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재포장, 왜 '띠지'를 안 쓰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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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재포장, 왜 '띠지'를 안 쓰는 걸까요?

입력
2021.03.31 04:30
수정
2021.03.3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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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4, 5개 라면을 전부 비닐로 밀봉 재포장
종이 띠지 만들어 해봤더니, 아무 문제 없어
4월 재포장 금지 시행, 라면 등은 빠져서 허술

[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7>라면 재포장

편집자주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그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한국일보가 농심·오뚜기·삼양식품·팔도 등 주요 라면 업체의 제품에 묶음 포장 비닐을 벗긴 뒤 직접 제작한 띠지를 둘러 진열한 모습. 띠지에 제품 영양성분 표시와 바코드까지 충분히 넣을 수 있었다. 배우한 기자

5분만 투자하면 얼큰한 국물과 면발을 즐길 수 있는 국민음식 라면. 맛과 양, 가격 모든 면에서 사랑받지만 포장만큼은 예외다.

낱개 제품만으로도 겉비닐과 스프 비닐 2개가 나오는데, 낱개제품 4, 5개를 굳이 비닐로 한번 더 감싸서 출고한다. 대형마트 벽면에는 재포장 라면묶음이 산처럼 쌓여 있다.

그런 재포장이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이라면 폐기물이 아무리 많이 발생하더라도 용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띠지 하나로 묶을 수 있는데도 기업들의 무신경 때문에 막대한 비닐 쓰레기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시중에서 파는 라면 재포장 묶음. 비닐로 완전히 밀봉해 감싼 형태이다. 배우한 기자

지난해 4월 20일, 연세대 원주산학협력단은 5개월간의 연구용역과제를 수행한 뒤 '폐기물 감량을 위한 포장제품의 재포장 기준 등 마련 연구' 최종 보고서를 환경부 장관에게 제출했다. 그 내용에는 라면 묶음포장을 지적하며 ‘전체를 플라스틱 필름(비닐)으로 덮는 대신 띠지 등을 활용하라’고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띠지를 사용하는 라면업체는 등장하지 않았으며, 환경부도 재포장 금지 대상에서 이들을 제외시켜 줬다. 이 재포장 금지법은 3개월의 계도기간을 거쳐 4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기업과 정부가 무시한 '라면 띠지 재포장'을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이 한번 실행해 보았다. 실제로 띠지 사용이 소비자의 편의성을 해치는지, 적재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지 파악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포장지 사용량은 5분 1가량 줄었고, 소비자의 구매나 운송 과정에서도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넓이 5cm 종이 띠지로 묶음 효과 충분, 높이 쌓아도 문제없어

농심 신라면의 5개입 비닐 포장과 띠지 면적 비교. 띠지를 사용할 경우 6면 전체를 비닐로 덮는 것에 비해 약 5분의 1 정도 면적으로 묶음 포장을 할 수 있다. 배우한 기자

띠지 넓이는 5cm로 제작했다. 일반 라면의 한 면을 약 3분의 1 정도 덮는 두께다. 길이는 라면 둘레에 따라 약 60cm 안팎으로 잘라서 사용했다. 재질은 플라스틱 코팅이 되어 있지 않은 종이(아트지)를 사용했다.

처음엔 종이를 사용하면 접착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6면을 모두 감싸 라면 4, 5개를 밀봉해 묶어두는 비닐포장과 달리, 띠지를 사용하면 묶음이 헐거워지거나 중간에 끼어 있는 개별제품이 빠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포장재 업체에서도 “아트지에 사용하는 접착제가 약해서 걱정된다”며 좀 더 접착력이 강한 플라스틱(PVC) 재질을 추천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종이 띠지만으로도 라면을 단단하게 묶을 수 있었고, 끄트머리를 잡고 거칠게 흔들어도 틈이 벌어지지 않았다. 띠지 두께를 3cm로 줄이거나, 전면에 도포돼 있는 접착제를 일부에만 묻혀도 충분했을 것 같았다.

띠지를 두른 라면 묶음은 끄트머리를 잡고 세차게 흔들어도 튼튼했다. 개별 봉투에 여유 공간이 있어서 묶음을 손으로 집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현유리 PD

포장재로서의 기능도 충분했다. 라면 묶음이 흐트러짐 없이 직육면체 모양을 유지했기 때문에 여러 개를 쌓아 진열해도 미끄러지거나 떨어지지 않았다. 또 띠지 겉면에 회사 로고와 영양 정보, 바코드를 새겨 소비자들이 구매하기 쉽게 만들 수도 있었다.

묶음 제품의 비닐 포장재에 비해 폐기물이 약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재질 측면에서도 플라스틱 코팅이 돼 있지 않아 비교적 재활용이 용이해 보였다. 현행 라면 포장 비닐은 재질ㆍ색깔 탓에 물질재활용률이 30%밖에 안 된다. 나머지 70%는 고형연료제품(SRF)으로 제작해 태워 없애는데,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라면 5개가 밀봉 재포장된 시중 상품과 한국일보가 띠지를 이용해 5개를 묶은 제품. 김현종 기자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묶음 포장은 특정 제품의 대량구매를 유도함으로써 매출을 올리려는 판촉 측면이 크다”며 “불필요한 포장인 만큼 아예 없애는 게 최선이지만 고집해야 한다면 띠지라도 사용하는 등 책임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면 재포장이 규제를 피하기까지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 앞에서 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환경부도 재포장 문제에 칼을 빼들었지만 라면 묶음 포장은 규제에서 제외됐다. 시민사회에서는 라면 업계를 중심으로 한 반발 때문에 제도가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는 지난해 1월 ‘제품의 포장재질ㆍ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제품포장규칙)’을 개정했다. 재포장을 하지 않도록 규정한 조항(11조)의 내용을 '자제해야 한다'에서 '해서는 안 된다'로 바꿨다. 재포장이 불가피한 경우는 환경부 고시로 예외를 둘 수 있게 했다.

‘불가피한 재포장의 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같은 해 6월 환경부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묶음 할인을 하면 재포장이고 할인을 하지 않으면 재포장이 아니라는 부분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일부 경제지를 필두로 "정부가 묶음 할인 행사를 금지한다"며 비판했고, 환경부가 기자 개인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논란이 커졌다. ‘재포장 논의’가 ‘경제지-환경부 설전’으로 변질된 것이다.

환경부가 띠지·고리 사용 같은 포장 형태가 아니라, 할인 여부를 재포장 기준에 넣음으로써 본질이 '폐기물 감축'에서 '할인 마케팅 제한'으로 흐려진 이유도 컸다.

지난해 6월 환경부가 재포장 기준을 마련해 배포한 가이드라인 내용. 전반적으로 재포장을 규제한다는 내용이지만, 예시로 제시한 항목 중 1+1 할인의 경우 규제 대상에 포함되고(위 빨간 네모), 가격행사를 하지 않은 채 묶음 포장만 하면 재포장이 아니라는 부분(아래)이 논란을 일으켰다. 환경부 제공

이후 환경부는 기준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새 기준을 담은 환경부 고시는 약 3개월간의 관계자 협의를 거쳐 지난해 12월 제정됐다. 크게 △낱개로 판매하는 제품을 기획 행사를 위해 다시 포장하는 경우와 △3개 이하 제품을 묶음 포장하는 경우가 금지 대상이 됐다. 또 6면을 전부 비닐로 덮는 것이 아니라, 띠지ㆍ고리 등으로 연결할 경우 묶음 포장이 가능하도록 했다.

라면 묶음 포장은 전부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라면은 보통 4, 5개 제품을 묶는데, 금지 기준이 ‘3개 이하’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또 라면 5개를 ‘4+1(1개는 무료)' 형태로 묶는 재포장 역시 규제를 받지 않는다. ‘환경부 장관이 정상제품 포장과 포장 방법이 동일한 것으로 인정하는 경우’를 예외로 한다는 조항(4조 4호) 때문인데, 이를 적용 받는 품목은 라면밖에 없다. 사실상 ‘라면특혜조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마트에 '5+1' 행사 라면 제품이 진열돼 있다. 포장제품의 재포장 예외기준 고시에 따르면 'N+1' 형태로 포장한 제품은 모두 제재를 받지만, '정상 포장과 포장 방법이 동일할 경우 예외로 한다'는 예외조항 탓에 라면 'N+1' 제품은 예외다. 이 조항을 적용받는 제품은 라면밖에 없다. 김현종 기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당시 경제지 보도 배후에 라면 업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정도로 라면 업계의 반발이 거셌다”며 “화장품ㆍ생활용품 업체는 되레 ‘포장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규제 도입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화장품ㆍ생활용품의 묶음 행사는 유통마트가 먼저 요구해 제조업체가 별도의 묶음 포장 제품을 생산하는 식인데, 라면은 제조사가 자발적으로 묶음행사를 하는 경우였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갈렸다는 뜻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장조사에서 대부분의 묶음 포장이 3개 이하였고, 4개 이상은 운송운반을 위해 포장이 필요할 것 같아 3개를 기준으로 마련한 것”이라며 “라면을 예외로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문가ㆍ시민사회ㆍ산업계 협의체 논의를 통해 정했다”고 말했다.

라면업계 "띠지 도입 계획 없다"

정부 규제가 없더라도 기업들이 스스로 나설 수도 있지만, 라면 업계는 묶음 포장 형태를 바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폐기물 감축이라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비닐 포장이 유통·적재하기 편하고 △포장 설비를 바꾸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농심은 "기존 자동화 설비에서는 띠지 포장이 안 돼서 띠지를 도입할 경우 전부 수작업을 해야 해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며 "묶음 포장지에 재생용지를 사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뚜기는 "전 제품의 90% 이상을 묶음 포장으로 판매해 유통 과정에서 비닐 포장이 필수적"이라며 "해충이나 벌레의 침투가 있을 수도 있어 비닐 포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양식품은 "비닐 포장이 쌓기 편리하고 비용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며 "띠지를 도입하려면 수작업을 해야 해 시간과 비용이 더 든다"고 말했다. 팔도는 "띠지보다는 비닐 포장이 보기에도 좋고 쌓기도 편해 활용한다"며 "띠지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붙이다 보니 비닐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밀봉 포장은 기계화가 가능하고 띠지 포장은 수작업을 해야 한다는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실제 띠지 포장 기계가 시중에 나와 있고, 다른 업계는 비용을 들여 설비를 바꿨다. 결국 비용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이들 업체들의 당기순이익은 급증해 △농심 1,490억 원(전년 대비 109.7% 증가) △오뚜기 1,103억 원(10.6% 증가) △삼양 679억 원(13.2% 증가) 등이었다.

2, 3개 묶음만 금지, “기업들 자발적 개선 이어가야”

4월 1일부터 시행되는 재포장 금지법에 따라 2, 3개 제품을 묶던 세제ㆍ화장품ㆍ우유ㆍ식용유 등은 제재를 받는다. 환경부는 현행 제도로 연간 약 2만7,000톤의 폐비닐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게 변한 품목은 우유다. 서울우유·매일유업·남양유업은 기존에 전체를 비닐포장 하던 것에서 규제를 받지 않는 띠지로 바꿨다. 특히 매일유업, 서울우유는 일부 제품에 종이 띠지를 사용하고 있다.

아직은 유통대리점에서 띠지를 씌우는 경우가 많지만 서울우유는 띠지 포장을 위한 자동화 설비를 마련해 일부 제품에 적용하고 있다. 푸르밀우유는 2017년부터 띠지 묶음을 일부 자동화했고, 올해 초부터 전 제품에 띠지 공정을 자동화했다. 띠지 재질도 플라스틱 계열에서 4월부터 종이로 바뀐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돼 있는 우유 2개 묶음 제품들이 띠지로 포장돼 있다. 김현종 기자

그러나 4개 이상의 제품 묶음들은 재포장 금지법이 시행돼도 여전히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다. 라면 외에 스낵 여러 개를 묶어서 비닐로 다시 밀봉한 과자 재포장이 대표적이다.

대형마트에 진열돼 있는 재포장 금지 예외 대상 제품들. 사진 위쪽은 4개 이상을 포장한 과자류이고, 아래쪽은 1개 제품을 다시 포장했지만 규제를 받지 않는 제품들이다. 김현종 기자

이 밖에 1개 제품을 또다시 플라스틱으로 감싼 제품도 계속해서 등장할 예정이다. 재포장 기준이 3개 이하 제품을 ‘함께’ 묶은 경우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같은 포장재를 사용해 2개 제품을 묶으면 재포장이 되어 불법이지만, 1개 제품만을 담으면 단일제품 포장규칙상 허용되는 2차 포장으로 인정된다.

재포장 금지법 적용에서 제외된 품목들도 기업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자 재포장 등도 라면처럼 띠지만으로도 충분하며, 실제 띠지로 묶음 출시되는 것들도 있다.

윤명 사무총장은 "어렵게 마련한 제도가 안착될 수 있도록 관계당국의 면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며 "규제에서 예외가 된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포장재 감축을 위한 노력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송진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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