 가오자야 통로. 휴일이면 관광객으로 붐빈다. ⓒ최종명

산시성 핑야오고성에서 서남쪽 1시간 거리에 링스(灵石)현이 있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를 거치며 300년을 이어온 진상 마을인 징셩촌(静升村)까지는 10㎞를 더 가야 한다. 지금은 시골이지만 예전엔 상인의 바쁜 일상으로 북적이던 곳이다. 산시를 대표하는 상인 저택인 왕가대원이다. 산시에는 전국을 주름잡던 상인이 동네마다 있었다. 저택을 짓고 수백 년 동안 살아왔다. 곳곳에 셀 수 없이 대원이 많다.

황실이 부럽지 않은 상인 저택, 왕가대원

링스의 왕가대원 동문에 공손한 마음으로 손님을 맞는다는 뜻의 '인빈' 글자가 새겨져 있다. ⓒ최종명


왕가대원 대문의 '휘영면취' 편액. ⓒ최종명

왕가대원 동문 입구에 걸린 왕부(王府)는 왕이 아니라 왕씨 상인이 살았다는 뜻이다. 봉건시대에는 불가능한 문구다. 인빈(寅宾)이야 상관없다. 오히려 칭찬받을 말이다. 유학 오경의 하나인 ‘상서(尚書)’ 요전 편에 등장하는 표현으로 ‘공손한 마음으로 손님을 맞는다’는 의미다. 맞은 편에 부두가 있었다. 손님을 끌어들이는 뜻이니 재물을 환영한다는 속마음도 있었다. 상서에 대한 도교적 해석이라는 ‘상서위(尚书纬)’에는 농번기에 해 뜨자마자 일어나 서두르는 일을 ‘인빈출일(寅宾出日)’이라 했다. 3층 높이의 대문에 걸린 휘영면취(辉映绵翠)가 멀리서도 빛이 난다. 눈부시게 빛나는 재물(翠)이 끊임없이 둘러싸길 바라는 마음이다. 남색 바탕에 금색으로 빛나는 글자가 마음을 끈다. 어렵지 않고 그저 솔직하고 담백하다.

링스 왕가대원의 평면도. 전체 4만㎡가 넘는 저택이다. ⓒ최종명

원나라 시대 타이위안에서 왕실(王实)이라는 인물이 이주해 왔다. 농사를 짓던 가난한 동네였다. 흉년이 들자 농민은 기아에 허덕였다. 왕실은 농한기에 두부를 만들어 장사를 시작했다. 농사 대신에 점포를 열고 상인이 됐다. 날로 번창하자 저택을 짓기 시작했다. 일가친척과 이웃도 함께 사는 저택의 면모를 갖췄다. 농사나 장사나 해가 뜬 후 열심히 노력한 자에게 재물이 쌓인다. 인빈의 정신으로 지은 저택이 4만5,000㎡규모다. 먼저 서쪽 훙먼바오(红门堡)에 짓고 나중에 동쪽 가오자야(高家崖)와 사당을 세웠다. 가오자야에는 크고 작은 35채의 가옥이 342칸에 이른다. 훙먼바오는 가로와 세로로 왕(王) 자 골목을 따라 가옥 88채가 다닥다닥 붙었다.

가오자야는 왕씨 17세손인 왕여총과 왕여성 형제의 저택이다. 청나라 가경제 시대 1796년부터 16년에 걸쳐 건축했다. 통로는 너비가 6m라 말이 달려도 될 정도다. 연휴 기간에 찾았더니 관광객이 다 메우고 있다. 왼쪽은 가림막인 조벽, 오른쪽은 대문이 이어져 있다. 길이는 대략 30m에 이른다. 상인인 두 형제가 나란히 사이좋게 살았다. 벼랑을 등지고 있고 뒤쪽에 동굴로 지은 가옥도 많다.

왕가대원 돈후택 앞 조벽의 '사자곤수구' 조각. ⓒ최종명

돈후택(敦厚宅)은 왕여총의 거처다. 대문 앞 조벽에 사자 한 쌍이 수 놓은 공을 굴리는 사자곤수구(狮子滚绣球)가 새겨져 있다. 공 위쪽 새끼 사자 한 마리는 길한 징조다. 암수 사자와 새끼 사자 한 가족은 저택을 수호하며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辟邪)를 담고 있다. 대문 양쪽에도 아빠 사자가 공을 밟고 있는데 좋은 일이 끊이지 말라는 뜻이다. 엄마 사자는 새끼를 발로 밟으며 장난치고 있다. 대대손손 번영하라는 바람이다. 베이징 고궁을 비롯해 전국 어디나 대문 앞 사자는 대부분 상징하는 바가 똑같다.

왕가대원 돈후택의 낙선당. ⓒ최종명


돈후택 낙선당의 섬세한 나무 조각. ⓒ최종명

건물은 삼진(三进) 사합원 구조다. 손님을 접대하는 낙선당(乐善堂) 마당에 들어선다. 기둥과 들보에 새긴 나무 조각마다 수 놓은 듯 아름답다. 상인의 재력이 돋보이는 예술품이다. 기둥을 따라 시선을 올리니 양쪽으로 화병이 드러난다. 둥근 꽃병에는 모란, 사각형 꽃병에는 국화가 꽂혀 있다. 기둥 위로 까치발 따라 지붕받침(두공) 옆에 네모난 도형이 눈에 띈다. 솥과 항아리를 담고 있다. 뚜껑을 열면 술이나 곡식이 쏟아져 나올 듯하다. 무게를 떠받치는 건축 기술에 조형미를 꾸몄다. 그야말로 목조전시물이다.

왕가대원 제조당에 '덕고망중' 현판이 걸려 있다. ⓒ최종명


왕가대원 제조당 창문의 섬세한 목조각. ⓒ최종명

후원(后院)을 돌아 나오면 제조당(祭祖堂)으로 이어진다. 품성은 고상하고 평판이 높다는 의미의 덕고망중(德高望重) 현판 아래 목조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치형 벽돌에 맞춰 끼운 나무에 세밀한 솜씨로 조각조각 모양을 드러낸다. 가운데에 봉황 한 쌍이 만개한 꽃과 어울린다. 화병과 향로를 새긴 목조는 마치 복사한 듯 양쪽에 대칭을 이루고 있다.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창문이다. 창살은 부채와 반원 모양으로 꾸몄다. 새가 구름 위를 날아다니고 오리가 노닐며 화병에 꽃이 폈다. 꽃잎을 입과 발로 보듬는 동물은 양인지 사슴인지 모르겠으나 아래는 분명 박쥐다. 상인이 산다는 확실한 증명이다.

왕가대원의 응서거 대문. ⓒ최종명


왕가대원 경업당의 '규원구방' 편액. ⓒ최종명

담장을 지나 응서거(凝瑞居)로 간다. ‘응서’는 축복을 비는 말로 자주 사용한다.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다는 뜻이다. '혼례응서'라고 하면 일가를 이룸을 축복하는 마음을 고급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동생 왕여성의 저택으로 본당은 경업당(敬业堂)이다. 파란 바탕에 금색으로 규원구방(规圆矩方)이 쓰여 있다. 마름모와 동그라미를 엮은 기하무늬로 구멍을 뚫었다. 원을 그리는 컴퍼스와 가로세로를 재는 곱자는 규칙이며 법도다. 사자성어로도 자주 쓴다. 지극히 표준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복희여와도(伏羲女娲图)를 볼 수 있다. 복희와 여와는 창세 신화에 등장한다. 서로 엉킨 몸으로 손에 하나씩 규와 구를 들고 있다. 가만히 보니 구(矩)의 좌변 ‘시(矢)’ 위쪽에 조그맣게 삐침(丿)을 가일수했다. 보나 마나 규칙을 지키는 일에 더욱 매진하라는 뜻이다.

왕가대원 훙먼바오의 치문. ⓒ최종명

통로를 따라가면 훙먼바오 성벽으로 올라갈 수 있다.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약간 경사가 느껴진다. 지붕을 바라보며 한 바퀴 돈다. 아래로 내려가서 꼼꼼하게 건축문화를 다 둘러보려면 끝도 없다. 지붕 마루 끝에 치문(鸱吻)이 내려다보인다. 신화에 등장하며 뱀이나 물고기처럼 비늘이 있는 맹수다. 용에게 아들이 아홉 있는데 악기, 칼자루, 종, 향로, 비석, 대문 등에 출몰한다. 치문은 이문(螭吻)이라고 불리며 몸에 물을 가득 담고 있는지 화재 방지에 탁월하다. 목조 건물의 지붕이 눈높이다. 늘 올려다보다가 가까이 보니 생활에 고스란히 침투한 신화의 의미가 더욱더 생생하다.

왕가대원 훙먼바오 중앙 통로. ⓒ최종명


왕가대원 훙먼바오 대문에 '항정'이 새겨져 있다.

말도 달릴 정도로 넓은 성벽을 돌아 내려온다. 중앙 골목이 한눈에 길게 보인다. 시야도 좋아 멀리 정자까지 보인다. 골목이 교차한 모습이 왕(王)처럼 보이지만 숨은 뜻은 용(龍)이라는 설명이 있다. 스토리텔링으로 지어낸 말이긴 해도 그럴듯하다. 다시 찾아가면 용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다. 하필 연휴 기간에 가서 사람 보느라 시간의 반을 썼더니 아쉬움이 남는다. 아치형 대문 사이로 빠져나오는 관광객을 보다가 자연스레 항정(恒贞)을 바라본다. 영원히 곧은 마음으로 살라는 뜻이다. 상인의 흔적은 사라졌고 관광객의 자취로 영원할 수 있을까?


중국 전역에 관우 사당... 고향이라 더욱 특별한 관제묘

산시성 윈청시 하이저우의 관제묘 입구. ⓒ최종명

잉스에서 남쪽으로 250km를 가면 산시 끝자락 윈청(运城)이다. 관우가 출생한 도시다. 발품으로 중국 어디를 가도 늘 관제묘와 만났다. 정작 관우의 고향과는 인연이 없었다. 2017년 가을 근처를 지나게 됐다. 허난성 싼먼샤(三门峡) 역에서 버스를 탔다. 성의 경계를 넘어간다. 출발하자마자 고속도로 입구가 정체다. 순발력 좋은 기사가 유턴하더니 지방도로로 접어든다. 길은 험해도 막히지 않아 좋다. 비 내리는 길을 2시간가량 달렸다. 지도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기가 차게 안성맞춤이다. 기사에게 내려달라고 했다. ‘여긴 하이저우야(解州)!’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버스가 도왔으나 날씨는 아니었다. 비옷을 입고 2km를 걸었다. 관제조묘(关帝祖庙)다.

하이저우 관제묘의 사룡벽과 폐호. ⓒ최종명

배낭을 매표소에 맡기고 숨을 고른다. 비 오는 날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관우와 조우하다니. 이곳 관제묘는 589년 수나라 시대에 처음 건설됐다. 왕조마다 중건을 거듭했다. 결의정(结义亭)과 군자정(君子亭)을 지나니 사룡벽(四龙壁)이 나타난다. 빗물 때문인지 붉은빛 돋는 황색과 청아한 하늘색으로 나뉜 벽이 꽤 선명하다. 사실은 천지해(天地海)로 삼등분돼 있다. 벽 앞에 엇갈리게 박은 3개의 기둥이 있다. 사람과 말이 지나지 못하도록 설치한 폐호(梐枑)다. 보통 관청 앞에 두고 통행을 막는 울짱으로 행마(行马)라고 부른다.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청나라 옹정제가 하사한 귀한 물건이다. 신성한 전당이니 마음을 경건히 하라는 뜻이다. '사람 인(人)' 자 모양이다. 진상은 ‘천시(天时)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는 상인 정신이라 자랑한다.

하이저우 관제묘 사룡벽의 섬세한 조각. ⓒ최종명

황제의 거처에 있는 구룡벽에 비하면 볼품없어도 용을 새기다니 대단하다. 발톱이 4개인지 5개인지도 중요하다. 명나라 영락제의 동생 주계는 시기와 질투가 생겼다. 자신의 왕부인 다퉁에 구룡벽을 세웠다. 고궁의 구룡벽보다 높이와 너비 모두 훨씬 컸다. 고궁의 용은 발톱이 5개다. 번민 끝에 4개만 새겼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관제묘의 용도 4개다. 발톱도 넷, 용도 네 마리다. 관우의 죽음이 애통하다는 뜻을 담았다. '넉 사(四)'는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다. 명나라 선덕제 시대인 1430년 전후에 세웠다. 봉황, 기린, 토끼, 사슴 등 여러 동물이 등장하고 삼국지에 어울리는 인물도 많다.

하이저우 관제묘 치문에서 본 단문. ⓒ최종명

대문인 단문(端门)에 이어 치문(雉门)으로 들어가 비를 피한다. 뒤돌아보니 3개의 아치형 문과 단층 유리(琉璃) 지붕이 반듯하다. 단문 정면에 관제묘 현판이 있었다. 뒤쪽엔 부한인물(扶汉人物)이라 쓰여 있다. 한나라를 떠받친 관우를 칭찬한 말이다. '사람 인(人)'에 삐침을 3개나 썼다. 도원결의 삼형제이거나 나라를 구한 집단이라는 메시지다. 양쪽에 대의가 하늘에 닿았다는 대의참천(大义参天)과 충성이 해를 꿰뚫는다는 정충관일(精忠贯日)이 있다. 대의를 품고 충성해야 나라를 구한다는 말인가? 불그레한 벽돌에 검은색 바탕이라 또렷하게 잘 보인다.

하이저우 관제묘 오문의 주창과 청룡 그림. ⓒ최종명


하이저우 관제묘 오문의 오관 통과와 육장 참살 벽화. ⓒ최종명

오문(午门)이 나타난다. 청나라 말기에 화재로 훼손돼 민국 시대에 중건했다. 앞쪽 벽화에 관우의 부장 둘이 문신(门神)으로 그려져 있다. 소설에만 등장하는 주창 옆에는 청룡, 정사 인물인 요화 옆에는 백호가 그려져 있다. 구색을 갖춰 뒤쪽에 주작과 현무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뜻밖에도 오관(五关)을 통과해 6명의 장수를 참살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소설 속 관우의 영웅 스토리를 대표한다. 일곱째 지지(地支)이자 정오를 뜻하는 오(午)와 다섯 오(五)가 발음이 같으니 찰떡궁합이다.

하이저우 관제묘의 어서루. ⓒ최종명


관제묘 어서루의 팔괘 문양. ⓒ최종명

오관을 지나가듯 신나게 오문을 건너니 어서루(御书楼)가 나타난다. 삼중 처마인 목조건물로 청색과 황색이 어우러진 유리 지붕이 웅장하면서도 화사하다. 청나라 강희제가 중건하며 충의로 천하를 빛냈다는 의병건곤(义炳乾坤) 편액을 하사했다. 건륭제가 할아버지 황제의 필체가 보존돼 있다고 개명했다. 원래 팔괘루(八卦楼)였다. 팔괘를 상징하는 조정이 있기 때문이다. 팔각형, 사각형, 다시 팔각형 문양이 연이어 보인다. 3층 누각인데 마치 평면처럼 착시를 일으킨다.

하이저우 관제묘의 숭녕전. ⓒ최종명


숭녕전 정면의 쌍룡 돌기둥. ⓒ최종명


하이저우 관제묘의 향로, 철학, 화표. ⓒ최종명

본전은 숭녕전(崇宁殿)이다. 송나라 휘종이 관우에게 숭녕진군(崇宁真君)이란 봉호를 내렸다. 숭년은 휘종의 연호이고 진군은 신에 대한 존칭이다. 가로 7칸, 세로 6칸 크기로 이중 처마다. 마당에 향로가 짝을 이루고 있고 비석도 몇 개 있다. 월대에 궁전이나 황릉에 사용하는 돌기둥인 화표(华表) 한 쌍이 놓였다. 동으로 제작된 향로와 철로 만든 학 한 쌍도 전각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건물 지붕을 지탱하는 돌기둥이 모두 26개다. 앞면의 8개는 두 마리 용이 휘감으며 승천하는 모습이며 나머지 삼면의 6개씩 18개는 한 마리만 새겼다. 황제의 권위에 버금가는 민간의 우상이 누리는 혜택이다. 오로지 공자와 관우만의 특혜다.

하이저우 관제묘 숭녕전 향로 앞에서 본 '신용' 편액. ⓒ최종명


하이저우 관제묘의 본당인 숭녕전 건륭제의 '신용' 편액. ⓒ최종명

향로 앞에 서면 마음이 경건해지리라 생각했다. 비 때문에 도무지 가능하지 않다. 처마 바깥에 빛을 반사하고 있는 신용(神勇) 현판이 보인다. 서둘러 처마 밑으로 숨었다. 신의 영역에 버금가는 용기를 지닌 관우에 대한 칭찬이고 건륭제의 칙령으로 제정한 흠정(钦定)이다. 용트림하는 동작과 울긋불긋하게 채색한 테두리가 화려하다. 신용(信用)을 생명으로 전국을 주름잡던 진상의 고향, 산시 출신의 관우를 지극정성으로 봉공한다. 한자는 다르지만, 상인 정신도 어쩌면 신의 영역이지 않을까? 문득 떠오른 잡념이다. 동한 말기 60년간 이어진 삼국시대, 수천 년 역사에서 스치듯 지나친 관우였다. 황제도 아니었고 그저 일개 장군이던 인물이다. 수백 년을 이어온 진상의 우상이 됐다니 아이러니다.

하이저우 관제묘의 춘추루 앞 패방. ⓒ최종명


하이저우 관제묘 춘추루를 배경으로 비가 쏟아지고 있다. ⓒ최종명

가장 안쪽에 침궁인 춘추루(春秋楼)가 있다. 관우는 전투 중에도 밤이 되면 촛불을 켜고 역사 서적인 ‘춘추’를 읽었다고 전해진다. 역사에서 사라졌으나 충의(忠义)의 인물로 부활했다. 역사가나 소설가의 업적이 아니다. 역대 황제가 앞다퉈 신성시한 까닭은 민간의 염원을 달랠 목적이었다. 춘추루에 서태후의 위령진첩(威灵震叠)이 걸려 있다. 위엄과 명성이 거듭 세상을 진동한다고 했다. 봉건 왕조가 끝날 때까지 관우를 숭상했다. 21세기에도 관우는 여전히 사람들 마음에 살아있다. 세상이 어수선해지면 나타나는 구세주처럼 말이다.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아쉽게 사라진 관우에 대한 애환으로 자신을 치환하기도 한다.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청룡언월도를 들고 적토마에 올라 맹렬히 돌진하는 사람이 빗방울에 비치는 듯하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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