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 맞은 정순민 극장장
대학로 터줏대감 아르코예술극장(예술극장)이 개관 40주년을 맞았다. 예술극장을 거쳐간 연극, 무용, 국악 등 작품만 6,500여개로, 공연예술의 산실이다. 그간의 역사도 대단한데 불혹의 극장은 변신을 꿈꾸고 있다. 무대 제공 역할을 넘어 '문화 공론의 장'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지난해 4월 1일 취임한 정순민(52) 극장장이 있다.
29일 예술극장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정 극장장은 "극장이 무대를 지원하고, 공연을 홍보하며 표를 파는 일은 소극적인 역할('최소주의')에 머무는 것"이라며 "공연 상품을 소비하는 곳을 넘어, 담론을 통해 지적 공동체를 만드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정 극장장은 예술인과 관객의 만남을 확대할 계획이다. 정 극장장은 "관객은 공연에 관한 호기심을 해소하고, 예술가는 피드백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며 "공연장이 대관업무만 하는 곳이라는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극장으로서 관객개발에도 앞장선다. "주 고객이었던 예술가에 신경 쓰느라 관객을 돌보지 못했다"는 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로와 친근한 대학생들이 편히 들르는 극장을 구상 중이다. 이들은 미래의 잠재 관객이다. 정 극장장은 "학생들이 예술극장에서 공연 보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공연이 없는 평일 낮 시간을 활용해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예술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팅(배양)' 시설로도 눈을 돌린다. 정 극장장은 "비어있는 연습실을 내어주는 차원을 넘어, 공연 관련 연구자료를 제공하고 제작진을 위해 다른 예술가들을 초청해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런 구상들은 원래 취임과 동시에 추진하려던 역점사업이었지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늦춰졌다. 지난해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 모든 걸 걸었다. 결과는 확진자 발생 0명을 기록해 성공적. 정 극장장은 "예술극장의 방역 노하우를 토대로 조만간 정부와 '공연장 방역 가이드라인'을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정 극장장의 임기 내 사명 중 하나는 예술계의 상처를 치유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팝업씨어터' 사건 등의 재발방지를 말한다. 정 극장장은 "지난 1년은 예술극장을 떠난 이들을 보며 그들의 불신이 얼마나 깊고 광범위한지 각성하는 시간이었다"며 "진심으로 예술인들께 사과한다"고 밝혔다. 취임 이후 정 극장장의 공개 사과는 처음이다. 정 극장장은 "극장은 예술인의 동반자일뿐 시혜자가 아니다"라면서 "다시 공감하고 연대하며 공동의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 했다.
한편 예술극장은 1일부터 한달간 극장 로비와 지하연습실 등에서 40주년 기념 전시 '없는 극장'을 개최한다. 건축가 김수근이 지은 예술극장 자체가 전시 대상이다. 관객은 헤드폰을 끼고 극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전시는 예술극장이 폐관하고 40년이 지난 2121년이라는 가상의 해를 배경으로 했다. 이제는 사라져서 없는 극장에서 지난 역사를 회고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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