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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만에 좌초한 유럽 '부자 축구' 리그… 보이콧 등 '후폭풍'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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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만에 좌초한 유럽 '부자 축구' 리그… 보이콧 등 '후폭풍' 시작

입력
2021.04.21 19:15
수정
2021.04.21 21:2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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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빅6 탈퇴 시작하자 '슈퍼리그' 물거품
축구계·정치권 전방위 압박에 결국 백기

20일 영국 런던의 스탬포드 브리지 경기장 밖에서 첼시 팬들이 첼시의 유럽 슈퍼리그 참가 계획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런던=AP 뉴시스

20일 영국 런던의 스탬포드 브리지 경기장 밖에서 첼시 팬들이 첼시의 유럽 슈퍼리그 참가 계획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런던=AP 뉴시스

단 56시간. ‘유럽 슈퍼리그(ESL)’ 창설 발표부터 첫 탈퇴 팀이 나오기까지 고작 이틀하고도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돈 많은 구단끼리 모여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겠다는 탐욕스러운 계획은 ESL 주축인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빅6 구단의 도미노 이탈을 시작으로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애정하는 팀의 배신으로 뒤통수를 맞은 팬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탈퇴해 ESL로 갈아타려던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첼시, 토트넘, 리버풀 등 EPL 6개 구단 모두가 20일(현지시간) 계획을 철회했다. 이틀 전 ESL 창단 멤버로 이름을 올린 12개 구단 중 가장 부유한 EPL 구단들이 등을 돌리면서 ESL은 첫 발도 떼기 전에 좌초했다. “축구를 구하겠다”(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는 그럴싸한 명분을 앞세워 놓고선 꼴이 우습게 됐다. 아스널은 “실수했다”며 공식 사과했고, 대니얼 레비 토트넘 회장은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단들은 감독ㆍ선수ㆍ팬들의 극렬한 반대와 저항, 법적 조치까지 꺼내든 영국 정부의 강경 대응 등 예상을 뛰어넘는 전방위 압박에 크게 놀란 눈치다. 맨유 수비수 출신 해설자 게리 네빌은 “욕심의 결과물이자 끔찍한 범죄”라며 “가담 팀에 벌점을 물리고 랭킹 최하위로 강등시키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첼시 팬 1,000여명은 이날 브라이튼과의 경기를 앞둔 홈구장 스탬포드브리지에서 “고(故) 첼시FC” “꺼져 슈퍼리그”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였고, 유럽축구연맹은 월드컵 출장 금지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정치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ESL은 축구에 극심한 손상을 입힐 것”이라 경고했고, 올리버 다우든 문화장관은 “지배구조 개혁부터 경쟁법까지 모든 제재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돈 좀 만져 보려다가 더 큰 역풍을 맞게 된 구단들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19일 영국 리즈의 엘런드 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리즈 유나이티드 대 리버풀 FC의 경기 전 리즈 선수들이 '축구는 팬들을 위한 것'(Football is for the fans)이라는 문구가 적힌 셔츠를 입은 채 몸을 풀며 유러피언 슈퍼리그(ESL) 창설에 동의한 리버풀의 결정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리즈=AP 연합뉴스

19일 영국 리즈의 엘런드 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리즈 유나이티드 대 리버풀 FC의 경기 전 리즈 선수들이 '축구는 팬들을 위한 것'(Football is for the fans)이라는 문구가 적힌 셔츠를 입은 채 몸을 풀며 유러피언 슈퍼리그(ESL) 창설에 동의한 리버풀의 결정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리즈=AP 연합뉴스

참가 예정된 구단 절반이 사라지자 나머지 구단도 돌아섰다. 21일 이탈리아 세리에A 구단인 인터밀란과 AC밀란, 유벤투스가 모두 철회를 결정했고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역시 참가 계획을 바꿨다. 다급해진 ESL 사무국이 이날 새벽 성명을 내고 “팬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고 축구계 전체의 수익을 증대시킨다는 목표를 늘 염두에 둘 것”이라고 출범 강행 의지를 내비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단 두 팀, 레알 마드리드ㆍFC바르셀로나(스페인)만 남았다.

후폭풍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ESL 출범에 찬성했던 에드 우드워즈 맨유 부회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올해 말 사임을 발표했다. 네빌은 “ESL 뿌리를 찾아야 한다”며 근본 대책 수립을 요구했다. 영국 축구팬들은 ESL 자금줄인 미국 투자은행 JP모건 보이콧 운동에 돌입했다. 구단주들을 향한 사퇴 여론도 일고 있다.

일각에선 ‘축구 표심’을 의식해 이례적으로 발빠른 대응에 나선 정치권에도 날을 세우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ESL 출범 발표 직후 관계자들을 모아 대책회의까지 열었다고 한다. 비상사태과학자문그룹의 키트 예이츠는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이 축구 위기 때만큼 빨랐다면 지금 우리는 다른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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