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미라 22구 새 박물관 이전 행사
역사 도시 관광자원화 위해 3년 전부터 준비
현수막·국기로 TV 스펙터클과 빈민가 단절
3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고대 이집트 파라오(왕)들의 미라를 새 박물관으로 옮기는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찬란한 과거를 되살리겠다는 구상이지만 스펙터클 이면에 숨겨진 초라한 현실이 오히려 도드라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외신에 따르면 이날 저녁 카이로 시내에서 약 2시간 동안 ‘파라오들의 황금 퍼레이드’라는 이름이 붙은 행사가 거행됐다. 타흐리르 광장의 이집트 박물관에 100년 넘게 보관돼 오던 고대 이집트 왕국의 파라오(18명)와 왕비(4명)의 미라를 8㎞ 떨어진 신축 문명박물관으로 이전하는 게 행사의 목적이었다.
미라들은 훼손 방지용 질소충전상자에 담긴 뒤 특수 충격흡수장치가 장착된 차량으로 30여분간 이동했다. 고대 파라오 미라 22구가 한꺼번에 금색으로 치장된 차에 태워져 의장대의 호위 속에 카이로 시내를 관통하는 장면은 이집트 국영 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행렬은 시대 순서로 기원전 16세기 파라오인 세케넨레 타오 2세가 맨 앞에, 기원전 12세기 람세스 9세가 맨 끝에 배치됐다. 67년간 군림하며 이집트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람세스 2세와 이집트 첫 여성 파라오인 하트셉수트의 미라도 포함됐다. 새 거처에 도착한 미라들은 21발의 예포를 맞으며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옮겨온 미라들은 추가 보존 처리를 거쳐 대형 전시실에 영구 전시된다.
이집트는 이번 행사를 위해 3년 가까이 공을 들였다. 이미 카이로를 역사 도시로 꾸며 관광자원으로 만든다는 구상에 따라 2017년 문명박물관을 부분 개관한 터였다. 행사 참관을 위해 카이로를 찾은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사무총장은 AFP통신에 “미라를 단순히 이전하는 것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며 미라의 보존 상태와 전시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봤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교롭게 행사를 코앞에 두고 대형 사고가 잇달았다. 지난달 23일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좌초해 전 세계의 물류의 핵심 통로인 수에즈 운하가 막힌 데 이어 같은 달 26일에는 중부 소하그 지역에서 두 열차가 추돌해 32명이 숨지는가 하면, 이튿날 바로 카이로에서 10층짜리 건물이 무너져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파라오의 저주’라는 미신까지 입길에 오르내렸다. 왕의 안식을 방해해 죽음을 불렀다는 것이다.
이들 사고도 저주라기보다 인재(人災)지만, 이집트에 필요한 건 도시의 분식(粉飾)이 아니라 내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이날 “TV용 스펙터클이 상기시킨 건 이집트의 영광스러운 과거와 불확실한 현재 사이의 어울리지 않는 단절”이라며 “공간을 분리한 현수막과 대형 깃발이 TV 시청자를 카이로 빈민가로부터, 지역 주민들을 세련된 스펙터클로부터 각각 격리시켰다”고 꼬집었다. 도시 계획가인 아흐메드 자자는 신문에 “정부가 기존 현실을 개혁하기보다 더 나은 그림을 보여주는 데에만 애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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