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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황과 '빚투'

입력
2021.04.0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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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코스피가 상승 출발한 1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자리로 향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3,087.40에 마감됐다. 연합뉴스

코스피가 상승 출발한 1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자리로 향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3,087.40에 마감됐다. 연합뉴스

배가 정박을 해야 하는데 거센 파도로 어려움을 겪을 때 배에서 수영을 가장 잘하는 이가 몸에 밧줄을 맨 채 바다로 뛰어든다. 헤엄을 쳐 육지에 오른 뒤 바위에 밧줄을 걸어야 다른 이들도 무사히 상륙할 수 있다. 유대인은 이런 일을 하는 이를 ‘아케고스’(archegos)라고 불렀다. 창시자, 인도자, 대장 등의 뜻을 갖게 된 연유다. 성경에선 예수님을 뜻한다.

□ 한국계 헤지펀드 매니저 빌 황(한국명 황성국ㆍ56)의 자산운용사인 ‘아케고스캐피털’이 전 세계 금융가를 뒤집어놨다. 고3 때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월스트리트에서 한국 등 아시아 기업에 투자한 타이거펀드의 높은 수익률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2012년 내부 거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며 활동이 어려워지자 등록 의무가 없는 ‘패밀리오피스’를 차렸다. 목사 아버지를 둔 그는 “투자는 하나님이 준 사명”이라며 '아케고스'를 강조했다. 그런데 그가 투자한 회사의 주가가 급락하자 은행들이 담보로 잡았던 주식을 강제 청산하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와 노무라 등 은행들의 손실은 100억 달러(약 11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 투자업계에선 그가 과도한 빚 때문에 실패한 것으로 본다. 빨리 재기하겠다는 생각에 너무 욕심을 낸 나머지 무리하게 레버리지(지렛대) 투자를 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그는 보유 자산의 5배에 달하는 빚을 내 주식을 사 들였다. 그러나 탐욕의 끝은 비참하기 마련이다. 최악의 금융 사고로 남은 1998년 롱텀캐티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사태도 결국 자본금의 26배나 되는 1,250억 달러(약 140조 원)를 투자한 게 화근이었다.

□ 워런 버핏의 초기 동업자인 릭 게린의 교훈도 빚투를 경고한다. 그는 무리하게 빚을 내 주식 투자를 하다 주가가 하락하자 자신의 버크셔해서웨이 지분까지 버핏에게 넘기고 말았다. 우리도 안심할 수 없다. 주식 신용거래융자 규모가 22조 원도 훌쩍 넘어 사상 최대치다. 돈을 빌려 준 증권사는 천사가 아니다. 주가가 떨어지는 순간 담보로 잡은 주식을 사정 없이 매도할 것이다. 이런 반대 매매는 패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빚투는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드는 아케고스처럼 위험하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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