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만 노려 침 뱉고, 때리고... 현실불만 외톨이들 '위험한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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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만 노려 침 뱉고, 때리고... 현실불만 외톨이들 '위험한 폭주'

입력
2021.03.29 04:30
수정
2021.03.3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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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면식 불특정 여성 괴롭힘 범죄
묻지마 침뱉기 '상봉동 딱딱이' "여자는 연약하니까"
"그냥 재미로" "여자 보면 때리고 싶어" 곳곳서 테러
여성계 "여성혐오에 기반한 명백한 폭력범죄" 규정
범죄 전문가 "현실불만형 범죄, 필벌주의 확산해야"

편집자주

‘묻지마 범죄’라는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이상범죄’가 늘고 있다. 범행 동기는 물론 방식과 대상도 쉽게 납득하기 힘든 괴기한 범죄들이다. 이상범죄 증가는 결국 우리 사회가 이상 사회로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경고다. 한국일보는 ‘신(新) 이상범죄의 습격’ 연재를 통해 사회적·심리학적 부검을 시도한다. 범죄를 막을 지혜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면식이 없는 불특정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괴롭힘 범죄가 곳곳에서 일어나면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침을 뱉는 남자가 있어요."

지난해 8월 21일 오후 3시쯤 서울 중랑구 상봉파출소에 황당한 신고가 들어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유행하는 와중에 여성만을 노려 침을 뱉고 도망가는 남성이 있다는 것.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 나아가 감염병 테러일 가능성도 있었다. 현장 출동한 파출소 대원들은 용의자의 활동 범위로 추정되는 상봉역, 사가정역 일대를 수색한 끝에 피해자가 진술한 인상착의와 같은 김모(23)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

김씨를 넘겨받은 중랑경찰서 형사들은 112 신고 내역과 지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커뮤니티에서 그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도 당했다"는 유사피해 증언이 쏟아졌고 심지어 지역 주민들은 이미 그를 '중랑구 히드라' '상봉동 딱딱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형사의 추궁을 받은 김씨는 "내가 한 일이 맞다"고 시인했다. 당시 김씨의 체온은 37도가 넘었다. 경찰은 즉시 119를 불러 김씨에 대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진행했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었다.

경찰은 곳곳에서 모은 제보들을 하나하나 피해장소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과 대조하며 분석해 지난해 7~8월 김씨로부터 피해를 입은 여성 23명을 특정할 수 있었다. 그중엔 임신부도 있었다. 김씨는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 젊은 여성을 발견하면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 피해자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면서 크게 '푸욱' 하고 침 뱉는 소리를 내 놀라게 한 뒤 잽싸게 도망쳤다. 실제로 침을 뱉거나 '딱딱' '뿡뿡' 소리를 내기도 했다. 도주 중엔 뒤돌아 피해자가 당황하거나 화내는 반응을 관찰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한 지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커뮤니티에 '중랑구 히드라' '상봉동 딱딱이'로 통칭되는 김씨에게 침을 맞는 피해를 당했다는 제보글이 올라왔다. 페이스북 '중랑구 대신 전해드립니다'

'분명 성격이 비뚤어지지 않았을까.' 이렇게 짐작하며 신고 이튿날 김씨를 조사한 형사들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김씨는 다소 순진해 보이는, 평소 성실한 대학생이었다. 다만 학창 시절부터 친구가 없었고 군 복무를 할 때는 괴롭힘을 당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제대 후 학업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었다. 그는 범행 동기를 묻는 질문에 "우연히 지나가는 여성에게 '딱딱' 소리를 내봤는데, 놀란 여성이 내게 관심을 주고 반응하는 것이 기분 좋았다"고 했다.

처음엔 걸어다니며 범행을 저지르던 김씨는 잡히지 않을 방도를 궁리한 끝에 서울 시내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떠올렸다. 관심 받으려 하던 행동이 점차 계획 범죄로 진화한 셈이다. 여성만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서는 "연약한 여자들에게는 잡히지 않을 것 같았고, 남자에게 침을 뱉으면 오히려 내가 피해를 보게 될 것 같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코로나19로 시민 불안이 큰 시기에 전파 의심 행위를 했다는 점을 엄중히 여겨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결국 불구속 기소된 김씨에 대해 올해 1월 서울북부지법 형사11단독 정완 판사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옥살이는 면했지만 징역형 선고로 김씨는 공무원 임용, 해외출국 등에 제약을 받게 됐다. 전과 없던 20대 대학생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처벌이다. 정 판사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여성만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추격을 어렵게 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자전거를 이용한 점 등 죄질이 상당히 무겁다"고 판시했다.

음담패설, 뒤통수 가격, 커피 뿌리기…"나보다 약하니까"

김씨에게 당한 피해자들이 지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커뮤니티에서 경험담을 나누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페이스북 '중랑구 대신 전해드립니다

면식이 없는 불특정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괴롭힘 범죄는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인천에서는 젊은 여성 4명에게 아무 이유 없이 가래침을 뱉은 30대 남성 A씨가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재미있어서 장난으로 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인천지법 형사11단독 김이슬 판사는 "피해자가 모두 젊은 여성인 점에 비춰볼 때 '묻지마 혐오범죄'로 의심된다"며 징역형을 내렸다.

지난해 말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에서는 '통화맨'으로 불리는 40대 남성 B씨가 출몰해 여성들이 불안에 떨었다. B씨는 출근길 젊은 여성에게 바짝 붙어 통화하는 척하면서 음담패설과 욕설을 일삼다 경범죄처벌법상 불안감 조성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B씨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해당 혐의 처벌은 범칙금 5만 원. '처벌이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이런 부류의 범행을 저지르면 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하는 경범죄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올해 1월에는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일대에서 여성 4명의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다닌 20대 남성 C씨가 폭행 혐의로 구속됐다. 취업준비생인 범인은 체포 후 "여자만 보면 때리고 싶다"고 말했다. 30대 남성 D씨는 "눈이 마주쳤는데 기분이 안 좋다" 등의 이유로 여성만 골라 때렸다가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상해 및 폭행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최근 경남 창원에서는 자전거 탄 남성이 여성들에게 커피를 뿌리고 달아나는 사건이 벌어져 경찰이 추적 중이다. 확인된 피해자만 6명, 모두 20대 여성이다.

2010년에서 2018년까지 성별에 따라 ‘범죄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답한 비율. 여성이 남성보다 범죄의 대상이 될 것에 대한 불안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 사회조사


현실불만형 묻지마 범죄의 위험성

범죄학계에서는 이들의 행위를 '묻지마 범죄' 유형 중 '현실 불만형'으로 보고 있다. 이 유형은 '외톨이형' '화풀이형'으로도 불린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형정원)이 발표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현실 불만형은 묻지마 범죄의 다른 유형들(정신장애형, 만성 분노형)과 비교해 주로 사회에 대한 불만, 자신의 처지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범죄를 저지른다. 대체로 어린시절이 불우하고 대인관계가 양호하지 못하다는 특성도 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현실 불만형 범죄는 일종의 성격장애로 볼 수 있는데 실업 등 사회경제적 문제에 따른 스트레스와 불만에 취약한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자들은 자신조차도 범행 동기를 명확히 인식하고 설명하기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일상생활에서 저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인 스트레스와 분노를 해소하려 모르는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 사례가 다수다. "재미로 그랬다" "이유는 없다"고 진술하는 이들의 경우에는 쾌락을 추구하거나 자신의 남성성 혹은 우월성을 과시하고자 폭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범행 수법은 제각각이라도 세상에 불만 많은 이들이 여성을 표적으로 삼는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범행을 저질러도 자신들을 쉽게 잡을 수 없는 약자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스스로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여성의 불안감을 이용한 폭력행위"라며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존중하지 않고 '하등한 존재' '이런 행동을 해도 괜찮은 존재'로 여기는 명백한 여성혐오에 기반한 범죄"라고 규정했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일어난 강력범죄의 피해자 성별. 여성이 80%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경찰청 범죄통계


재범률 높아…강력범죄 안 되게 관리해야

여성에게 침을 뱉는 등의 범죄는 행위만 놓고 보면 큰 범죄라고 보기 어려울지 몰라도, 일상 깊숙이 침투하는 데다가 보다 심각한 범죄로 향하는 전조가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범죄심리분석관인 윤정아 부산경찰청 과학수사관리계 경장은 "흔히 말하는 '깨진 유리창 이론'에서 보듯이 별것 아닌 것 같은 비행이 누적되다 보면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위험하다"며 "특히 묻지마 범죄는 피해자가 범행을 유발하는 요인이 없는데도 범죄가 발생하는 만큼 사회적 불안감이 크게 조성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묻지마 범죄는 재범률이 매우 높다. 형정원 연구에 따르면 해당 범죄를 저지른 이들 가운데 75%는 이미 범죄 전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소해 보였던 범죄 행위가 인명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로 번지도록 방치한다면 누구보다 여성들의 안전이 크게 흔들릴 것이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살인, 강도, 성폭력 등 강력범죄 피해자의 80% 이상이 여성이었다.

다행히 불특정 여성을 괴롭히는 범죄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지는 분위기다. 수사기관에서는 이런 범행이 최근 들어 특별히 늘어났다기보다는, 이전엔 범죄라 생각하지 못하고 '재수 없었다'고 치부했을 사건들에 대한 신고량이 늘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2016년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은 이런 범행에 대한 경계심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전문가들은 "유사한 범행 사례가 많이 드러날수록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범죄 예방 효과도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강남역에서 2016년 5월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에 희생된 여성을 추모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여성을 표적으로 삼은 무차별 범행을 근절하려면 처벌 강화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윤정아 경장은 "엄벌주의도 중요하지만 '설마 이것까지 수사가 되겠나' 싶은 범죄도 꼭 처벌된다는 필벌주의 인식을 확산하는 것이 범죄 억제와 예방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봤다. 여성혐오 범죄를 낳는 우리 사회의 심층구조부터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공정식 교수는 "주로 범행 전력이 있는 이들의 행위가 반복되는 만큼 강력범죄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형벌 강화가 능사는 아니다"라며 "책임은 묻되 잘못된 가치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 등 구조적 처방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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