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면서도 다르다... 장르적 재미 충실한 조폭영화 '낙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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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면서도 다르다... 장르적 재미 충실한 조폭영화 '낙원의 밤'

입력
2021.04.0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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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박훈정 감독 신작... 9일 넷플릭스 공개

영화 '낙원의 밤'은 제주로 도피한 폭력배의 사연을 차갑게 그려낸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낙원의 밤'. 넷플릭스 제공

회칼이 번득인다. 쇠파이프가 춤을 춘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엉겨 붙는다. 스크린에서 용도폐기 된 줄 알았던 조직폭력배가 돌아왔다. ‘낙원의 밤’은 조폭 영화의 화려한 귀환을 알린다. 사회 이슈를 어설프게 거론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장르적 재미를 위해서만 질주한다.

①이 영화 차갑다

시작부터 화면엔 냉기가 어려 있다. 폭력배들 사이 건조한 대화가 살벌하다. “이 바닥 일이 다 그렇지 뭐”라는 심드렁한 대사가 131분 동안 펼쳐질 이야기의 온도를 예고한다.

폭력조직의 중간 간부인 박태구(엄태구)는 라이벌 조직 북성파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부한 후 참담한 사고 소식을 듣는다. 태구는 두목 양 사장(박호산)으로부터 사고 배후에 북성파가 있다는 말을 듣고 행동에 나선다. 양 사장은 태구의 복수를 발판 삼아 조직 사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다. 태구는 러시아로 밀입국하기 위해 제주로 숨어든다. 그는 은신처에서 시한부 삶을 사는 여인 재연(전여빈)을 만난다. 양 사장과 태구의 예상과 달리 일은 꼬이고, 태구는 더 큰 위험에 처한다. 영화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의 낭떠러지로 밀린 태구와 재연의 사연을 엔진 삼아 파국으로 내달린다. 낭만이라는 수식이 제격인 휴양지 제주는 비정한 장소로 변모한다.

영화 '낙원의 밤'은 낭만의 섬 제주를 배경으로 냉혈한 조폭의 세계를 담아낸다. 넷플릭스 제공


'낙원의 밤'은 익숙한 조폭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자기만의 색깔을 지녔다. 넷플릭스 제공


②익숙하면서도 다르다

많이 본 듯한 장면이 화면을 채운다. 조폭들의 비릿한 음모는 특별하지 않고, 회칼과 쇠파이프가 동원된 집단 난투극은 익숙하다. 도피 중인 남자와 불치병에 걸린 여자의 농밀한 감정 교류도 특별하진 않다. ‘영웅본색’ 시리즈 같은 홍콩 누아르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여럿 있고,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야쿠자 영화 ‘소나티네’(1993)를 닮기도 했다. 언뜻 여러 영화를 짜깁기한 아류 영화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낙원의 밤’은 여느 조폭 영화와 다르다. 박훈정(영화 ‘신세계’와 ‘브이아이피’ ‘마녀’ 등 연출) 감독은 여러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 속에 자기만의 인장을 새긴다. 회칼과 쇠파이프에 총을 더하며 한국 영화가 이전에 표현하지 못했던 그림을 그려낸다. 제주의 이국적인 풍광과 피비린내 나는 사연을 대비시키며 비극을 극대화하고, 영화 종반 복수의 비장한 쾌감을 최대치로 끌어낸다.

인상적인 장면이 여럿인데 양 사장과 북성파의 2인자 마 이사(차승원), 형사 박 과장(이문식)이 중국음식점에서 대면하는 모습에서 박 감독의 솜씨가 특히 돋보인다. 3인이 각자의 속내를 드러내며 서로를 어르고 윽박지르면서 긴장을 빚어내는 장면에서다. 3인의 모습이 함께 담긴 컷과 각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컷을 배치해 인물들의 감정과 대립을 끌어올리는 연출이 능숙하다.


③배우의 매력이 빛난다

무뚝뚝한 인상의 엄태구에게 말수 적은 폭력배 태구는 맞춤옷 같다. 그는 쇳소리로 짧은 말들을 툭툭 던지며 여러 감정을 담아낸다. 무표정에다 말의 높낮이가 엇비슷한데도 어느 말에는 살기가 담겨 있고, 어느 말에는 은근한 정이 스며 있으며 어느 말에는 물기가 어리기도 한다.

전여빈 역시 기억할 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젊은 나이에 삶의 종점을 바라보고 있는 재연을 체념과 분노와 연민이 뒤섞인 감정으로 표현해낸다. 차승원도 인상적이다. 냉혈한이면서도 나름 조폭의 품격을 지키려는 마 이사를 느물거리는 연기로 소화한다. 재연의 삼촌이자 은퇴한 무기상 쿠토를 연기한 이기영과 이문식은 출연 분량은 짧지만 인상은 강하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극장 개봉을 건너뛰고 9일부터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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