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만나 13년 만에 재개발 사업 추진 탄력받는 흑석2구역
공공재개발 24곳 후보지 중 최초 주민설명회 개최
주민들, 기대 속 민간 재개발에도 '눈길'
전문가들 "사업성에 치중해 공공성 후퇴해선 안 돼"
"아주 징글징글했는데 속이 후련해. 오죽하면 내가 기다리다 지겨워서 제주도에서 10년 살다 돌아왔는데도 아직 그대로더라니까. 나 죽기 전에는 될까 싶었는데 공공재개발로 빨리 됐으면 좋겠어."
16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위치한 한 교회에는 주민 150여 명의 들뜬 발걸음이 이어졌다. 13년째 지지부진했던 재개발 사업이 정부 주도의 '공공재개발 사업'을 만나 첫발을 떼는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이날 오후 '재개발조합설립추진위원회'와 함께 서울 동작구 흑석2구역 공공재개발 사업 추진에 대한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설명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참여 인원을 나눠 2회에 걸쳐 진행됐다.
공공재개발 사업은 지난해 정부의 '5·6 부동산 대책'에 따라 도입된 수도권 주택공급 사업의 일환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SH 등이 사업성이 부족하거나 주민 간 갈등 등으로 장기 정체된 재개발 사업에 참여해 공적 특례(기부채납 완화, 용적률 상향 등)를 제공하고 신속한 추진을 돕는다.
흑석2구역은 24곳 후보지 중 입지 조건이 돋보이는 곳이다. 한강 조망이 가능하고 중심업무지구인 여의도와 강남 접근성도 뛰어나다. 종합대학(중앙대)과 대형병원(중앙대병원)도 있어 유동인구가 적지 않다. 사업 추진 속도도 가장 빨라 부동산 업계에서는 흑석2구역을 '공공재개발의 가늠자'로 평가한다.
SH는 이날 설명회에서 흑석2구역에 용적률을 600%로 상향하고 분양가를 주변 시세 대비 70~75%까지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층수는 49층으로 완화된다. 가구수는 기존 270가구에서 1,324가구로 늘어날 전망이다. 정임항 SH 공공재정비1부 차장은 "기존 준주거지역에 적용되는 용적률 상한 500%에 공공재개발 인센티브 100%를 받아 용적률을 큰 폭으로 늘렸다"며 "민간 재개발과 달리 분양가상한제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표안은 지난 1월 정부의 최초 제시안(최고 40층, 용적률 480%, 시세 대비 60~65%의 분양가)보다 사업성이 크게 개선된 것이다. 당시 추진위에서는 정부안이 기대보다 못 미친다고 판단해 '민간 재개발로의 선회 검토'를 시사하기도 했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정임항 차장은 "인센티브를 최대한 부여하는 방향으로 진행했고 앞으로도 주민 의견을 수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날 소개된 계획안에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내리면서도 민간 재개발에 대한 눈길을 아예 거두지는 않았다. 장은자(66)씨는 "10년 넘게 진행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속도' 하나만은 마음에 든다"면서도 “오세훈 시장 당선으로 민간 재개발 규제가 완화된다고 하니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SH와 추진위 측은 흑석2구역의 공공재개발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것이라 자신한다. 이진식 추진위원장은 "과거 조합설립 동의율도 70%에 달했기 때문에 공공재개발 기준인 50%는 무난하게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SH 관계자는 "법적 기준은 50%지만 안전한 사업 추진을 위해 주민 3분의 2 이상 동의를 목표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업을 신속하게 성사시키려는 욕심에 '사업성'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시범단지의 사업이 좌초됐을 때 정부 공급대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는 주민 요구를 거의 수용하고 있다"며 "사업성만 강조하다가 공공성을 후퇴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주민들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공공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관건"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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