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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 "과거의 기억을 묻은 국가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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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 "과거의 기억을 묻은 국가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입력
2021.04.07 13:39
수정
2021.04.07 15:0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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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 ⓒ Lorna Ishiguro

가즈오 이시구로 ⓒ Lorna Ishiguro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신작 장편소설 '클라라와 태양'은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 소녀와의 우정을 다룬다. 민음사는 '클라라와 태양' 국내 출간을 기념해 언론사 공동 줌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시구로로부터 도착한 주요 답변을 정리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한국은 매우 잘 대응했지만 영국에서는 록다운으로 1년간 외출하지 못했다. 노벨상 수상은 환상적이었지만 다른 행성에서 일어난 일 같았다. 내 일터로 돌아오자 모든 게 그대로였다. 글쓰기와 비교하면 수상이나 출판 등의 일은 마치 다른 행성,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품의 배경을 영국으로 설정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는, 미국이 훨씬 젊은 나라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엄청난 변화를 겪으면서 그것을 직접 개조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사회를 보여 주고자 했다. 미국이 그런 점을 훨씬 더 잘 반영할 것으로 생각했다. 두 번째는 에드워드 호퍼나 랠스턴 크로포드, 찰스 실러 같은 1930년대 미국의 미술과 그림에서 나온 이미지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영국식 이미지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이런 특정 배경에 끌렸다."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남아 있는 나날'에는 주인공이자 해설자로 영국 집사가 나온다. 사회로부터 단절돼 있고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대상을 본다는 점에서 그는 로봇과 매우 비슷하다. 로봇인 클라라 역시 매우 이상한 시각에서 인간 세계를 바라본다는 공통점이 있다.그리고 '나를 보내지 마'의 슬픔에 대한 응답 또는 답변 같은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클라라의 태양'은 희망, 그리고 세상에 선함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관한 책이다."

인공지능 로봇, 유전자 복제 등 미래 기술을 다루는 소재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있나?

"'나를 보내지 마'가 출판됐을 때는 이 작품을 SF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클라라와 태양'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사람들이 이제는 인공지능과 유전자 편집의 문제가 오늘날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이슈임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지난 15~20년간 SF는 주류의 일부가 됐다."

무엇을 보고 '클라라'라는 존재를 창작하게 됐나?

"이전 작품의 인물들과 달리 클라라는 거의 백지 상태에서 소설에 들어왔다. 세상에 갓 도착한 아기처럼 처음으로 인간을 바라본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또한 기계의 관점에서 인간 화자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로서 끌렸다. 독자들이 순수하게 시각적인 차원에서 지능형 기계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고도화된 인공지능이라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나?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나?

"이 책을 쓰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 질문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특별함을 다소 과대평가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특별할까?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이 책 전체는 이 질문을 다루려는 시도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2017년 10월 5일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자신의 런던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AP 연합뉴스

가즈오 이시구로가 2017년 10월 5일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자신의 런던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AP 연합뉴스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세계의 많은 사람이 느끼는 불안과 좌절을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이때의 깨달음이 신작에 영향을 끼쳤나?

"연설 당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영국이 세계화된 국가가 되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민족주의적이던 과거의 영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느껴졌다. 비슷한 사건으로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있었다. 이를 통해 여전히 두 진영 사이의 거대한 분열이 존재함을 볼 수 있었다. 책과 문화를 통해 이런 장벽을 넘어 더 많이 대화해야 한다. 오스카 역사상 최초로 최우수 작품상을 한국 영화가 받은 것은 대중문화가 훨씬 더 국제화됐다는 분명한 신호다. 문학의 중요한 역할이 바로 국경을 넘어 이런 문화적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노벨상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한 민족이나 공동체가 망각과 기억 사이의 분투를 어떻게 직시하는지에 대해 쓰고 싶다고 했다.

"지금의 세계를 관찰하면 많은 국가가 과거를 잊어버린 것 같다. 영국은 식민주의에 대한 많은 기억을 묻어버렸고, 일본도 2차 세계대전 전후 일들에 관한 수많은 식민지 역사를 묻었다. 이런 것들이 묻혀 있는 동안에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국가의 기억은 어떻게 작동하며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잊을지 누가 통제하고 결정하는가? 이런 문제는 끊임없이 나를 사로잡는다."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이 작품에 영향을 끼쳤나? 작가로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고 보는가?

"팬데믹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큰 교훈 중 하나가 국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국제기구들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영국은 백신으로 대응을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국제 사회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완전히 실패했다. 국경을 넘는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대처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UN, IMF, 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들이 생겨났듯 오늘날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완전히 새로운 국제기구들이 필요하다. 특히 국제적 차원에서 과학에 대한 자금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 독자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K-팝과 한국영화처럼 지난 10~15년간 한국은 문화의 근원지로 국제적으로 매우 중요해졌다. 내 책이 매우 미래 지향적인 문화가 만들어지는 현장인 한국에서 읽히게 되어 매우 기쁘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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