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회의에서 "다시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며 '반도체 굴기'에 대한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현재 치열하게 진행 중인 중국과의 패권 다툼까지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반도체를 주요 수출 품목으로 내세운 우리나라도 향후 돌아올 손익계산서 짜기가 바빠졌다. 당장, 이번 회의에 호출된 삼성전자엔 대미(對美) 투자 압박 등을 포함해 상당한 청구서가 날아들 전망이다. 이에 업계에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선진국과 달리, 글로벌 반도체 이슈에 미온적으로 대응해 온 정부 탓에 'K반도체'가 다른 나라의 정책과 입김에 따라 흔들릴 것이란 우려 또한 팽배해지면서다.
바이든, 기업 불러놓고 "투자 나서달라"
13일 로이터 등 외신 등에 따르면 이날 백악관 화상회의엔 삼성전자를 비롯해 글로벌 반도체와 자동차 등 19개 사가 참가했다. 삼성전자에선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이 참석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최근 불거진 반도체 부족 사태 등에 대해 짧게 입장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계에 다가온 무게감은 다르다. 백악관도 회의 직후 "다시는 반도체 부족에 직면하지 않도록 미국에 추가 반도체 제조 능력을 장려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기업에 미국 내 투자를 서둘러 달라는 우회적인 압박으로 읽힌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회의에서 "우리의 경쟁력은 여러분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는지에 달려 있다"며 직접적으로 투자에 나서달라고 주문한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반도체 산업 육성" 위해 원팀 구성한 미국
미국에서 천명한 '반도체 굴기'의 핵심은 '세계의 반도체 공장'으로 불렸던 과거 명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출발점은 자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이다. 미국은 이미 정부와 의회가 '원팀'을 구성, 반도체 산업 육성책을 쏟아내고 있다. 막대한 보조금 지원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유도하겠다는 계산에서다. 이를 통해 미국 내 반도체 생산 비율(현재 12%)을 전성기 수준(37%)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속셈이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 지원책을 준비 중인 바이든의 정책이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업계에선 이에 삼성전자에서 검토 중인 170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공장 건설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 연방정부가 삼성전자에 최근 공급난이 심각한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맡아달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인텔은 차량용 반도체 제작 계획 발표와 함께 미 정부에 보조를 맞춘 상태다.
반도체 패권 경쟁 치열한데… 우리 정부 존재감은 미미
미국이 반도체 공장 유치를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내걸었지만 삼성전자로선 고민이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10년 전 중국 정부 요청에 따라 중국 시안에 대규모 낸드플래시 공장 2곳을 세웠는데, 향후 중국 정부로부터 동일한 요청이 들어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칫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추가 반도체 규제를 시행할 경우 삼성전자의 중국 사업은 치명상까지 입을 수 있다.
이처럼 반도체 기술패권을 두고 미·중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우리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삼성전자의 20조 원 규모 반도체 공장 신설 후보지로 처음엔 한국의 평택도 꼽혔지만, 지금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연말 자동차 칩 대란이 발생했지만, 뒷짐만 지고 있던 정부는 넉 달 뒤인 최근에서야 부랴부랴 업체들을 불러모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만 해도 필수 반도체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 반도체 대란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정작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이 거의 전무하다"며 "이런 상태에선 글로벌 기업들과 제대로 된 경쟁도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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