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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효과 없었나… 유엔 “北, 암호화폐 해킹으로만 3600억 탈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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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효과 없었나… 유엔 “北, 암호화폐 해킹으로만 3600억 탈취"

입력
2021.04.01 19:3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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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제품 121차례 '쪼개기' 밀수 등
제재 감시망 회피 수법도 더 정교화
"일자리 20만개 증발"... 주민만 피해
"김정은 정책 실패"도 민생고 한 몫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북한 열병식에서 공개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 보고서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북한 열병식에서 공개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 보고서

핵ㆍ미사일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전방위 제재에도 북한은 최근 2년간 3,600억원을 벌어들였다. ‘암호화폐 해킹’으로 탈취한 돈만 이 정도다. 금수 품목인 정유 제품, 각종 무기도 감시망을 피해 대담하게 거래했다. 그 결과, 핵ㆍ미사일 기술은 빠르게 발전됐지만 제재 피해는 고스란히 북한 주민들에게 돌아갔다. 여기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실패한 경제개혁은 주민들을 더욱 ‘빈곤’으로 몰아 넣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공개한 400쪽 분량의 전문가패널 보고서를 보면 적어도 북한 수뇌부엔 장기간 지속된 제재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우선 북한은 2019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금융기관 및 암호화폐 거래소를 해킹, 3억1,640만달러(약 3,575억원) 상당을 훔쳤다. 탈취한 암호화폐는 중국 비상장 거래소들의 ‘돈세탁’을 거쳐 현금화했다. 북한은 또 합작회사의 해외 계정, 홍콩 위장 회사, 가상사설망(VPN) 등 각종 ‘온라인 기법’을 동원해 국제 금융시스템에 접근한 뒤 불법 수익을 올렸다.

정유제품 밀수에 가담해 적발됐던 '뉴콩크'호가 다른 선박으로 위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위성사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 보고서

정유제품 밀수에 가담해 적발됐던 '뉴콩크'호가 다른 선박으로 위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위성사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 보고서

기존 제재를 피하기 위한 수법도 정교해졌다. 정유제품 수입 한도는 ‘쪼개기’ 수법으로 계속 위반했다. 북한은 지난해 1~9월 121차례에 걸쳐 정유 제품을 들여왔는데, 제재위는 안보리가 정한 수입 상한선(연간 50만배럴)을 몇 배는 초과했을 것으로 본다. 한 회원국은 “상한선의 8배는 밀수입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른 선박 명의를 도용하는 ‘선박 바꿔치기’ 도 새롭게 등장했다. 가령 과거 여러 차례 환적 방식으로 정유제품 밀수에 가담했던 ‘뉴콩크’호는 지난해 팔라우 선적(무손328)에 부여된 식별번호를 발신하며 운항하다가 적발됐다.

이렇게 거둬들인 막대한 자금은 대부분 핵ㆍ미사일 ‘고도화’ 작업에 쓰였다. 지난해 북한은 수 차례 열병식에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중ㆍ단거리 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보였는데, 모든 사거리의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게 전문가 패널의 평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이바흐 승용차.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 보고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이바흐 승용차.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 보고서

결국 제재는 민생고만 가중시켰다. 북한 당국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 등 김 위원장이 사용하는 고급 외제차와 사치품들은 제재에 아랑곳 없이 대거 사들였다. 하지만 에너지 금수조치로 대중교통과 농업은 직격탄을 맞았고, 벌목이 많아진 탓에 삼림은 황폐화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감염병 확산까지 겹쳐 의료ㆍ보건 관련 물품 부족 현상도 만연했다. 제재위는 “제재 영향으로 북한 주민 2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서에 적시했다.

유엔이 대북 제재를 강화한 2017년 이전부터 김정은 정권의 실책으로 이미 북한 경제는 파탄 났다는 의견도 나왔다. 2012년 시행한 김 위원장의 농업ㆍ경제개혁 조치가 참담한 실패로 끝난데다, 평양 10만호 건설 등 대형 국책사업이 경제 사정을 한층 어렵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두 회원국은 “북한은 김씨 일가의 체제 안정과 연속성을 의료와 식량 안보 등 다른 국가적 사업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제재위 전문가 보고서는 15개 안보리 이사국의 승인을 받아 공개됐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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