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미용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A씨는 지난 2월 ‘반려견 스타일리스트’ 국가공인 자격시험 실기시험을 치르지도 못한 채 고사장에서 떠밀리듯 나와야 했습니다. A씨 남편 B씨는 “아내가 고사장에서 나오면서 연신 울기만 했었다”며 아내의 막막한 심경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A씨가 실기시험장에서 퇴실을 통보받은 이유는 그가 ‘장애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사장에 입실한 A씨는 시험 감독관에게 자신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고사 시 주의사항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감독관은 A씨에게 시험장에서 나가달라고 말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A씨에게 감독관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2조에서 규정한 장애인은 시험 응시자격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A씨는 감독관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A씨가 응시한 시험 공고문에는 장애인 응시 불가라는 안내는 없었으니까요. A씨가 미용 기술을 배우기 위해 수강했던 반려견 미용학원 역시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A씨가 이 점을 들어 항의했지만, 돌아온 협회 측의 답변은 “홈페이지에 명시돼 있다. 왜 공고문만 확인했느냐”는 말뿐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장애인 단체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장애벽허물기)은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반려견 스타일리스트 자격시험 규정은 장애인 차별”이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자 진정 다음 날인 24일, 한국애견협회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한국애견협회는 이메일을 통해 “장애인과 반려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만으로 제한을 두었으나 차별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A씨에게 사과했습니다. 아울러 A씨에게 “장애인 응시 제한 규정을 삭제했으므로 실기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며 이후의 시험 일정도 안내했습니다.
한국애견협회의 입장이 갑자기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1. A씨의 특수한 사정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인권위 진정 전까지 한국애견협회는 “위험 방지 차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협회는 “국가공인 전에 장애인이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는데, 반려인과 미용사가 소통이 안 되거나, 지적장애인 미용사가 개의 꼬리를 자르는 등 사고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서도 이 해명을 지지하는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A씨는 선천적인 장애인이 아닙니다. 과거 출산 과정에서 청력의 손실을 입고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남편 B씨는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을 뿐, 아내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태였다”며 직장 생활과 같은 일상생활도 가능했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A씨는 사람의 헤어 메이크업을 부업으로 했을 정도로 직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습니다. 그가 반려견 미용사를 꿈꾼 가장 큰 이유였죠. 남편 B씨는 “평소에도 아내가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을 손수 미용해 주는 등 소질이 있어 보여서 가족이 다 함께 청각 상실 이후 반려견 미용사로 일하는 것을 고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A씨는 미용학원에서의 실습도 문제없이 소화했다고 합니다.
현재 A씨는 청력이 급속도로 떨어져 최근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받았습니다. 남편 B씨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험장에서 퇴실 통보를 받은 뒤 아내의 우울증이 심해졌고, 청각도 악화된 것 같다”며 아내의 스트레스가 매우 높은 상태였다고 전했습니다.
2. 장애는 다양하고, 정도도 다르다
A씨는 직무수행 측면에서 반려견 미용사로서의 자격이 충분했습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근거이기도 하죠. 장애벽허물기 김철환 활동가는 “장애는 유형도 다양하고 장애를 갖게 된 경위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며 “일괄적으로 장애인의 응시 자격을 막은 것은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걸 드러낸 것”이라며 비판을 가했습니다. 동물권을 연구하는 변호사단체 PNR의 서국화 대표(법무법인 울림 변호사)도 이번 사건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눠 업계의 진입장벽을 세운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에 가깝다”며 “해당 규정이 그대로 유지되면 헌법소원까지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3. 청각장애인도 반려견 미용 충분히 가능하다
유튜브 ‘Seek the world’ 채널에는 한 청각장애인 반려견 미용사가 수어로 자신의 반려견 미용 과정을 설명하는 영상이 있습니다. 실제 현업에 종사하는 청각장애인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죠.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수의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권혁호 수의사도 비슷한 경험을 전했습니다. 그는 당시 자신이 근무하던 동물병원의 미용사 역시 청각장애인이었다면서 “그 미용사는 3개월 계약을 마치고 대형 펫숍 미용실로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습니다. 권 수의사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어느 곳이든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을 제한하면 업주에게 강한 처벌이 뒤따른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애견협회 관계자는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내부 검토 결과 관련 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됐다”며 “안전에 집중한 나머지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점 고려하지 못해 많은 분들께 죄송하다”고 재차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는 장애인의 자격 취득 기회는 열어두면서 안전사고 예방교육 등 사후 대처에 집중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다행히 A씨는 다시 시험을 볼 수 있게 됐지만, 이는 단순히 한국애견협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앞으로 반려동물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자격 시험은 계속 늘어날 겁니다. 향후에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업계 관계자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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