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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의 '히어로' 보살

입력
2021.04.07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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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현
자현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중국 쓰촨성 대족석각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자현 스님 제공

중국 쓰촨성 대족석각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자현 스님 제공

불교는 2500년이라는 실로 어마무시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원 전후에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오고, 금와왕이 개구리에서 변신하고, 주몽은 자라와 물고기로 된 징검다리로 엄리대수를 건넌다. 이런 어벤저스의 시대보다도 500년 전에 불교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불교에는 여러 차례의 대대적인 업그레이드가 있었다. 세상의 변화 속에 화석처럼 존재했다면, 불교 역시 역사라는 거대한 박물관 속의 한 페이지로 전락했을 것이다.

PC 시장에서 도스 체제를 재해석하며, 일반인의 관점에서도 쉬운 접근이 가능하도록 한 프로그램이 윈도다. 윈도를 통해서 PC는 전문적인 어려움을 벗고 대중으로 확대되며, 마침내 인터넷을 통한 3차 산업혁명을 촉발해 내기에 이른다.

불교 역사에서 도스가 윈도로 바뀌는 사건, 이것이 소승(부파)불교 시대에 대승불교가 등장하는 변화의 혁명이다. 소승이 수행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면, 대승은 적극적이고 구제에 투철한 대자비의 불교이다.

이때 새롭게 등장한 이상인격이 바로 보살이다.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관세음보살·지장보살·문수보살 같은 분들이 대승의 가장 강력한 히어로다. 이 중 관세음보살을 천수천안 즉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진 존재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모든 곳을 다 보고 모든 이들을 어려움에서 구원해 준다는 무한 오지랖을 상징한다. 또 SNS에서 참을성이 좋거나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는 좋은 사람을 '보살'이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맞춤한 판단이다.


경주 기림사 관음전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자현 스님 제공

경주 기림사 관음전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자현 스님 제공

대승은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포교에 보다 적극적이었다. 이것이 동아시아가 대승불교권이 되는 이유다. 물론 여기에는 동아시아의 '우리'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정서가 대승의 오지랖과 잘 맞은 부분도 존재한다.

인터넷 브라우저에 크롬이나 익스플로어, 파이어폭스 등이 존재하는 것처럼, 불교 안에 소승이나 대승이 존재하는 구조도 이와 유사하다. 이 때문에 불교의 창시자는 붓다지만, 대승에서는 강한 실천력의 구제자인 보살을 더욱 선호한다. 즉 대승은 불교를 보살이라는 브라우저를 통해서 보는 보살교인 셈이다.

붓다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일체의 장신구가 없고, 최소한의 의복인 가사만을 착용한다. 그러나 보살은 중생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자비의 히어로이기 때문에, 화려한 보관에 다양한 장신구를 착용한 귀족의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즉 심플과 화려함으로 붓다와 보살이 구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붓다와 보살 중 누가 더 높을까? 당연히 불교니 붓다가 높다. 그런데 왜 보살이 보다 중요한 신앙대상이 되는 것일까? 그것은 집이 정전이 되면, 청와대에 민원을 넣는 것보다 한전에 문의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과 같다. 즉 보살이 붓다보다 가깝고 보다 유용한 대상인 것이다. 집에 불이 났을 때 필요한 것은 먼 바닷물이 아니라 욕조물인 것처럼 말이다.

흥미롭게도 대승에서는 이상인격도 보살로 칭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낮은 신도도 보살로 부른다. 즉 최고와 최저가 모두 보살로 칭해지는 것이다. 이는 큰 관점에서는 인간의 본질적인 평등을 상징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도움받는 대상인 동시에 누군가를 돕는 도움의 보살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깨달음을 목적으로 진정한 행복을 향해 가는 우리 모두는 함께 걷는 동료인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차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인 동시에 국가수반으로서 국민을 인도하듯, 보살 역시 우리와 같은 평등한 존재인 동시에 우리의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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