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자들의 ‘주택 사랑’은 여전했다.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위해 실거주 목적의 1채를 제외하곤 처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청와대의 메시지에도 올해 재산공개 대상 고위공직자의 5명 중 1명은 주택을 2채 이상 갖고 있었다. 고위공직자들도 투기에 나섰을 것이란 일각의 우려와 달리, 3기 신도시 대상지에 토지를 갖고 있는 이는 3명에 그쳤다. 그마저도 오래 전 상속받거나 매매한 경우라 투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25일 공개한 2020년 12월 31일 기준 정기 재산변동 사항에 따르면 부처 고위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장 등 재산이 공개된 중앙 부처 재직자 759명 중 집을 2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는 148명(19.5%)이었다. 상가와 근린생활시설, 복합시설은 제외하고 공직자 자신과 배우자 명의로 된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단독주택, 오피스텔을 집계한 수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 고위공직자 중 다주택자는 한 채만 남기고 매각해야 한다”고 직접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정부 지침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부처 장관 중에선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이 2주택자였다. 그는 과거 재직했던 세계해사대(WMU)가 위치한 스웨덴 말뫼와 부산 수영구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다주택자에 이름을 올렸던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를 매도하면서 1주택자가 됐다. 지난해 신설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장관급)의 최영진 부위원장은 서울 송파구 문정동 소재 아파트와 세종시 아파트를 갖고 있다고 신고했다.
다주택 사랑은 산하 기관으로 내리 물림됐다. 정경득 해양수산부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감사위원장은 6채의 주택을 신고했다. 본인 명의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1채, 배우자 명의로 경기 성남ㆍ평택ㆍ화성에서 다가구주택 2채와 오피스텔 3채를 갖고 있었다.
윤태진 농림축산식품부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 전 이사장은 5주택자였다. 그는 경기 안양 동안구 소재 아파트 3채와 서울 강서구 등촌동 오피스텔 1채,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경기 의왕시 신축 아파트 1채를 소유하고 있다. 같은 부처 산하의 박봉균 농림축산검역본부장은 배우자와 함께 경기 수원에 3채, 강원 강릉에 1채의 아파트를 갖고 있다고 신고했다.
대학 총장의 집 사랑도 여전했다. 이번에 재산이 공개된 교육부 산하 대학 총장·부총장 63명 중 19명(30.2%)이 다주택자였다. 강원대 윤정의 삼척부총장은 강원 삼척에 전세로 살면서 본인 명의의 서울 강남구 개포동 아파트 2채, 배우자 앞으로 강남구 대치동 오피스텔 1채를 갖고 있었다. 이동훈 서울과학기술대 총장은 서울 서초구와 광진구에 아파트를, 노원구 중계동에 오피스텔을 소유했다.
3기 신도시에 편입된 토지를 보유한 공직자는 박성재 이북5도청 황해도지사(경기 광명), 최성호 방송통신위원회 사무처장(경기 남양주),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경기 하남) 등 3명이었다. 그러나 박 원장의 하남 토지는 1988년에 배우자가 상속받은 것으로 나오는 등 최근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땅 투기와 관련성은 없었다.
이날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여전히 다주택자가 많은 것으로 확인되자, 정부는 가뜩이나 좋지 않은 부동산 민심이 악화할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15명의 재산공개대상자 중 4명이 다주택자로 나온 국무총리실은 이례적으로 설명자료를 내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은 최근 주택을 처분해 1주택자가 됐으며 나머지 3명도 상속 등으로 다주택자가 된 것”이라며 “이들 역시 모두 보유 주택 매도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정부 정책 기조도 있기 때문에 솔선수범해 다주택을 매각하는 게 공직자로서의 품위를 지키는 일”이라며 “청와대가 다주택을 보유한 고위공직자의 주택 처분을 언급한 지 1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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