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학대 바이오공학과 교수
현재의 세포는 생명체가 최초로 존재했던 세포에서 유래한다는 게 세포생물학의 기본 가정이다. 지금과 미래의 내 모습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서열 때문이다. 가깝게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로 인해 어떤 병에 걸릴지 정해진다. 병원에서 가족력 질문을 받는 것이 이 때문이다.
유전자 서열은 ‘유전체 지도(genome map)’로 불린다. 인간 유전체 지도는 30억 쌍이나 되는 유전자(염기) 서열을 순서대로 짜맞춰 놓은 것이다. 이 유전체 지도는 도착지 정보를 알려주는 일종의 내비게이션이다.
사람 세포핵 속 DNA(4개 염기 서열의 반복)를 모두 연결하면 길이가 2m나 된다. 컴퓨터 코드가 예컨대 010101처럼 0과 1이 반복적으로 이뤄진 것과 동일하다.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를 통틀어 유전체(Genomeㆍ2만5,000개 이상의 전체 유전자)라고 한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 유전체가 분석됐으며, 사람마다 단일 염기 다형성이 달라 개인 유전체학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DNA 서열을 해독하면 질병을 예측할 수 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2011년 자신이 걸린 췌장암 원인을 알려고 1억 원이 훨씬 넘는 비용을 들여 유전체 분석을 했다. 유전체 분석 비용은 이젠 60만 원대로 저렴해졌다. 미국에서는 유전체 분석으로 신생아 목숨을 살리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DTC(direct to consumer) 유전자 검사가 시행되고 있다. 이 검사는 70여 개 유전자를 타액 검체에서 개별 염기 변화(단일 뉴클레오티드 다형성ㆍSNPs)를 분석하고 특정 질환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병 위험을 추정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이 검사 기관을 넓히고, 검사 항목도 70개로 확대했다.
미국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유방암을 일으키는 유전자에 SNP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선제적으로 유방절제술을 받았다. 우리나라도 자신의 유전자를 검사해 영양소 대사ㆍ카페인 대사ㆍ탈모ㆍ피부 타입 등 생활 습관 등을 알아낸다. 최근에는 DTC 유전자 검사로 맞춤형으로 화장품ㆍ식품 등을 제공한다.
미국에서는 유전체 서열을 모두 분석해 유전체 지도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회사들도 생겼다. 유전체를 모두 분석해야 하기에 해석이 쉽지 않다. 아직 인간 유전자 기능 및 질병과의 관련성이 대부분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시행되는 DTC 유전자 검사는 생활 습관ㆍ대사ㆍ피부 등에 관련 있는 70개 유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반면 해외 유전체 검사는 질병 유전자도 검사하므로 데이터 축적이 많이 됐다. 두 검사 모두 개인 유전자 정보에 기반해 생활 습관 변화ㆍ약물 처방을 하고 있어 개인 맞춤형 의료 원리는 비슷하다. 유전체 데이터가 더 많이 축적되면 개인 유전체 지도로 병 예방ㆍ약물 처방ㆍ치료 등이 더 정확해질 것이다. 다만 부적절한 해석과 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지나친 걱정을 경계해야 한다.
유전체 내 특정 서열 변화와 질병과의 관련성을 구체화하려면 유전체 빅데이터를 도표화(mapping)해야 한다. 유전체 검사와 간이 유전체 분석 비용이 각각 60만 원 이하, 20만 원 이하가 되면 수요자가 늘면서 빅데이터가 쌓이고 이에 따라 더 정확한 해석이 가능해질 것이다.
바이오 빅데이터를 선점하는 나라가 ‘건강한 노화국’을 실현할 수 있다. 다만 개인의 유전체 지도를 오용하지 못하도록 정보 보호 대책 마련도 빼먹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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