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혹은 전염병은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어쩌면 이런 무기력한 상황, 우리가 나약하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요. 코로나 사태가 비극적이고 끔찍하긴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나약한 인간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레일라 슬리마니)’
“전직 대통령이 탄핵되는 것을 보며 단호하고 명확한 법의 언어에 비해 문학의 언어가 상대적으로 무력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법의 언어가 사후적인 데 반해, 사전에도 사후에도 동시대에도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문학의 언어만이 가지는 힘인 것 같습니다”(한유주)
견고하다고 믿었던 사회 시스템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앞에서 무너졌고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은 급작스러운 변화 앞에서 허물어졌다. 프랑스와 한국의 젊은 여성 소설가는 이 무기력하고 나약한 시대를 어떻게 진단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2일 저녁 6시 30분부터 유튜브에서 생중계된 ‘2021 세계작가와의 대화 레일라 슬리마니ㆍ한유주 대담’은 “우리의 나약함에 대하여”라는 주제 아래 이에 대한 대답을 함께 찾아가는 자리였다.
이날 두 작가는 코로나로 인해 바뀐 일상에 대해 공유하기도 하고 SNS, 문학의 언어,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슬리마니가 “일거수일투족을 SNS에 올리는 행위가 바보같다는 생각을 해서 최근에 모든 SNS에서 탈퇴했다”는 근황에 대해 말하자, 한유주 작가는 “가짜뉴스가 SNS에 범람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이걸 완전히 접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국과 프랑스 문학 모두 미투 고발 이후 큰 변화를 겪어온 만큼 여성 작가로서 여러 공감이 이뤄졌다. 슬리마니는 “최근 한국의 중요한 작가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한국 문학에서 여성의 위치, 한국에서 페미니즘의 입지, 여성에 대한 시각이나 사회에서의 위치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한유주 작가는 “이전까지는 막연하게 이상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해온 것들에 대해 사회에서 이름 붙이고 바꿔가는 과정인 것 같다”며 “문학은 이 변화를 실시간으로 흡수하고 있고, 과거의 작품들도 성평등의 관점에서 재평가되고 다시 쓰기가 시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처럼 1982년에 태어난 여성으로서 이 변화를 지켜보고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여성, 소외 계층, 소수자에 주목한 작품으로 프랑스 문학에서 신성으로 떠오르는 작가다. 2016년에는 소설 ‘달콤한 노래’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을 영화화한 ‘퍼펙트 내니’가 지난해 국내 개봉하면서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주요 작품으로는 ‘오크의 정원에서’, ‘달콤한 노래’, ‘그녀, 아델’, ‘섹스와 거짓말’ 등이 있다. 한유주 소설가는 2003년 단편소설 ‘달로’를 통해 등단한 후 기존 소설의 형식을 해체하고 전복하는 작품세계를 선보여왔다. ‘숨’, ‘연대기’,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등의 작품이 있다.
이날 행사는 대산문화재단과 주한 프랑스 대사관, 교보문고 주최로 이뤄졌다.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는 서울국제문학포럼과 동아시아문학포럼이 열리지 않는 해마다 해외 작가를 초청하는 ‘세계작가와의 대화’ 행사를 개최해왔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내한이 이뤄지지 못한 대신 한유주 작가와의 온라인 대담으로 진행됐다. 이날 대담은 이후 대산문화재단과 주한 프랑스 대사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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