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반도체 대란’으로 자동차 업계에 직격탄이 떨어지면서 국내 기업의 차량용 반도체 시장 진출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과도하게 높은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갈수록 존재감이 부각될 고성능 반도체 육성에도 나서야 한다는 진단에서다.
12일 한국자동차연구원의 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98%는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주요 차량용 반도체인 ‘초소형제어장치(MCU)’의 경우 국내 공급망은 '제로(0)'다.
자동차 전장 시스템 제어용 반도체인 MCU는 현재 수급 차질이 가장 심한 품목이다. 반도체 품귀 현상은 당초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동차 업계의 수요 예측 실패에서 비롯됐다. 시장 회복이 더딜 것으로 예상하고 선주문을 적게 넣은 것이다. 게다가 올해 초 미국 텍사스 한파로 삼성전자와 인피니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의 반도체 공장이 가동을 멈췄고, 세계 3위 차량용 반도체 제조업체인 일본의 ‘르네사스’ 공장 화재,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 공장 가동 차질 등이 겹치면서 반도체 대란을 악화시켰다.
전 세계 MCU 생산량의 70%를 담당해 온 TSMC는 공장 재가동 이후에도 몸살을 앓고 있다. 밀려드는 주문에 반도체 리드타임(발주부터 납품까지 소요 시간)이 기존 12~16주에서 26~38주로 2배 이상 늦어졌다. 시장조사업체인 IHS마킷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반도체 대란으로 인한 자동차 생산 차질은 약 130만 대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현대차, 한국GM, 쌍용차 등은 이달부터 본격적인 생산 차질을 겪고 있다.
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이 이미 글로벌 강자들이 견고하게 자리 잡은 MCU 시장에 진입하기보다 ‘데이터 연산·처리 기능 수행 반도체(AP)’와 같은 고성능 반도체 시장에서 기회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향후 5∼6년간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면 AP 기반의 집중처리형 고성능 제어기가 채택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이유에서다. 차량용 반도체가 AP와 같은 범용 통합 칩으로 점진 통합·대체되고 다양한 종류의 신규 모빌리티에 확대 적용된다면 충분한 수요를 확보하고 규모의 경제도 달성할 것이란 게 연구원의 판단이다.
이지형 자동차연구원 연구전략본부 연구원은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와 반도체 업체의 협력을 통해 인공지능(AI)·보안·데이터 등의 시장에 도전해야 한다”며 “차량용 AP는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고, 사용 주기가 10년이 넘어 지속적인 관리와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데다 엄격한 안정성 검증이 요구되는 만큼 업체의 부담이 커 정부 지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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