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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을 오해할 수밖에 없다

입력
2021.03.28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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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 남자가 혼자 집에 있다가 쓰러졌다. 한 시간 뒤 집에 돌아온 여동생이 컴퓨터 앞에 쓰러진 그를 발견했다. 아무리 깨워도 반응이 없었다. 여동생은 울면서 구급차를 불렀다. 그는 응급실 중환 구역으로 실려와 누웠다. 30대 초반의 남성은 간신히 숨만 쉴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 떨어져 있었다. 얼굴에 뒤덮인 토사물을 걷어냈지만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뇌가 눌리거나 손상을 입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전신을 살펴보았지만 외상의 흔적은 특별히 없었다. 혈압은 극도로 높았다. 뇌출혈 같았다. 기도를 확보하고 CT실로 직행했다. 예감은 맞았다. 뇌간에 커다란 뇌출혈이 보였다.

"동생분, 환자의 진단은 뇌출혈입니다. 의식을 잃은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대단히 좋지 않은 부위에 뇌출혈이 생겼습니다.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 이 정도 상태라면 대체로 사망하거나 식물인간으로 남습니다.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해봐야 합니다. 너무 젊은 나이지요. 평소 건강하거나 질환이 없어도 생길 수 있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힘드시겠지만 일단 받아들여야 합니다."

두 시간 전까지 정상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동생은 아무것도 믿기지 않는 듯했다.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보호자에게 설명하자 대기실에 갑자기 경찰이 들어왔다. 방금 실려온 30대 남성의 담당의를 찾았다. 아래층에서 폭행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나는 이분이 동생이고 혼자 의식 잃은 환자를 발견했다고 했다. 경찰은 하여간 신고되었으니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저는 정황을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뇌출혈은 절대로 외상으로 생기는 종류가 아닙니다. 겉으로 외상이 없었고 두개골 골절이 없으며 출혈은 뇌간 부위입니다. 외부 충격으로 생기기엔 불가능합니다. 뇌출혈로 의식을 잃으면 환자는 발버둥칩니다. 주변 물건을 걷어차거나 무엇인가 부서질 수도 있겠지요. 그 소리에 신고했을 것입니다. 수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폭행 가능성은 대단히 낮아 보입니다."

보호자와 경찰을 남겨놓고 중환 구역으로 돌아왔다. 환자는 의식이 없었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환자에게 폭행 신고가 들어왔다. 분명히 오인 신고였다. 하지만 선의일 것이다. 위층에서 평소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렸다. 폭행을 의심할 수 있다. 모른 척하지 않는 것이 조금 더 나은 사회인의 자세일 것이다. 굳이 폭행이 아니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 수 있다. 경찰은 현장에 출동해 폭행이 있다면 멈추고 진상을 조사하거나 도움을 줄 것이다. 그래서 신고는 사회적으로 옳은 행위였다. 나라도 그렇게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즉시 바닥으로 넘어져 뒹굴었다. 사경을 헤매며 집기를 부수거나 모니터를 넘어뜨렸을 것이다. 의식의 영역에서 벗어난 상태로 그는 한 시간을 누워 있었다. 이 일이 '폭력 사건'으로 조사되는 것은 왜 이렇게 어색했을까. 벽 하나를 둔 사람 사이의 온도 차이가 너무 커서였을까. 불행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건넨 선의라서 그토록 어색했던 것일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사에는 불행이 발생한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을 오해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의 호흡이 점점 약해졌다. 아마 오늘을 못 넘길 것 같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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