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세상에 알려진 ‘동물판 N번방’ 사건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동물학대 영상을 단체 대화방에서 공유한 일당에 대한 경찰 수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경찰이 대화방에 참여한 사람들의 신원을 전부 특정해 조사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서울 성동경찰서가 지난달부터 동물판 N번방 참여자 80여명의 신원을 특정해 순차적으로 소환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대화방 참여자들이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추가적으로 동물학대 사진이나 영상 등을 유포했는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대화 내용은 익명이었고 주거지도 전국 각지로 흩어져 있었지만, 경찰은 이들을 모두 찾아내 수사는 현재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참여자 중 대화방의 행동대장으로 알려진 20대 후반 남성 A씨에 대한 조사부터 진행했습니다. A씨는 대화방에서 개와 고양이, 너구리 등을 엽총으로 쏴 죽이고 사체를 훼손하는 영상과 사진을 게시한 인물입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동물학대 혐의를 인정했다고 합니다.
A씨에 대한 조사를 거의 마무리한 경찰은 이후 대화방 참여자들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중?고등학생 등 10대 미성년자들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물판 N번방의 실체는 이렇게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일각에서는 직접 동물학대를 저지른 A씨 외에는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동물학대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중앙일보를 통해 “A씨가 동물학대 행위를 저지를 때 대화방 참여자들이 동석했거나 돈을 주고 A씨에게 동물학대를 지시했다면 공모나 방조 혐의가 적용 가능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방조도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설명은 맞는 것일까요? 법조계에서는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동물권을 연구하는 변호사단체 PNR의 서국화 대표(법무법인 울림 변호사)는 “대화방 참여자에 대한 방조 혐의는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1) 형법상 ‘방조행위’에 대한 대법원 판례
1995년, 대법원은 횡령, 사기, 사문서위조 등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유죄를 확정했습니다. A씨의 유죄를 확정하면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형법상 방조행위는 정범의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 방조는 유형적, 물질적인 방조뿐만 아니라 정범에게 범행의 결의를 강화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무형적, 정신적 방조행위까지도 이에 해당한다.
대법원 95도456 판결요지 중에서
다시 말하면 돈을 건네거나 직접적으로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범행을 독려하는 ‘정신적 방조행위’도 처벌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서 대표는 "해당 판례는 현재까지도 26건 가까이 판결문에 인용되는 등 매우 영향력이 큰 판례"라며 “대화방 참여자들이 ‘나도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등 A씨의 동물학대를 독려한 점을 감안했을 때 이는 충분히 정신적 방조행위로 기소 및 처벌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2) 동물학대 외의 행위도 처벌 가능할까?
이들은 평소 대화방을 통해 동물학대 뿐 아니라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단체 IS가 사람을 참수하는 영상과 스스로의 손목을 자해하는 사진 등과 같은 반사회적 주제를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행위에 대한 법적인 해석은 어떨까요? 서 대표는 정보통신망법 44조를 들어 처벌이 가능할 것 같다고 봤습니다.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를 유통하여서는 아니 된다.(중략)
3.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 문언, 음향, 화상, 또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
정보통신망법 44조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중에서
IS가 민간인을 참수하는 영상은 분명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영상’에 해당합니다. 스스로 손목을 자해하는 사진 또한 보통 사람이라면 충분히 불안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비슷한 성향을 가진 대화방 참여자들이 서로 영상과 사진을 주고받는 게 과연 대화방 안에서 공포심을 유발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 사건을 처음 제보해 세상에 알린 B씨는 1월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고어방'이라는 대화방 이름을 본 뒤, 공포영화 장면들을 생각하고 대화방에 접속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동물학대 영상과 IS 영상 등의 잔인한 영상들을 목격한 것이죠. B씨는 이들의 공유한 영상 내용과 반사회적인 언행을 두려워하며 한동안 집 밖으로도 잘 나서지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서 대표는 이 점을 들어 “제보자가 우연히 대화방에 들어간 만큼 누구나 접속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그것을 통해 공포감을 느꼈다면 충분히 정보통신망법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은 대화방 참여자 전수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예정입니다. 청와대도 2월 이 사건을 엄하게 처벌해 달라는 국민청원 게시글에 “동물을 죽이는 등 학대하고 학대행위를 게시한 혐의 등에 대해 엄정한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 공식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동물판 N번방에 대한 법의 철퇴는 내려질 수 있을지,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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