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혐오 확산, 흑인 폭력만 부각되면 또 다른 인종갈등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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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혐오 확산, 흑인 폭력만 부각되면 또 다른 인종갈등 낳는다"

입력
2021.04.07 12:00
수정
2021.04.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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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인터뷰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아시아인을 겨냥한 혐오 범죄가 급증하면서 미국 곳곳에서 이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4일(현지시간) 3,000여 명의 시위대가 아시안 혐오 범죄를 규탄했다. 뉴욕=AFP 연합뉴스

아시아인들을 향한 미국 내 혐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거리에서, 상점에서, 지하철에서, 예고없는 공격이 빈발하고 아시안의 분노와 공포도 함께 커지고 있다. 한인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대체 왜 지금 아시안일까? 일시적일까, 아니면 더 심해질 수도 있을까? 재미 사회학자인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으로부터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들어봤다.

여성 등 약자가 집중 타깃

-아시안 혐오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

"2020년 미국 16개 대도시 경찰자료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 혐오범죄는 전년보다 7% 줄었지만 아시안 혐오범죄는 150%나 증가했다. 'STOP AAPI HATE'(아시안·태평양계에 대한 증오를 멈추자)란 단체의 비공식 자료를 보면 지난해 3월부터 올 2월까지 무려 3,800여 건에 달하는 아시안 혐오 사건이 발생했다. 더 충격적인 건 이 중 68%가 여성이 타깃이란 사실이다."

-아시안을 향한 공격 유형은 어떤가. 조직화된 범죄 양상을 띠는지.

"패턴을 분류해보면 첫째로 '묻지마'식 혐오나 범죄, 둘째로는 젊은 남성이 아시안계 노인 및 여성 등을 골라 폭행하는 약자공격형 범죄, 셋째로 온·오프라인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인종차별적 언어 혐오, 마지막으로 10대들이 장난 삼아 하는 행위, 예를 들면 소셜미디어상에서 누가 아시안계를 더 잘 공격하나 내기하는 경우 등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 조직적 공격은 아니고 개인 차원의 일탈행위로 봐야 한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이 증폭되면 집단 간 갈등이나 물리적 충돌로도 번질 우려가 있다."

트럼피즘, 코로나, 반중정서의 합작품

-아시안 혐오가 최근 들어 심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트럼프의 유산으로 봐야 하나.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트럼프 시대에 수면 위로 올라온 반이민 정서가 코로나로 인해 반중국, 반아시안 정서로 옮겨 붙은 거다. 알다시피 트럼피즘은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트럼피즘이 극심한 분열과 증오의 자양분을 제공했고, '코로나 바이러스=중국'이라는 프레임이 맞물리면서 증폭된 것이다. 여기에 소셜미디어 발달로 가짜뉴스나 편향된 생각이 급속도로 퍼진 것도 일조했다. "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위협당하는 백인 노동자' 프레임으로 당선에 성공한 트럼프(왼쪽)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명명하는 등 임기 내내 분열과 증오, 반이민과 반아시안 정서를 증폭시켰다. 오른쪽은 2017년 1월 취임 1주일 만에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신시내티 시청 앞에서 벌어진 항의 시위. 디모인·신시내티=AP 연합뉴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그렇다쳐도 흑인들은 왜 아시안을 공격하나. 흑인들 또한 인종주의의 피해자 아닌가.

"아시안을 혐오하는 이들을 보면 백인들은 트럼피즘 선동에 빠져 아시아계가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아 갔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일부 흑인과 히스패닉계도 이러한 프레임에 동조하게 된 것이다. 확실히 코로나는 미국 내 반중국 정서를 확대시켰다. 아시안 혐오 범죄에서 항상 나타나는 “중국으로 돌아가라!” “코로나바이러스를 퍼뜨리지 마라!” 등의 표현이 그 방증이다. 다만 아시아계 인종을 외모, 언어만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보니 한인까지 자연스레 타깃이 됐다."

-미국은 초창기 중국인 이민자들이 급증하자 1882년 중국인을 타깃으로 이민금지법(Chinese Exclusion Act)을 만든 적이 있다. 미국 내 아시안 혐오의 뿌리가 꽤 깊고 오래된 것 아닌가.

"미국은 유럽 이민자를 주축으로 건국된 백인사회였다. 그런 만큼 애초부터 유색인종인 아시안에 대한 이해가 적고 차별이 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20세기 초 중국인 철도 노동자 착취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의 수용소 격리는 잘 알려진 사실이고, 아시아인의 미국 이민을 차별하는 법도 1965년이 되어서야 폐기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반일감정이나 현재의 반중감정에 기반을 둔 아시아 혐오정서를 흑인 노예 혹은 전통적 흑인 인종차별주의와 비교할 만큼 심각하거나 뿌리가 깊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미·중 갈등이 더욱 심화되면 반중정서에 기반한 아시아 혐오는 지속되거나 증폭될 수도 있다고 본다."

중국인 차별이 드러나는 1882년 정치 카툰(왼쪽)과 1886년 세탁세제 광고. '자유의 황금 문'에 중국인 남성의 입장이 금지되고, 고정관념대로 묘사된 중국계 미국인을 쫒아내고 있다. ⓒ위키피디아


애틀랜타 참사, 주미대사 행보에 한인사회 실망

-한인사회 분위기는 어떠한가.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아시안계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아시안 혐오 반대운동이 일어나고 있고, 젊은층들은 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반면 'BLM(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에 비해 주류 사회의 관심이나 지원은 적은 편이다. 1992년 LA 폭동이 연상되어 염려하는 한인도 있고, 애틀랜타 총격 사망 사건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정치지도자들이 현지를 방문해 유감을 표한 반면 주미대사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아 실망을 표하는 교민도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들이 한인회를 주축으로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 근절을 촉구하는 대규모 차량 시위를 벌인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LA=연합뉴스

-미국경찰의 상황 판단과 대응이 안이하다는 비판도 일었다. 아시안 혐오범죄를 공권력이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닌지.

"맨해튼 필리핀계 할머니 발길질 사건에서 바로 앞 건물 경비원이 폭행을 지켜보면서도 외면하는 영상, 뉴욕 지하철 폭행에서 아무도 말리거나 돕지 않고 일부는 오히려 환호를 보냈던 영상, 샌프란시스코 중국계 할머니 폭행에서 가해자는 들것에 실려 의료진과 경찰의 보호하에 있었지만 정작 피해자는 홀로 남겨진 영상 등이 퍼져나가며 아시안 사회를 분노하게 했다. 공권력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비판은 존재한다. 그러나 BLM과 달리 이번 아시안 혐오 반대운동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나 반발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아시안계 혐오 범죄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되거나 은폐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중요한 차이점이다."

한국문화 소비층과 혐오 주도층 달라

-영화 '기생충'이나 '미나리', BTS 같은 K팝 등 아시안 문화, 특히 한국 문화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아시안 혐오도 증가하는 현상은 얼핏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아시안 문화나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층과 혐오하는 층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기생충, 미나리, BTS 등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소비하는 그룹은 대학생을 비롯한 중산층 이상으로 그 범위가 비교적 제한적이다. 반면 반중국 정서는 훨씬 더 광범위하면서도 중국발 코로나로 인한 실업 등 일상과 밀접한 문제이기에 이 둘을 상호 모순적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미국에선 몇 년 전부터 영화, K팝 등 한국문화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신 소장은 아시안 문화를 소비하는 층과 혐오하는 층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윗줄 왼쪽부터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윤여정씨의 제27회 미국배우조합상(SAG) 여우조연상 수상, 영화 '기생충'의 2020 아카데미시상식 4관왕, 지난해 빌보드 차트를 휩쓴 BTS의 MTV방송 출연 모습. SAG·AFP연합뉴스·빅히트 제공

-어쨌든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스스로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이런 혐오범죄를 접할 때마다, 결국 아메리칸 드림은 허상이고 아시안은 영원한 이방인이란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과 아메리칸 딜레마가 공존하는 곳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군나르 뮈르달(Gunnar Myrdal)은 1944년 이미 미국 내 인종갈등을 아메리칸 딜레마라고 지적했다. 구글,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등 최첨단 IT기업의 수장이 이민자임을 봐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는 건 맞지만, 인종차별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 있고, 트럼피즘을 통해 ‘미국은 백인들의 것’이라는 속내가 드러나기도 했다. 다만 지난 수십 년간 소수민족의 지위는 꾸준히 향상됐고 트럼피즘은 이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아시안=영원한 이방인'이라는 명제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민 1세대 한인 중에는 미국 정치보다 한국 정치에 더 관심이 많고,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또한 아시안계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향상됐지만 상대적으로 정치·문화적 파워는 여전히 약하다. 미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영향력을 키우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시안 혐오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있을까.

"미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사회, 정치, 인종 간 분열과 갈등을 줄여야 한다. 스탠퍼드 동료이기도 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사회 통합을 위해 학교에선 영어만 사용하게 하고, 전 국민에 공통된 국가 서비스를 부여하는 국민신조(national creed)를 만들자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동화정책으로 회귀하기보다는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아시안의 경우 자신들의 권익 신장을 위한 재단 설립이나 프로그램에는 적극적이지만 흑인, 히스패닉계 등 상대적으로 뒤처진 소수민족과의 공생 노력은 미흡하다. 혐오 범죄는 특정 그룹에 대한 오해나 편견에서 비롯되는 만큼 공존에 대한 인식과 노력이 절실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 총격 사건이 발생했던 애틀랜타를 3월 19일 방문해 아시안계를 향한 폭력을 규탄하고 “침묵하면 공범이 된다. 우리는 공범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목소리를 내고,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틀랜타=UPI 연합뉴스

-미국 정치계나 시민사회계에서도 아시안 혐오범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정치인뿐 아니라 사회적 인플루언서들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 아시아 혐오범죄 해결을 위한 TF를 설치했다. 내가 속한 스탠퍼드대학에서도 총장을 비롯해 교수, 학생 그룹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세미나를 열고 있다. 각지에서 혐오범죄 규탄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유의할 점은, 소수민족 간의 대결로 몰고가거나 반흑인 정서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시안 혐오범죄에서 흑인들의 폭력이 부각되고 있지만, 온·오프라인을 통해 훨씬 더 광범위하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인종차별적 언어혐오는 오히려 백인이 다수다. 나아가 혐오자에 대한 단죄 못지않게 정치적 분열과 증오를 가져온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팬데믹 이후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됨에 따라 혐오범죄가 더 기승을 부릴까 염려되는 상황이다."

한국사회도 자성의 계기 삼아야

-사실 한국에서도 이 문제를 다룰 때 일부 폭력사태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걱정스런 대목이다. 한국 언론이 이 사안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몇몇 폭력적 사건에 집중하다보니 흑인들의 범죄성이 부각되고 자칫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인종차별적 편견이 강화될까 걱정스럽다. 아시안 혐오는 단지 흑인 등 소수민족과의 이슈가 아니다. 백인 우월주의 신봉자들의 인종차별적 언행, 아시안 혐오현상을 가져온 분열의 정치, 사회·경제적 불평등 등 구조적 요소를 절대 간과해선 안 된다."

홍콩 일간지에 실린 한국 언론의 관점에 대한 기사. 아시안 혐오 사건에서 가해자의 인종, 특히 흑인을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아시안 혐오범죄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과연 건강한가'란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 내의 혐오와 폭력에 대한 성찰과 제도적 장치 마련도 시급하다고 본다. 한국에서도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고, 특히 결혼이민자와 이주노동자 등 외국인 대상의 혐오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2019년 전 세계 1만5,000명의 이민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Expat Insider) 결과 한국은 '이민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 64개국 중 최하위권인 55위를 기록했다. 혐오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사회 분위기와 교육적,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탓이다. 코로나 피로감과 경제 불평등 심화, 성소수자·외국인 거주자 증가 등으로 혐오범죄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한국 사회도 제도적 정비가 절실하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은…
미국 내 손꼽히는 아시아 전문가다.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미 워싱턴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20년째 스탠퍼드대학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아시아태평양연구소와 한국학프로그램 소장을 맡고 있다. 20여 권의 영문 저서 외에 한글로 쓴 '슈퍼피셜 코리아: 화려한 한국의 빈곤한 풍경'이 있다.

송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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