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성영화 OTT '퍼플레이' 조일지 대표
"지금 한국에서 가장 보기 힘든 것은 뭘까." 5년 전 한국퀴어영화제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조일지(35) 퍼플레이 대표가 내린 답은 바로 '여성영화'였다. 2015년 여성감독이 연출한 상업영화는 3편에 그쳤다. "여성영화가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가봤더니 좋은 영화가 너무 많은 거예요. 영화제가 아니면 이 좋은 영화들을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죠." 어떻게 하면 잘 만든 여성영화를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할까 고민 끝에 탄생한 게 퍼플레이다. 국내 유일의 여성영화 전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다.
조 대표는 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필름으로 찍은 임순례 감독의 초기작부터 300여편의 여성영화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중 90%는 퍼플레이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성평등을 가늠하는 지수인 벡델 테스트를 포함한 20개 자체 기준으로 까다롭게 선별된 여성영화다. 여성 감독이 만들었거나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젠더 이분법에 도전하고 성평등 가치를 담고 있다.
퍼플레이를 꾸리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 대표와 페미니스트 모임에서 만난 창립 멤버 총 6명은 당시 모두 생업이 따로 있었다. 2016년 처음 퍼플레이를 기획했지만 2년이라는 시범 서비스 기간을 거쳐 2019년 12월에야 홈페이지를 열고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투자금은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과 텀블벅을 통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마련했다. 지난달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 1호 OTT이지만 "넷플릭스만큼 돈을 많이 버는 게 꿈"이기도 하다.
"퍼플레이가 진짜 돈을 많이 벌어서 여성감독이 다음 작품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으면 좋겠어요. 계속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죠. 우리가 하는 일이 곧 수익이 되고, 그게 다시 여성영화인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퍼플레이는 콘텐츠 수익의 70%를 창작자에게 돌려준다. 회원 수를 더 늘리는 건 일차 목표다. 1년 만에 회원 2만명을 확보했지만 갈 길이 멀다.
이 모든 게 '다양한 콘텐츠를 통한 성평등한 문화 확산'이라는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서다. 퍼플레이는 온라인 매거진 '퍼줌', 뉴스레터 '퍼플레터'로 여성영화와 관객을 연결하는 데도 힘쏟고 있다. 전주국제제영화제와 카라동물영화제 등 온·오프라인 영화제를 열고, 영화를 활용한 성평등 교육 콘텐츠도 만드는 등 여성과 영화를 키워드로 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는 사이 영화계에서는 여성영화의 약진이 거론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실질개봉작 165편 중 여성 감독과 주연은 각각 21.5%, 42.1%로, 역대 최대치다. 하지만 이는 대체로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여성영화가 손해를 감수하고 개봉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는 게 영진위 설명이다. 남성감독의 영화가 크게 줄면서 여성감독 비중이 늘었다는 것. 실제로 지난해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신인 여성 감독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점이 그 방증이다. 하지만 제작비가 높은 SF, 사극, 액션, 판타지 등 장르에선 여성 감독이 전무했다.
"여성 감독이 활약하는 현 상황이 앞으로 10년, 20년은 지속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여성영화도 더 풍부해지고, 한국의 콘텐츠도 다양해지지 않을까요. 더이상 '여성영화'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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