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서 윤여정은 '깐깐하고 예민한' 배우로 유명하다. tvN '꽃보다 누나'에서 이미연은 그의 실제성격에 대해 "깐깐하고 예민하시다. 그런데 귀여우시다"라고 말했고, 김희애는 "굉장히 스마트하시다. 누가 뭘 하고 무슨 얘길 하는지 금방 캐치하신다"고 전해 눈길을 모았다.
본인 또한 JTBC '뉴스룸' 출연 당시 "깐깐해보이지 않고 유해보이게 할 수 있지만 내 것 같지 않았다. 나의 예민함 때문에 배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밀고 나갈 생각이다"라고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윤여정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떤 질문에도 유연하게 받아치는 배우들이 있는 반면, 그는 "(이 질문은) 정말 기분 나쁘네"라고 즉각 응수하는 스타일이다. 당당하고 거침없는 성격은 때때로 상대방을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가식적이고 억지로 꾸며내는 사람은 확실히 아니다.
이렇듯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은 윤여정의 연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영화 '바람난 가족'(03) '여배우들'(09) '하녀'(10) '돈의 맛'(12) '다른 나라에서'(12) '자유의 언덕'(14) '장수상회'(15) '계춘할망'(16) '죽여주는 여자'(16) 등 매 작품에서 선굵은 연기를 보여주며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왔다. 그가 맡은 역할은 '윤여정이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캐릭터들로 대중의 뇌리에 남았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출발한 윤여정은 데뷔 55년 차 대선배다. 스스로 '노배우'라 표하며 "젊은 사람들이 뭔가를 이뤄내는 모습을 볼 때 너무 장하다"고 말하는 그다.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미나리'에 참여하게 된 것도 쿨한 성격이 한몫했다.
"교포 2세들이 만드는 작은 영화에 힘들지만 보람 있게 참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기쁜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저도 상상을 못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된 것 만으로도 너무 영광이다"라고 전한 윤여정은 최근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배우조합상(SAG) 여우조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글렌 클로스('힐빌리의 노래') 올리비아 콜먼('더 파더') 헬레나 젱겔('뉴스 오브 더 월드') 등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수상자로 호명된 윤여정은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감격을 표한 그는 "동료 배우들이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선택해줘서 영광이다. 기쁘고 행복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배우조합상은 연기자 노조인 미국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으로, 지난해 영화 '기생충'이 비영어권 최초로 최고상인 앙상블상을 수상해 화제를 낳은 바 있다. '오스카의 바로미터'로 꼽힌다는 점에서도 이번 수상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미국 아칸소주로 건너간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삶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냈다. 윤여정은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해 미국으로 찾아온 할머니 순자 역을 맡아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지난 2월 진행된 '미나리'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윤여정은 "촬영할 때는 (너무 더워서) 일을 빨리 끝내고 시원한 데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정도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사람들이 좋아하길래 좀 놀랐다"며 "영화를 보면서는 나나 다른 배우들이 뭐 잘못했나 그런 거만 연구했다. 그런데 본 사람들이 막 울고 그러더라. '왜들 이렇게 우니?' 했더니 '선생님만 안 운다'고 하더라"라는 일화를 전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감독이 불러 무대 앞으로 나갔을 때 기립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작은 영화에 그저 힘을 보태기 위해 참여했던 윤여정은 지금의 영광은 상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까칠하고 냉정한 면모 뒤에 감춰진 후배들을 향한 따뜻한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과거 윤여정의 카리스마를 직접 접했던 기자이기에 배우조합상 수상 당시 소녀처럼 수줍어하고 감격하던 그의 눈물이 더욱 뭉클하게 다가왔다. '미나리'는 작품 그 자체로도 소중하지만 윤여정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선사한 영화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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