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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가면 뭐하나요… 뭘 파는지 모르는데" 시각장애 소비자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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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가면 뭐하나요… 뭘 파는지 모르는데" 시각장애 소비자의 한숨

입력
2021.04.20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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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권 침해는 법에서 규정한 장애인 차별행위
"장애인도 고객… 모두를 위해 편의성 개선해야"

19일 서울 중구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상품을 고르고 있다. 윤한슬 기자

19일 서울 중구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상품을 고르고 있다. 윤한슬 기자

19일 서울 동대문구의 대형마트를 찾은 시각장애인 A씨. 그는 시력이 남아있는 경증 장애인이라 종종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산다. 마트 진입로에서 주출입구까지 설치된 점자블록 덕분에 입장은 비교적 수월하다. 하지만 마트 내부에 들어서면 매번 길을 잃곤 한다.

판매대 위에 코너 안내판이 있지만 글자를 식별하기 어려워 사고 싶은 물품의 위치를 알아내기 어렵다. 직원 안내를 받아 원하던 판매대에 가면 이번엔 상품 포장지에 적힌 깨알 같은 글씨들과 씨름해야 한다. 상품 정보와 가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보니 어떤 상품이 나은지 비교할 수가 없다. A씨는 "스마트폰으로 글씨를 일일이 확대해 확인해보거나 매장정보를 사전에 인지하고 가야만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장애인 편의 향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지만 시각장애인이 소비 활동에서 겪는 불편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보조가 없으면 이용할 엄두를 내기 힘든 오프라인 매장은 물론이고 온라인 쇼핑몰 또한 시각장애인의 편의를 높이려는 노력을 등한시한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최근 대형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시각장애인의 상품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라는 법원 판결에 일제히 불복하자 소비자로서 장애인 권리를 존중하는 풍토 조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각장애인 쇼핑은 첩첩산중

서울 동대문구 한 대형마트 앞 인도에 횡단보도와 주출입구를 연결하는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다. 네이버 지도 캡처

서울 동대문구 한 대형마트 앞 인도에 횡단보도와 주출입구를 연결하는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다. 네이버 지도 캡처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 3사(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매장에 안내견 출입 안내문을 부착하거나 직원 대상의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진행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시각장애 고객 응대를 현장 직원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상황이다. 직원에 따라 인식과 서비스의 편차가 클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 A씨가 찾은 대형마트 관계자는 '판매대 안내판을 읽기 힘들다'는 A씨의 지적에 "코너 안내 글씨는 기본적으로 크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모든 글씨를 다 크게 만드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이 상품 찾기, 상품 비교 등 쇼핑의 핵심 단계를 이행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은 대형마트에서조차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매장 규모가 작아 내부에서 스틱(지팡이)을 이용해 이동하기도 힘든 일반 슈퍼나 편의점은 말할 것도 없다. 이진원 시각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장은 "대형마트에서 가장 글씨가 큰 코너 안내판이라도 시각장애인 입장에선 잔존 시력이 있어도 확인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팀장은 "시각장애인이 보조인 없이 혼자 쇼핑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는다"고 했다.

"장애인 도우면 모든 소비자에 이로워"

서울 중구 한 대형마트 내부. 벽면에 코너 안내판이 부착돼 있다. 윤한슬 기자

서울 중구 한 대형마트 내부. 벽면에 코너 안내판이 부착돼 있다. 윤한슬 기자

온라인 쇼핑몰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상품 정보에 대한 음성변환 서비스가 잘 구축된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시각장애인은 무슨 제품을 파는지도 파악하기 힘들다. 범용 화면낭독기를 이용해도 상품의 상세 정보는 음성으로 변환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옷을 사려는 시각장애 이용자는 색상이나 디자인, 사이즈를 모른 채 살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엄연히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시각장애인들은 이런 문제의식 아래 대형 전자상거래 업체 2곳(SSG닷컴 G마켓)과 롯데마트를 상대로 2017년 9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업체가 상품정보 접근을 보장하지 않아 상품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주된 소송 이유였다. 4년의 법정 다툼 끝에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 한성수)는 2월 18일 원고들에게 10만 원씩 배상하고 시각장애인이 화면낭독기를 들으며 쇼핑할 수 있도록 상품 정보 등을 텍스트로 제공하라고 선고했다. 그러나 3사가 일제히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법정 다툼은 길어지게 됐다.

장애인단체 등은 유통업체들이 장애인을 '소비할 권리가 있는 고객'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근본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연주 팀장은 "많은 기업에서 장애인 고객의 편의를 높인다면서도 소비자 권리 개선이 아닌 장애인 지원 차원에서 접근한다"며 "시각장애인을 소비자로서 존중한다면 그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 소비 편의 개선이 결국 전체 소비자 권익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할 거란 의견도 있다. 예컨대 사이트를 간소하게 만들면 남녀노소 보기가 편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안내 글자를 키우면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시력 나쁜 고령층도 쇼핑하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시각장애가 있는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장애인이 이용하기 편하다면 모두에게 편하다는 의미 아니겠냐"며 "장애인을 위한다기보다 다양한 유형의 고객을 아우를 서비스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업계의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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