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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금시대의 법과 도덕

입력
2021.03.29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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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

편집자주

우리나라 대표 원로지성이자 지식인들의 사상가로 불리는 김우창 교수가 던지는 메시지. 우리 사회 각종 사건과 현상들에 대해 특유의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세종 어진동 LH(한국토지주택공사) 세종특별본부 사옥 . 연합뉴스

세종 어진동 LH(한국토지주택공사) 세종특별본부 사옥 . 연합뉴스

근자에 정치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는 국민들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들이 많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도 LH 공사 관계인들의 부당한 토지 매매 행위는, 크게 볼 때는, 국가 질서의 기본을 흔들어 놓는 일이다. 오늘의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정책들이 부동산 가격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일인데, 그 정책 수행의 핵심에 있는 정부 기구가 LH 공사이다. 부동산에 관계되는 LH에 비슷한 불법 또는 반(半) 불법 사례는 그 외의 여러 공공기관에서도 계속 드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부동산에 관계되지 않는 사항에서도 법이나 규범에 어긋나는 일들이 쉼 없이 보도되어 나온다. 그리하여 기본적인 국가 질서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지는 것을 본다. 한동안 유행어처럼 들을 수 있는 말에, “이게 나라냐” 하는 말이 있었지만, 다시 한번 참으로 이 나라가 나라다운 나라인가 하는 생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딱한 일의 하나는 부동산 투기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있는 삶의 전략이라는 사실이다. 기회만 있다면 그것이 마음을 지배한다. 공무원과 일반 시민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다고 부동산 투기 또는 매매에 대한 관심이 쉽게 사라지겠는가?

관심의 원천적인 출발점은 주거에 대한 요구이다. 그것은 절실한 인간적 필요의 하나이다. 그것은 노년을 포함하여 장래의 삶을 위한 투자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도 있다. 경제와 소득의 지속적 보장을 기대할 수 없을 때, 그런 대로 믿을 수 있는 것이 부동산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더하여 부동산 열기가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생활 조건의 향상에 대한 희망이 식지 않기 때문이다. 그 관심이 정도를 지나치게 되면, 그것은 투기 열이 된다.

미국 역사에 '도금시대(鍍金時代)'라는 것이 있었다. 19세기 말 급격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일어난 과소비 또는 과시 소비의 시대를 풍자적으로 말한 것이다. 어떤 외부 관찰자는 우리 사회를 카지노 자본주의의 시화라고 부른다. 그런데다가,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지만, 큰 정의를 위해서는 작은 부정의 또는 잔학행위가 불가피하다는 이론이 있다. 사회정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 구호이다. 이 명분은 공적인 차원에서 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까지 활용된다. 그 영향의 하나는 인간 행위의 모든 영역에서의 도덕적 냉소주의가 침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시대적 혼란 가운데에도 다른 사례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권력 기구의 압력에 저항하면서 고위 공직자들이 관계된 불법 또는 부당 행위를 밝혀 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경우가 그러한 경우이다. 그의 강인하고 엄격한 자세는 법정신이 완전히 소실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법과 그 제도에 헌신하는 사람으로 어떤 이유에서든지 불법 행위를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더러 듣는 것은, 경제나 정치에 있어서의 커다란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 있어서의 사회 신뢰도가 낮다는 국제적인 평가이다. 법은 물론이고, 사회와 정치 질서는 윤리와 도덕에 의하여 뒷받침되지 않을 때, 참으로 인간적인 성취에 이르렀다고 할 수 없다. 경제 발전과 민주화에 이어 필요한 것은 도덕적 윤리적 발전이다.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는지는 간단히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숙고는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절실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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