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건 3개 충족=환율조작국' 트럼프와 달리
"대화로 해결"… 이면엔 '우리 편 대만' 챙기기
한국은 이번에도 '관찰대상국' 유지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국의 '환율조작국' 카드 활용법이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정반대로 바뀌었다. 똑같은 지정 기준을 적용하면서도, 예전엔 상대국을 위협하는 '무기'로 활용했다면 최근엔 상대국을 달래는 '선물'로 흔드는 모양새다.
실제 트럼프는 2년 전 3가지 지정 요건을 다 충족하지도 않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반면, 바이든은 올해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한 대만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의 행보에는 외형상 트럼프의 흔적을 지우려는 목적 뒤에, 우호 세력과 손잡고 중국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요건 맞는데도 환율조작국 해제
미국 재무부는 16일(현지시간) 바이든 정부 들어 처음 공개한 ‘주요 교역상대국의 거시경제ㆍ환율정책 보고서(일명 환율보고서)'에서 ‘심층분석 대상국’에 포함된 대만과 베트남, 스위스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미 재무부는 2015년 개정한 무역촉진법에 따라 △1년간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 △경상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2% 초과 △1년 중 6개월 이상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달러 순매수 규모가 GDP의 2% 이상인지를 따져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3개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일단 심층분석 대상국으로 분류한 뒤, ‘무역에서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환율을 조작했는지를 따져 최종 결론을 내는 식이다. 2개 요건을 충족하면 일종의 ‘예비 명단’ 격인 ‘관찰대상국’으로 둔다.
정권이 바뀌며 확 달라진 미국의 태도는 올해 환율보고서에서 드러났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3개 요건을 모두 충족한 스위스와 베트남을 환율조작국으로 곧바로 지정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불공정한 무역 이익을 위해 환율을 조작했는지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하다”며 여전히 3개 요건을 충족하는 스위스, 베트남을 환율조작국에서 해제했다. 새로 3개 요건을 충족한 대만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가 2019년 3개 요건 전부를 충족하지 않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정치'가 된 환율보고서
이 같은 조치의 배경으로 무엇보다 '정치적 고려'가 거론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복원’ 기조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곧바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보다는 ‘우선 대화로 해결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환율보고서 역시 “(각국과) 협력을 통해 근본적인 통화 저평가 원인을 해결할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대만을 의식한 결과라는 시각도 강하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미국에 대만은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세계가 ‘반도체 대란’에 빠진 상황에서 미국은 당분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주문 생산) 1위인 대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양친룽 대만 중앙은행 총재가 최근 “미국이 대만에 대한 무역적자를 해소하려면 대만산 반도체를 사지 않으면 된다”며 여유를 부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밖에 미국은 한국을 포함해 2개 지정 요건을 충족한 10개국을 계속 관찰대상국으로 유지했다. 반면 중국은 1개 요건(대미 무역흑자 3,108억 달러)만 충족했음에도 관찰대상국에 포함됐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중국이 미국의 견제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 재무부는 보고서에서 "중국은 외환시장 개입을 공표하지 않았고, 환율 매커니즘과 관련한 중앙은행의 투명성이 결여돼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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