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발생한 사망사고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
법원 "경찰, 부실한 초동수사로 직무상의무 위반"
유족, 국가상대 손배소 승소... "1억3000만원 배상"
23년 전 성폭행으로 숨진 여대생의 유족이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경찰의 부실수사로 유족이 오랜 기간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국가가 유족들에게 총 1억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 이관용)는 2일 이른바 '대구 여대생 사망사건' 피해자인 고(故) 정모(당시 18세)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가 정한 손해배상 원금은 총 5,500만원이지만, 피해 발생 시점인 1998년부터 지연이자를 더하면 전체 배상규모는 약 1억3,000만원으로 늘어난다.
대구 계명대 간호학과 신입생이었던 정양은 1998년 10월 17일 새벽 대구 달서구 인근 고속도로에서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사고 현장 인근에서 정씨 속옷이 발견되는 등 성폭행을 의심할 만한 단서가 있었지만, 경찰은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내렸다.
진실은 15년이 지난 후에야 드러났다. 2013년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스리랑카인 A씨의 유전자정보(DNA)가 정씨 속옷에서 채취된 정액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A씨는 스리랑카인 공범 2명과 정씨를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10년인 특수강간죄 대신, 특수강도강간죄(공소시효 15년)을 적용해 A씨를 구속 기소했다. 다만 "범죄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A씨는 2017년 7월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당시 경찰의 부실수사만큼은 이번에 법원에서 인정됐다. 유족이 낸 소송을 심리한 재판부는 "경찰이 사건 발생 직후 교통사고로 성급하게 판단해 현장 증거를 수집하지 않고 증거물 감정을 지연하는 등 부실하게 초동 수사를 했고, 이는 경찰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위법"이라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재판 과정에서 국가 측은 '유족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이 2013년 9월에서야 A씨를 기소했고, 원고들은 이때야 비로소 수사기관의 잘못을 알 수 있었다"면서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점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면하는 결과를 인정한다면 이는 정의와 공평의 관념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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