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 DNA, 수감자와 비교해 찾아내
범인 "기억 안 난다"며 범행 일체 부인
경찰 "공범도 추적 처벌 받도록 할 것"
2001년 9월 8일 새벽 3시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의 한 연립주택. 돈을 훔치기 위해 공범과 집 안으로 들어간 A(당시 21세)씨는 인기척에 잠을 깬 B씨를 결박했다. B씨의 “살려달라”는 말에 B씨 남편이 깨자 A씨는 B씨 남편(당시 30대 중반)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B씨에게도 흉기를 휘두른 뒤 100만 원을 훔쳐 달아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검정 테이프 등 현장에 남겨진 도구에서 유전자(DNA)를 확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체액과 혈흔에서 DNA 확보는 가능했지만, 도구에서 DNA를 찾는 기술은 당시에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 목격자를 상대로 탐문수사를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A씨 일당이 일면식도 없는 B씨 부부를 범행 대상으로 삼은데다 가스 배관을 타고 창문으로 침입해 지문 확보도 어려웠다. 폐쇄회로(CC)TV도 설치되지 않아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그 사이 사상 최악의 장기미제 사건인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인 이춘재가 2019년 말 33년 만에 붙잡혔다. 사건 당시 증거물에 남아 있던 DNA가 결정적 단서가 됐다. 이춘재는 자신이 저지른 14건의 살인사건 중 5건의 증거물에서 검출된 DNA가 일치해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30년 가까이 증거보관실에 있던 DNA를 분석해 이춘재를 검거하자, 안산단원경찰서 형사들도 20년 전 해결하지 못한 B씨 남편 강도살인범을 붙잡기 위해 검정 테이프 등 당시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지난해 8월 국과수로부터 B씨를 결박하는 데 사용됐던 검정 테이프에서 남성 DNA가 검출됐다는 회신을 받은 경찰은 수형자 DNA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 A씨를 찾아냈다.
A씨는 이미 다른 범행으로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A씨는 경찰이 DNA 분석 결과를 제시하자 “결과가 그렇게 나왔으면 맞겠네요”라며 시인했다가, “당시 본드를 자주 흡입해 기억나지 않는다”며 번복해 현재까지도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공범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며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경찰은 강도살인 혐의로 A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7일 밝혔다. 또 당시 족적 등 증거물과 A씨 주변 인물을 대상으로 공범을 찾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공범 1명도 끝까지 추적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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