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서 여관주인으로 베테랑 연기
뮤지컬 배우 서영주는 지금 '영주님'을 연기하고 있다. 다음달 16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맨 오브 라만차'에서다. 주인공 세르반테스가 감옥에서 다른 죄수들을 상대로 연극을 벌이며 자신을 변론하는 이야기다.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만든 연극에서 돈키호테로 변장해 좌충우돌 모험을 벌인다. 이때 죄수들의 우두머리인 도지사는 처음에는 황당해 하다, 어느 순간 연극에 적극 몰입한다. 극중 극 형태인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도지사는 다시 여관주인을 연기하는 식이다. 이때 기사가 되려는 꿈을 꾸는 돈키호테의 눈에 여관주인은 한 성의 영주님으로 비친다. 돈키호테만의 착각 속 인물인 셈. 서영주는 2012년부터 여관주인(영주님)을 맡고 있다.
최근 충무아트센터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서영주는 "1인 2역의 묘미를 살리려면 역할과 역할이 상반된 매력을 보여주는 방식이 연기의 맛을 살린다"고 말했다. 그래서 서영주가 연기하는 도지사와 여관주인은 180도 다르다. 카리스마 넘치고 호통치는 도지사와 달리 여관주인은 친절하고 애교가 넘친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일부 관객은 서영주가 두 역할을 연기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
여러 시즌 동안 여관주인을 맡은 베테랑이라 극을 살리는 위트도 풍부하다. 서영주는 "꼭 대본대로 하지 않아도 되는 대사는 상황에 맞게 새로 만든다"고 했다. 한 덩치 하는 돈키호테의 하인 산초에게 "이 거북이는 뭐야"라고 한다거나,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돈키호테에게 "자기 입으로 그런 말 하기 있기 없기"하고 농담하는 대사가 대표적이다.
여관주인은 극의 주연이 아니지만 돈키호테를 품어주며 관객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서영주는 "'예스맨'인 여관주인은 투덜대면서도, 기사 책봉을 해달라는 돈키호테의 허무맹랑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의리를 지녔다"며 "자신의 여관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돈키호테 일당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서영주는 1991년 연극 '아워 타운'으로 공연계에 입문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대배우다. 뮤지컬의 경우 90년대 초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건달 역으로 처음 대극장 무대에 섰다. 이후 '명성황후' '베르테르' '닥터 지바고' '스위니토드' 등 굵직한 작품을 거쳤다. 악역을 자주 맡은 탓에 그를 악당으로 기억하는 관객이 많은데, 서영주는 "원래 전공은 멜로"라며 "이상하게 제작사들이 최근에 '나쁜놈' 역할만 맡기더라"하며 웃었다.
30년 연기 인생의 소회를 묻자 서영주는 "거창한 철학을 갖고 온 건 아니고 맡은 작품들을 하나씩 끝내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고 했다. 다만 목표가 있다면 “같은 역할을 맡더라도 처음 연기하는 것처럼 긴장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것”. 배우로서 탐나는 역할이 없느냐고 질문하자 "굳이 얘기 한다면"하고 의뭉스런 미소를 짓더니 "이제는 돈키호테를 할 때가 됐다” 며 “꼭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팔색조 매력을 가졌으면서도, 중저음 목소리를 닮아 진중한 그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역할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