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반도체가 없다고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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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반도체가 없다고 생각해보자

입력
2021.04.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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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이성철콘텐츠본부장

반도체는 미중 경제전쟁 최격전장이자
우리나라 몸값 내세울 유일 자산
기술우위는 삼성뿐 아니라 국가과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전자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우리는 어제의 인프라를 수리하는 게 아닌 오늘날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시스


미중 틈바구니에서 점점 샌드위치, 샌드백 신세 전락이 걱정되지만, 정교하게 줄을 타며 상황을 역이용하면 오히려 우리에겐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들 한다. 몸값을 높이면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을 수 있고, 그러면 중재자 운전자까지 가능할지 모른다고도 한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세상이 그렇게 우리 중심으로 돌아가줄까. 인도태평양전략과 쿼드, 미일과 한미동맹의 밀도차를 종합해보면 바이든 정부가 생각하는 한국의 정치적, 전략적 가치는 트럼프 때보다 분명 하락한 듯하다. 그렇다고 중국이 한국을 존중하는 것도 아니어서, 현재 중국 핵심지도부에선 한국 관련 보고서가 거의 보고되지 않을 만큼 우리의 존재감이 떨어졌다고 한다(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센터장).

몸값은 가치가 입증되어야 올라간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자산이 있나. 지정학적 위치? 희소자원? 탁월한 외교력? 다 아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미중 양쪽에서 구애를 받을 수 있는 요소는 딱 하나, 반도체다. 그리고 반도체 세계 1위 기업 삼성전자다.

우리나라에 반도체 1등 회사가 있다는 건, 자동차나 조선 1위 기업을 가졌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반도체는 21세기 '산업의 쌀'이다. 반도체가 없으면 인공지능(AI)도, 빅데이터도, 자율주행 드론 무선통신 우주항공도 다 불가능하다. 미래 경제패권을 장악하려면 반도체는 전제조건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 외국 반도체 회사까지 백악관에 부른 것도 그런 맥락이다. 첫째, 시진핑의 중국몽을 꺾는 가장 효과적 수단이 반도체라고 판단했다. 반도체 굴기를 향한 천문학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역량, 가장 중요한 나노급 미세공정(패터닝) 기술은 삼성전자와 TSMC에 크게 뒤져 있다. 반도체가 중국의 가장 약한 고리임을 파악한 미국은 가장 강력한 두 회사, 삼성전자와 TSMC를 불러 중국 압박에 동참하도록 쐐기를 박은 것이다. 대중 반도체동맹, 일종의 '반도체 쿼드' 구축인 셈이다.

둘째, 반도체가 절실하기론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기술국가이지만 반도체 자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경제패권 구상에 차질이 생긴다.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전자와 TSMC에 반도체공장을 지어 달라고 한 이유다.

반도체는 이제 미중 패권전쟁에서 가장 격렬한 전선이 됐다. 의도치 않게 삼성전자가 이 전쟁의 중심에 서게 됐다. 중국도 조만간 유무형의 압박을 가할 테고, 미중 모두에 반도체공장을 둔 삼성전자로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중 사이에서 힘이 없어 당하기만 했던 사드 때와는 다르다. 삼성전자는 압도적 기술우위를 점하고 있다. 미중으로부터 협공도 받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구애를 받는 거다. 미중이 사드 때 우리나라 대하듯, 삼성전자를 다루지는 못할 것이다. 기술우위는 그만큼 위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로선 삼성전자와 반도체가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건 기술격차를 유지하고, 가능한 한 벌려 나가는 것이다. 더 투자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전문경영인 역량이 탁월하다 해도, 조 단위 금액이 소요되는 미래투자는 실질적 지배권자의 몫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최고조로 향하는 시기, 그래서 가장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시기인데 삼성전자 최고의사결정권자는 앞으로도 1년 이상을 감옥에 있어야 한다. 정말로 답답한 노릇이다.

반도체 기술선두를 빼앗기는 순간, 우리나라는 더 이상 내세울 몸값조차 없어지게 된다. 이건 삼성전자의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일이다. 친재벌 반재벌 프레임 수준에서 얘기할 문제도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핵심기술 전쟁을 기업 혼자 싸우게 두지는 않는다. 정부도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할 일을 찾아 해야 한다.




이성철 콘텐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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