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 돌며 도벌 방지하고 소나무 심어
경기 광주시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에 들르면 꼭 가는 곳이 정상에 있는 수어장대(守禦將臺)다. 병자호란 때 장군들이 전투를 지휘했던 곳이라는 역사성도 있지만 이 일대를 그림같이 에워싸고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 수천 그루 때문에 더 사랑받고 있다.
남한산성 행궁 뒤편 노송지대에서 건너편 봉우리를 보면 소나무가 거의 없는데 이 곳만 유독 수령 100년 안팎 된 소나무가 빼곡하다는 사실에 관광객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많다.
이 노송지대 면적은 어림잡아 21만㎡를 넘는다. 남한산성 내 소나무는 모두 1만4,000그루가 조금 넘는데 고목들은 대부분 이곳에 모여 있다. 침엽수는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가 더 많다는 얘기도 있어 이곳에는 항상 산림욕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몰려 있다.
남한산성 노송지대 소나무 숲에는 이곳 산성리 주민들의 나무사랑이 숨어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석동균ㆍ이영래씨 등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가산을 털어 ‘금림조합’을 결성했다. 당시 40여 명의 조합원들이 6명씩 교대로 노송지대를 지키면서 도벌꾼들을 쫓아내고 나무를 심고 가꿨다. 이곳 적송들의 수령을 감안하면 이 때 상당수 소나무들이 심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합원은 나중에 303명까지 불어났고 여유가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용역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조합활동을 1960대 초까지 이어왔다.
조합원들은 한 달에 쌀 한 말을 보수로 받았고 비용은 석동균ㆍ이영래씨 등이 부담했다. 두 사람의 후손은 현재 남한산성에서 각각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석동균의 손자인 석관징(76)씨는 “지금 식당 겸 카페로 쓰고 있는 행랑채에 조합원들이 거주하며 노송지대를 순찰하고 벌목꾼들을 잡아 반성문을 쓰게 했다고 들었다”면서 “내가 어렸을 때도 산성 내에서 벌목은 엄격히 금지돼 다들 산성 바깥에서 들여오는 나무를 땠다”고 말했다.
이영래의 고손자 이종화(64)씨는 “당시 조합원들이 산성 내 20만 평에 달하는 숲을 심고 가꿨다”면서 “남한산성은 행궁이 있는 곳이어서 벌목과 무덤쓰기가 금지돼 나무들이 많다 보니 도벌꾼들이 자주 찾아 석동균씨 등은 말을 타고 다니며 이들을 감시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이곳 주민들은 1년에 하루 가지치기가 허용된 날 간벌도 하고 땔감도 얻었다”면서 “격변기를 거치면서 이주 등으로 조합활동이 축소되면서 소나무 군락지가 지금처럼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는 산성 내 모든 소나무에 고유번호를 부여해 특별관리하고 있다. 매년 생육환경을 조사하고 2년마다 나무주사를 놓아 고사목을 예방하고 있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이용희(54)씨는 “싱그러운 솔 향이 너무 좋아 1시간씩 산림욕을 하다 간다”면서 “자생적인 노송지대인 줄 알았는데 이곳 주민들이 가꿨다니 더욱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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