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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긴 쓰레기봉투를 외면하듯...

입력
2021.04.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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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노숙자 휴고 텔러약스의 죽음

2010년 여성을 구하려다 강도의 칼에 찔린 뒤 시민들의 방관 속에 약 1시간 반 동안 방치돼 숨진 뉴욕 노숙자 휴고 알프레도 텔러약스. AP 연합뉴스

2010년 여성을 구하려다 강도의 칼에 찔린 뒤 시민들의 방관 속에 약 1시간 반 동안 방치돼 숨진 뉴욕 노숙자 휴고 알프레도 텔러약스. AP 연합뉴스

2010년 4월 19일 일요일 새벽 5시 30분, 뉴욕 퀸스 거리를 걷던 한 여성에게 괴한이 달려들었다. 그 장면을 본 31세 노숙자 휴고 알프레도 텔러약스(Hugo Alfredo Tale-Yax)가 '사태'에 개입했다. 그 덕에 여성은 피신했지만, 노숙자는 괴한의 칼에 찔려 쓰러졌다. 괴한 역시 도주했다. 그 장면이 인근 CCTV에 찍혔다.

CCTV 영상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한 명, 한 명, 약 20명의 시민이 쓰러진 노숙자를 무심히 지나쳤다. 텔러약스 곁에서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든 한 남성은 911 신고를 한 게 아니라 스냅 사진을 찍었고, 또 한 남성은 그의 몸을 다리로 건드려보기도 했다. 흥건한 피를 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역시 가던 길을 갔다. 그렇게 약 한 시간 반이 흐른 뒤인 오전 7시 23분에야 누군가의 신고를 받은 소방구조대원들이 도착했다. 텔러약스는 과다출혈로 숨진 뒤였다.

1964년 뉴욕 퀸스에서 일어난 '키티 제노비스 사건'과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 즉 누가 쓰러져 있든 내 알 바 아니라는 공감 결여의 도시문화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또 한 차례 언론을 달궜다.

어떤 전문가는 영화 게임 노래 등에 만연한 폭력으로 둔감해진 시민들이 게임의 한 장면을 보듯 지나쳤을 것이라며 문화 전반의 자정을 촉구했고, 어떤 이는 행인이 다수여서 책임의식을 못(덜) 느꼈을 것이라고, 만일 혼자서 그 장면을 보았다면 대응도 달랐을 것이라고 비교적 온정적인 해석을 내놨다. 가장 설득력 있는 건 그가 노숙자였기 때문이었다는 해석이었다. 노숙자여서 시선에서 배제되고, 노숙자여서 피를 흘려도 개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리라는 것. 거리의 '찢긴 쓰레기봉투'를 대하듯, 노숙자라면 서둘러 외면하는 데 익숙해진 탓이라는 해석. 그가 버젓한 정장이나 깨끗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면 목숨을 잃지 않았으리라는 거였다.

우리가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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