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에서 발 빼는 美바이든, '최악의 레거시'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도 폐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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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에서 발 빼는 美바이든, '최악의 레거시'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도 폐쇄할까

입력
2021.04.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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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4일 워싱턴 백악관 트리티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 방침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1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20년 전쟁터’ 아프가니스탄에서 올해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미국의 ‘영원한 전장’으로 묘사되는 아프간에서 완전히 발을 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5월에 시작되는 철수는 9ㆍ11 테러 20년을 맞는 9월 11일까지 완수될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표 뒤 나흘이 지난 18일, 아프간 서부 헤라트 지방 출신 군벌이자 주지사를 지낸 이스마일 칸은 향후 5개월을 ‘아프간 평화를 다질 중대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아프간 사회에는 외국 군대의 철수 이후 발생할 개연성이 있는 혼란이 내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작지 않다. ‘패닉 현상’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인다. 반군 탈레반이 무섭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데도 권력 투쟁과 극심한 부패로 사분오열된 아프간 주류 정치권의 모습은 1990년대 초반 내전 직전 상황과 닮았다. 당시 트라우마 때문에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국민이 많은 게 사실이다.

게다가 아프간은 1979년 구(舊)소련 침공 이래 42년간 다양한 형태로 전쟁이 지속된 국가다. 구석구석 남아 있는 무기부터 정당과 정치인을 끼고 활동하는 민병대들까지 내전을 일으킬 요소들이 적지 않다. 극단주의 정치 세력 탈레반이 주류 사회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도 아프간 여성들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그들의 억압적 여성관이 자신들의 미래를 곱절로 짓누를 것이기 때문이다. 20년 전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은 ‘부르카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명분까지 가미된 전쟁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애초 받아 든 임무를 깔끔하게 완수하지 못한 채 이제 그 수렁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쿠바 관타나모 수감자 복장을 한 시위자가 2012년 1월 9일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관타나모 수용소의 즉각 폐쇄를 요구하며 철창 안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런데 미국이 아프간에서 발을 빼려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쿠바 관타나모만에 있는 테러 용의자 수용소(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조치다. 16일 미 상원의원 24명은 바이든 행정부에 “법치가 실종되고 인권 침해가 남발하는 공간의 상징”인 수용소를 폐쇄하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미 해군기지가 자리 잡은 관타나모만에 테러 용의자 구금 시설이 들어선 것은 2002년 1월 11일부터다. 이날 미국은 테러 용의자 20명을 관타나모 기지로 이송해 왔고, 이후 아프간과 파키스탄 등 여러 지역에서 잡혀 온 용의자 수백 명이 재판 없이 무기한 구금되며 인권 사각지대에서 고문과 강제 실종 위협에 노출됐다.

미국이 아프간 완전 철수를 공언한 이 시점에도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여전히 40명이 수감돼 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재판 절차나 기소 없이 갇혔다. ‘아프간 분석 네트워크(AAN)’가 19일 발표한 보고서 ‘관타나모 시설 폐쇄 방침에도 여전히 갇혀 있는 아프간인’은 그동안 관타나모 구금 시설을 거쳐간 아프간인 일부를 다뤘다. 예컨대 모하메드 카민은 수용소 조사 기록에 5개의 각기 다른 테러 그룹의 대원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이 중 ‘아프간 연합 민병대’와 ‘북아프리카 극단주의 네트워크’라는 조직은 아예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카민이 ‘카시오 F91’ 시계를 찼다는 것도 테러 혐의의 근거 중 하나였는데 이 시계가 임시폭발물(IED)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 시계는 그저 흔한 시계에 불과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무린 아딘 알사타르는 석방 판정을 받고도 아직 갇혀 있는 수감자 6명 중 한 명이다.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알사타르는 관타나모 시설에 19년간 수감됐고 11년 전 이미 석방 판결을 받았다. ‘휴먼라이츠 퍼스트’ 자료에 따르면 그는 올해 46세로 로힝야족 남성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태생이지만 파키스탄 시민권자이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뒤 메카에서 종교 지도자로 살다 2001년 여름 파키스탄에서 체포돼 관타나모 수용소로 이송됐다. 미국은 그가 아프간으로 가기 위해 파키스탄에 훈련을 받으러 왔다는 전 알카에다 수감자의 증언에 의존했다. 미국의 법률 비정부기구(NGO)인 ‘헌법권리센터(CCR)’에 따르면 미 연방 법원, 안보 책임자들, 정보국 전문가들 모두 이 증언이 고문을 피하기 위한 가짜 증언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살포한 전단 중 하나. 탈레반과 알카에다 지도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보상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Psywarrior.com 캡처

수감자 중에는 자신들이 팔려 왔다는 이들도 있다. 탈레반이 대패한 뒤 미군과 북부동맹 군벌들 산하 대원들이 마을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탈레반 잔류 병사들과 알카에다 인물 색출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거액의 물질적 보상을 약속하면서 가짜 신고가 속출했다. 실제 당시 미군이 신고를 독려하며 뿌린 전단에는 “알카에다와 탈레반 살인마들의 체포를 도와주면 수백만 달러를 받을 수 있다. 이 돈이면 당신의 가족, 마을, 부족 그리고 당신이 남은 생을 편히 살기에 충분하다”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다.

앞서 AAN 보고서의 저자인 케이트 클라크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미국의 아프간 개입이 통째로 실패한 현실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미국의 아프간 개입 초기 몇 해 동안 사진 중에는 군복 차림에 중무장한 외국 병사가 현지 주민의 가옥을 침입하거나, 공개 장소에서 남성(테러 용의자)의 옷을 벗기고 베일 쓴 여성들이 그 모습을 두려워하며 바라보는 장면 등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 벌어져도 반향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담겼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2001년 미국 침공 뒤 처음 몇 년간 이 침입적 행태에 대한 반동 현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당시 아프간인들이 얼마나 평화를 갈구했는지를 역설한다는 게 클라크의 일갈이다.

관타나모 구금자 다수는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 감옥에서부터 고문을 받아 왔고 관타나모 수용소에서도 고문과 강제 실종이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관타나모 시설이 인권 사각지대로 20년간 존속될 수 있었던 건 부시 행정부가 이 시설 수감자들을 전쟁 포로가 아니라고 단정함으로써 전쟁 포로에 대한 인도주의적 대우가 명시된 제네바 협정을 가볍게 무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채찍을 들이대지 못한 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미국과 국제 인권단체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구금자 40명 전원을 조속히 석방하고 시설을 폐쇄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현재 구금자 40명 모두 연로하거나 병약한 상태라고 전하면서다.

한 경비병이 2008년 11월 18일 쿠바 관타나모만 미국 해군기지의 관타나모 수용소를 굽어보는 망루에 앉아 경비를 서고 있다. 관타나모=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실 관타나모 수용소는 이 시설을 개소한 부시 행정부부터 오바마 행정부까지 모두 폐쇄하겠다고 공언해 온 곳이다. 특히 오바마 전 대통령은 퇴임 한 해 전인 2016년 2월 23일 연설에서 “(관타나모 수용소가) 국가 안보를 진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약화시키고 있다”며 애초 운용되지 말았어야 할 구금 시설이라고까지 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오른편에 서 있던 바이든 당시 부통령, 현 미국 대통령에게 미 아프간 침공의 ‘최악의 레거시’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라는 과제가 넘어왔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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