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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을 둘러싸고 미국에서 여자와 여자가 맞섰다

입력
2021.04.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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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 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

편집자주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넷플릭스와 왓챠로 나눠 1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미세스 아메리카'의 필리스 슐래플리는 정계 진출을 꿈꾸던 야심찬 극우 여성이다. 왓챠 제공

'미세스 아메리카'의 필리스 슐래플리는 정계 진출을 꿈꾸던 야심찬 극우 여성이다. 왓챠 제공


'미세스 아메리카'. 왓챠 제공

'미세스 아메리카'. 왓챠 제공

남성은 오랜 시간 체제의 지배자였다. 20세기 들어서야 반전이 시작됐다. 1920년대 여성주의 운동이 물꼬를 텄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은 페미니즘이 만개한 시기였다. 1972년 미국 의회는 헌법에 남녀평등을 명시하는 ‘성평등 헌법 수정안’(ERA)을 통과시켰다. 7년 내로 38개 주 의회의 비준만 거치면 수정안은 효력이 발효될 수 있었다. 진보진영 여성들은 낙관했다. 여러 주들이 속속 비준을 했고, 7년이라는 시간은 넉넉해 보였다. 하지만 강력한 적수가 나타났다. 필리스 슐래플리(케이트 블란쳇)라는 극우 여성이었다.

①페미니즘 반대에 나선 보수 여성

슐래플리는 야심가였다. 국방 쪽 전문가로 정계에 진출하고 싶었다. 자신의 정견이 담긴 뉴스레터를 사람들에게 보내며 정치인의 꿈을 꿨다. 정계 벽은 높았다. 여성은 국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까지 작용했다.

슐래플리는 ERA가 여성들을 불리한 상황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은 남성, 특히 남편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인데, ERA로 보호막이 사라질 수 있다는 논리였다. 남녀평등으로 여성들은 위자료를 받지 못하고, 아이 양육권까지 뺏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슐래플리는 애비(사라 폴슨) 등 동료들을 모아 ERA 반대 운동에 나선다. 종교단체와도 손을 잡으며 세를 키웠다. 페미니스트와 싸움을 벌이면 자신의 인지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하기도 했다.

필리스 슐래필리는 탁월한 언변을 발판으로 '남녀평등 헌법 수정안(ERA)' 반대 운동에 나선다. 왓챠 제공

필리스 슐래필리는 탁월한 언변을 발판으로 '남녀평등 헌법 수정안(ERA)' 반대 운동에 나선다. 왓챠 제공


②치열한 여론전… 승리는 누구의 것?

슐래플리는 처음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조금씩 지지를 얻어갔다. 뉴스레터를 통한 선전전이 먹힌 데다 주의회를 찾아가 로비를 한 게 효과를 봤다. 슐래플리를 얕잡아 봤던 페미니스트 진영은 긴장한다. TV토론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여론은 슐래플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전투적인 페미니즘에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은 슐래플리에 기대어 목소리를 냈다. 진보진영 여성 표를 감안해 ERA에 찬성했던 정치인들은 슐래플리를 활용해 속내를 드러냈다.

슐래플리에 맞서 싸우던 페미니스트 진영은 단결은커녕 분열한다. 페미니즘 안에서도 세세하게 분파가 갈렸다. 특히 유명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로즈 번)과 베티 프리던은 오랜 시간 반목했다. 프리던은 급진적인 페미니즘을 주장한 반면, 스타이넘은 대중성을 지향했다. 스타 대접을 받는 스타이넘에 대한 프리던의 질투도 감정싸움에 한몫했다. 드라마는 페미니스트 진영과 반페미니스트 진영의 대결을 서술하는 동시에 당대 페미니즘의 면면을 살피기도 한다.

'미세스 아메리카'에서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왼쪽) 등 1970년대 활발하게 활동했던 페미니스트들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왓챠 제공

'미세스 아메리카'에서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왼쪽) 등 1970년대 활발하게 활동했던 페미니스트들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왓챠 제공


③진정한 페미니스트는 누구인가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스타이넘은 남자가 결혼과 무관하게 미스터로만 불리듯이 여자는 ‘미즈’라는 신조어로 호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슐래플리 같은 보수적인 여성에게는 ‘미스’와 ‘미세스’의 구분이 필요하다. ‘미세스 아메리카’는 슐래플리를 지칭하는 단어이면서 ERA에 반대했던 여성들에 대한 수식이라 할 수 있다.

슐래플리는 페미니즘을 공격하지만, 실제로는 가부장제사회의 피해자다. 그는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했다가 결국 굴욕감을 느끼며 몸을 내준다. 정치인들은 종종 슐래플리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고, 그는 매번 불쾌해 한다. 로스쿨 진학을 꿈꾸는데, 남편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한다. 슐래플리는 페미니즘에 반대하면서도 대외활동을 활발히 한다. 가부장제를 옹호하고 페미니즘을 반대하면서도 정작 그는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동시에 페미니스트적 행동을 하는 여성이다. 여성은 슐래플리의 모순적인 모습을 비추며 페미니즘의 사회적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권장지수: ★★★★(★ 5개 만점, ☆은 반개)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는 드라마다. 1970년대 시대상을 세밀히 묘사했다. 특히 당대 페미니즘의 면면을 볼 수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애너 보든ㆍ라이언 플렉 감독이 9편 중 4편의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캡틴 마블’로 페미니즘 시각이 깃든 블록버스터 ‘캡틴 마블’을 연출했던 이들이다. 나머지 5편은 아마 아산테 등 여성 감독들이 연출했다. 주연 대부분이 여성이고, 남성 배우는 조연에만 그친다. 페미니즘에 반대한 여성을 중심에 놓은 드라마이지만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96%, 시청자 68%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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