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완도의 작은 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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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완도의 작은 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입력
2021.04.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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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운동의 성지 완도 소안도

소안독립운동기념관에 당사도 등대 의거 상황을 재현한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일제의 강제 수탈을 응징한 상징적 사건으로 소안도 독립운동의 씨앗이 됐다.


섬 여행은 불편하지만 웬만해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혼잡을 피해야 할 코로나 시대에 ‘언택트 여행지’로 섬만한 곳도 없다. 완도 소안도는 호젓하고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항일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섬이다.

적게 잡아도 4~5시간, 서울에서 소안도 찾아가기

서울에서 소안도까지 가려면 최소 4가지 교통수단을 갈아타야 한다. 기다리는 시간을 빼고도 6시간 넘게 걸린다. 서울(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완도까지는 고속버스, 완도터미널에서 화흥포항까지는 셔틀버스, 화흥포항에서 소안항까지는 여객선을 이용한다. 섬에 도착하면 택시나 마을버스로 이동한다. 마을버스는 운행횟수가 적으니 불편하고, 택시는 요금이 부담스럽다. 렌터카를 이용하면 조금은 수월하다. 비행기나 KTX로 광주까지 간 후 렌터카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물론 소안도 가는 여객선에 차를 실을 수 있다.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덜하고, 4~5시간이면 섬에 도착할 수 있다.

완도 화흥포항과 소안항을 왕복하는 만세호. 대한호, 민국호까지 3척의 여객선이 교대로 운항하고 있다. ⓒ박준규


작은 섬에 이렇게 큰 일이...소안항일운동기념관

소안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임진왜란 때 동복 오씨와 김해 김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외부에서 쉽게 침범하지 못해 100세까지는 편안하게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로 소안도(所安島)라는 이름했다. 섬 안의 여행 코스는 소안항을 출발해 소안항일운동기념관~독립운동가 송내호 묘소~물치기미전망대~미라리해수욕장을 거쳐 다시 소안항으로 돌아오는 게 일반적이다.

항일운동의 섬 소안도에는 집집마다 태극기가 내걸려 있다. ⓒ박준규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서훈을 받은 21명의 독립운동가 흉상이 전시돼 있다. ⓒ박준규

소안도만의 특이한 풍경을 꼽으라면 단연 태극기다. 관광서 또는 학교에서나 매일 게양하는 태극기가 소안도에는 집집마다 걸려 있다. 소안도는 일제강점기 항일 구국의 횃불을 높게 쳐들었던 곳이다. 3000여 명에 불과한 주민들이 13년에 걸쳐 토지소유권 반혼 소송을 벌여 승리로 이끈 항일의 섬이다. 이 섬에서만 독립유공자 19명을 비롯해 57명의 애국지사가 배출됐다. 800여명의 섬 주민들은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의 ‘불령선인’으로 감시를 받았다.

소안독립운동기념관에는 소안도가 배출한 항일 독립운동가의 부조와 사진이 전시돼 있다. 기념관은 소안 주민의 항일운동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으로 풀어낸다. 온힘을 다하다(盡), 사람이 희망이다(人), 행동하는 양심 역사가 되다(事), 힘을 모아 막아내다(對), 하늘이 내린 천직을 받들다(天), 힘을 보태 강해지다(命)로 이어지는 전시관을 둘러보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섬 주민들의 항거에 절로 숙연해진다.

1923년 주민 스스로 건립한 항일 운동 교육의 산실 사립 소안학교. 현재는 작은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박준규


사립 소안학교 터에 세워진 소안항일운동기념탑 ⓒ박준규


1909년부터 이어진 13년간의 토지소유권 반환청구소송 승소를 기리는 '토지소유권반환투쟁 승리기념비'. ⓒ박준규

기념관을 나오면 소안항일운동기념탑이 보인다. 1990년 외부의 도움 없이 주민들의 힘으로 세운 탑이다. 소안노인회에서 3년간 모금운동을 전개해 비자리 복지회관에 세웠다가 2003년 사립 소안학교 터인 이곳으로 옮겼다. 1905년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할 때 친일파 이기용이 섬의 모든 땅을 가로채자 주민들은 토지소유권 반환청구소송을 벌여 1921년 최종 승소했다. 13년간 끈질긴 법정 공방 끝에 승소한 항일투쟁승리기념비다. 사립 소안학교 역시 1923년 주민들이 스스로 건립한 항일 교육의 산실이다.

소안도 항일독립운동의 상징이었던 송내호(1895~1928) 묘소를 지나 물치기미전망대에 오르면 복생도 추자도 솔섬 예작도 기섬 보길도 등 다도해의 섬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망망대해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중에서도 당사도에 유난히 시선이 끌린다. 섬 남쪽 끝자락의 당사도 등대는 당시 소안도 주민들에게는 수탈과 침략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수산물을 비롯해 쌀과 면화 등을 강탈하는 일제의 상선이 지나는 길목을 비추고 있으니 눈엣가시였다. 1909년 2월 24일 새벽 4시 30분 의병 35명은 이 등대를 습격해 일본인 간수 4명을 처단하고, 등대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부숴버렸다. 소안도 항일운동의 기폭제이자 토대였다.

소안도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송내호 묘소. ⓒ박준규


물치기미 전망대에 오르면 다도해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박준규


물치기미전망대에서 멀리 보이는 당사도 등대. ⓒ박준규


소안독립운동기념관에 당사도 등대 의거 모형이 전시돼 있다. ⓒ박준규


미라리해수욕장과 상록수림에서 평온한 휴식

가슴 먹먹한 항일운동의 현장인 소안도에서 미라리해수욕장은 거짓말처럼 평온한 휴식을 선사하는 곳이다. 해변을 걷다가 가만히 앉아 밀려드는 파도를 바라본다. 물살이 몽돌에 부딪히며 내는 자연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멍’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해수욕장 뒤에는 메밀잣밤나무, 구실잣밤나무, 밤나무, 생달나무, 광나무, 후박나무, 보리밥나무, 사스레피나무, 동백나무, 해송이 어우러진 울창한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339호)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바닷바람으로부터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하는 방풍림이자, 주민들이 당제를 지내는 수호신 같은 존재다. 녹음이 가득한 숲길을 걸을 때마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잎사귀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천상의 하모니처럼 들린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섬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호젓하고 평화로운 미라리해수욕장. ⓒ박준규


새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가 어우러지는 미라리 상록수림. ⓒ박준규

박준규 대중교통여행 전문가 blog.naver.com/saka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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