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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의 자녀, 코다의 삶

입력
2021.04.01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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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이지선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즐겨보는 TV 채널 중 하나가 오래전 방송되었던 인간극장 프로그램을 연속 재방송을 해주는 채널이다. 그중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현정이라는 초등학생의 일상을 담은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이는 음성언어와 수어를 모두 사용할 줄 알기 때문에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와 수어를 모르는 조부모와 동생을 포함한 이웃 사이에서 자주 통역사가 되었다.

먼저 용어 정리가 필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청각장애인은 청력 손실과 상실로 인해 의사소통의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병리적 시각을 담은 데다가 청각장애에는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노인성 난청 등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음성 언어 대신 ‘수화 언어(수어)’라는 독특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농인(聾人)’을 선호한다고 한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잘못된 표현은 아니지만 농인의 입장에서는 청각장애를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 농문화(Deaf Culture)라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소수집단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또한 소리를 듣는 사람들을 비장애인이 아니라 ‘청인(聽人)’으로 지칭한다.

약 80%의 농인들이 농인끼리 결혼을 하는데 농인가정에서 청인 자녀를 출산하는 비율이 약 90% 정도를 차지하니 대부분의 가족은 농인 부모와 청인 자녀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현정이와 같은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는 영어로는 Children of Deaf Adults로 줄여서 코다(CODA)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 손의 말(수어)과 입의 말(구화)을 둘 다 사용할 줄 알며, 자연스레 부모의 농문화와 청인문화라는 이중문화 속에 살아간다. 그렇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무음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 스틸컷. KT&G 상상마당 제공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 스틸컷. KT&G 상상마당 제공

나의 코다(CODA)에 대한 관심은 ‘반짝이는 박수소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찾아 보는 데까지 이어졌다. 농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청인 자녀인 이길보라 감독이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웃음 많고 금실 좋은 부모의 일상을 보여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농문화를 엿보게 해주며 또 청인 자녀로 성장한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짐작해보게도 해주었다.

연구에 따르면 청인 자녀는 어린 시절 부모의 장애로 인해 친구로 부터 놀림을 받아 부끄러움을 경험하거나, 사람들 앞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부모와 말을 하지 않고 거리를 두기도 하며, 주위로부터 ‘부모한테 잘해야 한다’는 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자라는 부담감 등을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먼 곳에 있는 학교를 선택해 기숙사에 가거나 과중한 통역의 부담을 회피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청인 중심의 사회에서 농인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아픔과 낙인, 좌절을 경험하면서 코다로서의 새로운 정체감으로 수용한다고 한다. 외국의 경우 청인 자녀의 60%가 수어 통역사나 특수교사 등 농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농문화와 코다(CODA)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들인 ‘반짝이는 박수소리(2014)’의 이길보라 감독이나 ‘나는 보리(2020)’의 김진유 감독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귀와 입을 대신하는 무게와 책임감으로 일찌감치 ‘애늙은이’ 소리를 듣고 자라며,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부모와 함께 세상의 편견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다. 이제 이 아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두개의 문화 속에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정서적, 사회적 지지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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