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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 줄서기' 요구 없었지만... 韓 ‘줄타기 외교’ 가시밭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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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 줄서기' 요구 없었지만... 韓 ‘줄타기 외교’ 가시밭길

입력
2021.04.05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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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부터),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이 2일 미국 워싱턴 인근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3자회의에서 함께 걸어가며 대화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부터),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이 2일 미국 워싱턴 인근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3자회의에서 함께 걸어가며 대화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 투톱이 지난 주말 동시에 미국과 중국을 방문했다.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와 한중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두 회담에선 북핵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지면서 당초 우려했던 미중 간 노골적인 '줄서기' 요구는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겠다는 정부의 '줄타기 외교'는 미중 경쟁 틈에서 여전히 어려운 과제를 받아들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아나폴리스도 샤먼도 北이 핵심 의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州)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일본 국가안보국장과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백악관은 3일 언론 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관한 우려를 공유했다"며 "3국 간 조율된 협력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3일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두 장관은 업무 오찬까지 함께하면서 양국 관계 발전 및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 방안을 협의했다. 정 장관은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중국은 우리 정부의 한반도 항구적 평화 정책과 완전한 비핵화 정책을 지지한다"며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고, 중국도 할 수 있는 협력을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3일 중국 샤먼 하이웨호텔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시작하기 전 팔꿈치로 인사하고 있다. 샤먼=연합뉴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3일 중국 샤먼 하이웨호텔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시작하기 전 팔꿈치로 인사하고 있다. 샤먼=연합뉴스


미중, 안보·기술경쟁 관련 한국에 손짓

노골적으로 편들라는 요구는 없었지만 미중 간 신경전은 한국이 여전히 시험대에 올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백악관은 "3국 실장이 인도·태평양 안보 문제를 포함한 공동의 우려 사안에 대해 협의했다"며 "공통의 안보 목표를 수호하고 진전을 이루기 위해 협력하겠다는 변함없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인도·태평양 안보 문제'는 남중국해 문제 등 중국의 역내 위협 견제를 위해 한미일 3국이 머리를 맞댔음을 드러낸 말이다. 아울러 미중 간 패권경쟁 분야로 떠오른 반도체 문제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한국에 협조를 요청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왕 부장은 정 장관과의 회담에 앞서 "국제법에 기반해 국제 질서를 유지하고 다자주의를 함께 지키며 공동의 이익을 확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은 그간 미국에 대해 '선택적 다자주의'라고 비판해왔다. 중국이 한국과의 '외교·안보(2+2)대화' 재개 추진에 적극 나선 것도 미국을 염두에 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한미가 여러 소통 채널을 복원하는 가운데 중국도 한국에 제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창구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부장은 "중국과 한국의 경제는 고도로 통합돼 있으며 이해의 공동체가 됐다"며 5G·집적회로·인공지능(AI)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조했다. 첨단기술을 둘러싼 미국과의 경쟁을 다분히 의식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서훈 "북미대화 조기재개" 美 "제재 이행" 온도차

미중은 북핵 문제를 두고도 온도차를 보였다. 서훈 실장은 한미일 안보실장회의 후 특파원들과 만나 "북미협상의 조기 재개를 위한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는 데 3국이 뜻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백악관 언론성명에는 해당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바라는 '관여' 대신 '안보리 결의의 완전한 이행'을 강조했다.

반면 왕 부장은 "한국과 함께 대화 방식으로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무력시위를 이어가는 가운데 '대화와 관여'를 언급하며 우리 정부 입장에 힘을 실은 것이다.

이르면 이달 말쯤 검토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북한의 반응도 주목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 대해 '대미 추종외교'라고 비판할 가능성은 있지만,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대화를 중시한 중국 입장을 고려해 당장 미사일 발사 등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교부가 한중 외교장관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힌 만큼 한중·북중 정상회담 개최 여부도 한반도 상황에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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