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편지가 준 울림... 의사는 손부터 잡아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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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편지가 준 울림... 의사는 손부터 잡아주는 사람

입력
2021.04.06 21:30
수정
2021.04.0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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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상현 가정의학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사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 종사자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소년에게.

이름을 부르지 못해 미안하구나. 솔직히 네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하지만 30년 세월이 흘렀으니 너도 이해해줄 거라 믿어. 이름을 모르니까 그냥 소년이라고 부를게.

내가 너를 만난 것은 전공의 2년 차 때 서울 변두리 어느 크지 않은 병원에 파견 나갔을 때였어. 격일로 당직을 서던 어느 밤 너를 응급실에서 만났지. 심야에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은 주로 교통사고 환자이거나, 몸 상태가 안 좋은 어르신이거나, 고열이 나는 아기들이지. 그런데 너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어.

“선생님, 환자 왔어요.”

응급실 간호사의 전화에 잠을 깨 내려가 보니 네가 누워 있더구나. 너는 약을 여러 알 복용했고, 의식이 흐린 상태에서 가족에게 발견돼 병원에 오게 됐지.

사실 약물 중독 환자는 전공의 1년 차 때부터 많이 접했어. 특히 너를 만나기 1년 전 강화도 병원에 있을 때는 농약 중독 환자를 자주 겪었지. 농약이 농사 목적이 아니라 생명을 포기하려 할 때도 쓰인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곤 했단다. 팍팍했던 당시 농촌 현실이 그런 극단적 시도를 많이 하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해.

하지만 극단적 선택으로 병원에 온 사람은 대부분 성인들이지, 너 같은 소년은 없었단다. 그래서 너를 본 순간 무척 당혹스러웠어. 나는 응급 위장세척을 했고, 다행히 다음 날 너는 의식을 되찾았어. 자세한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병원에 있는 동안 너와 몇 번 이야기도 나눈 기억이 있단다.

어린 네가 얼마나 힘들었길래 그런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그런데 네가 들려준 얘기는 다소 의외였단다. 내가 보기엔 그냥 학교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 갈등이었거든. 하지만 네 얘기를 몇 번이고 곱씹어보면서 난 깨닫게 되었지. 사람은 대단하고 복잡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주 작은 가시로도 죽을 만큼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의 작은 가시가 누군가에겐 가슴을 후비는 칼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얼마 후 너는 퇴원을 했고, 나는 또다시 밀려오는 응급실 환자를 돌보며 파견생활을 하다 본원으로 돌아왔지. 그리고 몇 개월 후 그 병원을 다시 갈 기회가 있었는데, 너의 누나가 나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혹시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했는데, 누나가 전한 너의 편지를 읽으며 다행이라 생각했단다. 그 편지의 자세한 내용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 두 문장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구나.

“선생님 덕분에 새롭게 삶을 살게 되었어요. 저도 선생님처럼 의사가 될래요.”

네가 10대 중반의 소년이었던 것처럼, 나도 20대 중반의 전공의 2년 차 청년이었어. 어린 나이에 극단적 시도를 한 환자를 접한 건 네가 처음이었단다. 그건 내가 이런 상황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해. 그런 내가 너에게 무슨 대단한 말을 해줬겠나 싶어. 그래도 너는 삶의 의지를 다시 찾았고, 별로 해준 것도 없는 젊은 전공의에게 "선생님처럼 되겠다"는 감사 편지까지 써주었어. 그 말은 쳇바퀴 같은 당직 생활에 잠잘 시간조차 없던 20대 젊은 의사의 멍한 머리를 깨워주었단다. 그리고 30년 넘도록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

극단적 시도를 한 환자를 접할 때면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 생명과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과연 의사가 막을 권한이 있을까.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어디까지이고, 다른 사람이 그걸 막을 권한이 있느냐는 답 없는 질문이 떠오르곤 했었지.

하지만 네 편지를 받은 후 내 생각은 바뀌었단다. ‘아, 그렇구나. 사람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극단적 결정을 하기도 하지만, 그 순간에서 벗어났을 때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거구나. 생명이 갖고 있는 본질은 결국 살아가는 것이구나.’

누구나 힘들 때가 있기 마련이지. 그럴 때 곁에서 그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면 그것은 죽음과 삶이 바뀌는 순간이 될 수도 있겠지. 의사는 치료하기에 앞서 손 잡아 주는 사람이구나, 너는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지.

난 의사 '선생'이란 호칭에 대해 생각해 봤어. 사전적으론 먼저(先) 산(生) 사람이란 뜻이지만, 먼저 태어났다기보다는 세상을 먼저 경험했다는 의미일 거야. 의사는 신생아 울음소리 때부터 늙고 병들어 가는 것,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생로병사의 전 과정을 남들보다 먼저 경험하잖니. 그러니까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에게 선생 역할을 하고, 또 환자들도 의사를 선생이라 부르는 것이겠지. 하지만 아픔을 겪는 환자를 통해 오히려 가르침을 받는 게 의사란 생각을 너로 인해 갖게 됐어.

소년아.

보고 싶구나. 어떻게 성장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편지에 쓴 것처럼 의사가 되었을까. 어디서 무엇을 하든 유독 맑은 눈을 가졌던 너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널 다시 만난다면 고맙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 인생을 많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20대 젊은 의사에게 삶과 죽음에 관해 미리 알려주어서.

이상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건강증진센터소장·'뇌를 들여다보니 마음이 보이네' 저자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인이라면 누구든 원고를 보내주세요.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뉴스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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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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