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개인 문집 교정본 완질, 일본 도서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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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개인 문집 교정본 완질, 일본 도서관에 있었다

입력
2021.04.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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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전서 교정본,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 등 
국내엔 없는 완질본 日 세이카도문고에
"국외 소장 한국 전적 꾸준한 조사 필요"

편집자주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들과 문화재 전문가들이 그동안 잘 몰랐던 국외 문화재를 소개하고, 활용 방안과 문화재 환수 과정 등 다양한 국외 소재 문화재 관련 이야기를 격주 토요일마다 전합니다.


정조의 개인 문집인 홍재전서 60권 본(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정조가 왕세자 시절부터 국왕 재위 기간까지 지었던 시문 등을 모아 규장각에서 1787년 편집한 것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활자 인쇄본인데 붉은 표시가 여러 군데 남아 있어요.”

열심히 조사목록을 작성하던 연구원이 주기 사항의 표시를 하기 위해 책을 보여주면서 필자에게 한 말이다. 순서에 따라 작업이 이루어지던 터라 작업을 잠시 멈추고 책을 유심히 살펴봤다. 책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빠짐없이 붉은색 먹으로 표시된 흔적이 또렷이 보였다. 얼핏 보면 잘된 문장에 점을 찍는 비점(批點)처럼 보였지만, 오탈자와 고르지 않은 부분 등의 인쇄상태를 바로잡는 표시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2016년 여름 일본 도쿄의 세이카도문고에서 조사 일정 마지막 날에 확인한 '홍재전서'의 교정본이었다.


홍재전서 교정본. 옥영정 교수 제공


홍재전서는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직접 지은 시와 문장을 모아 엮은 문집으로서, 1814년(순조14)에 총 184권 100책으로 간행됐다. 조선 역대 국왕의 저술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이며, 금속활자인 정리자로 인쇄됐다. 내용은 시문뿐만 아니라 신하들과의 응답, 재위기간 중에 편간된 서적의 해제 등 다양한 내용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

'빨간펜' 처리된 세이카도문고의 홍재전서는 어떤 과정에 있던 책이었을까. 홍재전서의 최종 간행은 1814년 3월에 이루어졌으나 완간까지 총 4차례의 편찬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1차 편찬은 1787년 8월에 있었으며, 60권으로 2질이 사자관(공문서 글씨를 쓰는 관직)이 쓴 필사본으로 만들어졌다. 60권 본은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운현궁유물로 전해진다. 총 60권 60책으로 책 하나하나를 비단으로 장황한 뒤 10책씩 1함으로 묶어 정교하게 제작된 포갑에 싸서 보관됐다. 2차 편찬은 1799년 12월에 191권으로 2질이 필사본으로 만들어졌다. 3차 편찬은 1801년 12월에 있었으며 184권 100책이 필사본으로 만들어졌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 소장된 100책의 필사본이 이에 해당한다.

홍재전서 교정본(왼쪽)과 교정이 반영된 최종 간행본. 옥영정 교수 제공


4차 편찬의 결과물이 1814년에 간행한 184권 100책 본이다. 30질이 간행된 것으로 알려지는데 규장각, 장서각, 수원화성박물관 등에 완질로 남아 있다. 연구팀이 조사한 세이카도문고의 홍재전서는 100책의 정리자(금속활자) 인쇄본으로 4차 편찬이후 간행 직전 교정 인쇄본이다. 홍재전서가 1814년 3월에 간행되었는데, 그 직전에 교서관에서 교정용으로 인쇄하고 실제 교정을 본 책인 것이다.

세이카도문고의 홍재전서 100책의 교정은 원고 교정, 판서본 교정, 인쇄본 교정 등 여러 교정 유형 중에 인쇄본 교정에 해당한다. 완간된 홍재전서와 대조해 보면 교정 표시한 내용이 거의 대부분 반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00책의 완질본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금속활자 교정본으로 교정의 실태뿐만 아니라 김재찬, 김조순, 심상규, 남공철 등 교정 관원으로 참여했던 주요 인물의 흔적도 확인할 수 있어서 의미가 큰 책이다. 활자 교정본은 간행 전 최종 교정에서 사용하였다가, 간행 후에는 해체하여 종이를 재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00책에 달하는 교정본이 완질로 전하는 것은 처음 발견된 사례로, 내용의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한 교정을 하였고, 내용뿐 아니라 활자의 필획과 기울기, 조판의 형태 등 형태적인 면에서도 완전무결함을 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사립도서관 세이카도문고의 전경. 옥영정 교수 제공


서지학 연구의 보고 '세이카도문고'...한국 전적 635종 3,436책 소장

교정본 홍재전서를 소장하고 있는 곳은 일본 도쿄의 세이카도문고다. 세이카도문고는 일본 도쿄의 세타가야구에 있는 미술관과 도서관으로, 20만여 권의 고전적(古典籍)을 소장하고 있어 도요문고, 나이가쿠문고 등과 함께 동아시아 서지학 연구의 보고로 불린다. 1892년에 이와사키 야노스케가 설립했고, 그가 사망하자 아들 이와사키 고야타가 뜻을 계승해 문고를 발전시켰다. 일본 국보 7점, 중요문화재 83점을 포함하여 대략 20만 책(한적 12만, 일본서 8만)의 고전적을 수장하고 있다.

‘정가당(세이카도)’이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의 대아 기취편의 '변두정가'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조상의 영전에 바치는 공물을 정결하고 아름답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로 대한화사전을 편찬한 모로하시 데츠지가 문고장을 역임하였으며, 당시 궁내성 도서료 직원이었던 이다 료헤이의 도서 정리 작업과 함께 나가사와 기쿠야, 가와세 가즈마 등 서지학계의 저명한 인물이 합류하여 1929년에 정가당문고국서분류목록, 1930년에 한적분류목록을 편찬·간행하였다. 이후 1939년에도 정가당문고국서분류목록속을 간행하였으며, 1951년에 정가당문고한적분류목록속, 1956년에 국서분류목록재속을 편간하는 등 꾸준히 소장 도서의 정리가 이루어졌다. 특히 이 문고에 포함된 청나라 류신위안의 구장서 한적 4,146부 4만3,218책은 중국 송본과 원본의 보고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전까지 이 문고에는 한국 전적이 약 100종 정도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에서 2016~2017년 2년에 걸쳐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 635종 3,436책에 이르는 한국의 고전적이 소장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그동안 세이카도문고에 있는 한국 전적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고서목록에 한국 전적은 ‘국서(國書, 일본서)’에 포함되거나 중국서인 ‘한적’에 수록되었고, 일부분만 항목으로 구별하고 별도의 한국본 목록의 간행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년에 도록과 해제를 겸비한 '세이카도문고 소장 한국 전적'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발간함으로써 이 문고 내 주요 한국 전적의 전반적인 내용확인과 연구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세이카도문고에 소장된 전적의 유입은 구입, 기증 등 다양한 경로의 장서 확충정책으로 이루어진 것이 확인된다. 한국 전적에 대한 별도의 수집경로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문고에 포함된 기우치 주시로의 장서를 다량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기우치 주시로는 설립자인 이와사키 야노스케의 형 야타로의 차녀와 결혼했던 인물로, 그가 죽기 직전에 그의 장서가 세이카도문고에 들어오게 되면서 전해진 것이다. 그의 장서는 1924년에 세이카도문고로 편입되었고, 그 중에 한국 전적은 1905년부터 조선통감부의 상공국장으로 조선에 왔다가 1910년 농상공부 장관에 지명되기도 한 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서울에 거주하던 일본 학자들이 서물동호회를 조직하고 전적을 수집한 일련의 활동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들이 수집한 전적의 일부 또는 전체가 일본의 각급 도서관에 남아서 문고로 남은 것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도쿄대의 아가와문고, 오구라문고, 교토대의 가와이문고, 덴리대의 이마니시류 장서, 도요문고의 마에마 교사쿠 장서, 오사카부립도서관 소장 한국전적 원소장자였던 사토 로쿠세키 장서, 게이오대 와타나베 긴조의 장서 등이 그러하다.

국내엔 완질본 없는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도 세이카도문고에

635종 3,436책에 달하는 세이카도문고 한국 전적에는 앞서 언급한 홍재전서 외에도 국내에 결질로 일부만 남아 있는 전적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게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이다.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는 송나라 당신미가 짓고 구종석이 수정한 '경사증류대전본초'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유통된 대표적 약물학 서적으로 중국 본초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대부분의 본초학 서적에서 언급되며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저작물이다.

1577년에 간행된 을해자본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 옥영정 교수 제공


조선에서 다시 간행된 경사증류대전본초와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 중에 경사증류대전본초는 목판본으로 번각되었지만,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는 금속활자인 을해자로 1577년경에 간행됐다. 을해자는 갑인자와 더불어 조선 전기의 대표적 금속활자다. 기존의 중국본과는 다른 10항 19자의 판식으로 새롭게 편집된 것이다. 중국 회명헌 간본과 비교해보면, 자체나 음각 및 삽도의 판각방식이 상당히 유사하지만 항자수나 어미의 모양이 다르다. 항과 자간을 넓혀 글자를 좀 더 크고 여유롭게 배열한 것도 특징이다.

국내 소장본은 모두 온전하지 않은 결질이며 고려대 만송문고에 8책(목록, 권1-8, 권13-14, 권20-26)을 제외하고 1책씩만 남아 있다. 세이카도문고본은 위의 간본과 동일한 을해자본으로 30권 11책의 완질이다. 이는 조선전기 금속활자인쇄술 연구에 크게 활용될 수 있는 자료이며, 무엇보다도 국내에 그 전례가 없는 완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록문화유산 중요...국외 소장 한국 전적 꾸준한 조사·연구 필요

한국 전적에 대한 연구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의 소장본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초기 일부 사람들에게만 전해지던 한국 전적의 소장 유무가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 실체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막연하게 일본이나 중국, 북미, 유럽 등지에 소장되어 있을 것으로 여겨졌던 일련의 한국 고서들이 조사와 목록집을 통해서 정확한 수치와 규모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한국에서의 유출경위가 의심돼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전적이 있지만, 문화교류의 산물이거나 혼란기에 외국 수집가들이 수집해간 것도 상당수다. 코로나19 상황 이전까지 국외 소장처에 직접 방문해 연구하는 인력이 점차 증대하면서 한국에는 없는 유일본이거나,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희귀본이 다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지게 됐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을 비롯하여 북미, 유럽의 각급 대학도서관이나 문고 등에서 발견된 희귀서는 바로 그러한 사례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전적의 소장정보 역시 해당국의 목록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까지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추산은 되고 있으나, 여전히 소장처와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전혀 예상치 못한 국가나 장소에서 한국의 전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우리 문화유산으로서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기록문화유산이고, 그것이 바로 전적인 점에서 우리가 세밀하게 파악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꾸준한 기초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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