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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소설가는 우연히 스페인 요리에 꽂혀 연남동에 '돈키호테의 식탁'을 차린다. ⓒ이재안
큰 기업의 대표도, 동네 야채가게 청년도, 누구라도 에세이의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낮아진 출판 장벽을 넘어 저마다 자기 삶의 정수를 한 권에 담아낸다. 그러나 문학 작가는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에세이 저자다. 문학 작품보다는 한결 친근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작가들의 개인적인 관심사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김소연의 ‘마음사전’,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김영하의 ‘보다’ 같은 에세이들이 그렇게 독자 곁에 오래 남아 사랑받은 대표적인 에세이다.
최근 나란히 출간된 천운영 소설가의 ‘쓰고 달콤한 직업’, 이승희 시인의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도 이런 작가 에세이의 계보를 잇는 책들이다. 온갖 흥미로운 주제의 에세이가 널린 요즘, 작가 에세이라고 해서 제대로 된 콘셉트 없이 독자 마음을 사로잡기는 어렵다. 두 권의 책은 각각 식탁과 식물을 경유해 삶의 철학을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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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산문 '쓰고 달콤한 직업', 이승희 산문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쓰고 달콤한 직업’은 천운영 작가가 실제로 스페인 가정식 식당 ‘돈키호테의 식탁’을 운영했던 경험을 쓴 책이다. 여기에다 요리를 하며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곁들여 풍성한 한 상을 차려냈다.
2000년 등단한 후 ‘바늘’, ‘명랑’, ‘생강’ 등 여러 작품집을 내며 소설가로 활발하게 활동해오던 작가는 우연히 스페인에 갔다가 그곳 요리에 푹 빠진다. 스페인 요리 유학까지 마친 뒤 서울 연남동에 ‘돈키호테의 식탁’이라는 식당을 차린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차린 식당 영업은 쉽지 않았고 좌충우돌 끝에 2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러나 “오늘 내가 소진한 것은 냉장고에 든 음식 재료들이 아니었구나. 어떤 기회, 어떤 위안, 어떤 고마움, 어떤 감동”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식당 운영의 경험은 음식과 사람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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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시인(왼쪽)과 시인의 식물들. 폭스코너 제공
“세상으로부터 밀려나고 단절되었다는 생각으로 외로울 때 식물은 저의 연두를, 저의 연두색 손가락을 건네주었다.”
1999년 등단해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등의 시집을 낸 이승희 시인은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에서 식물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고백한다. 식물이 살 수 없는 집이 싫어 마당 있는 구옥으로 이사한 시인은 때론 시를 읽어주고 라디오도 들려주며 반려식물들과 동고동락한다. 달리아, 달개미, 앵두나무 등 32종 식물들이 소개되는 식물도감이면서 까칠하고 고독하지만 식물들에게만은 한없이 다정한 시인의 내밀한 편지이기도 하다. 식물 하나하나와 관계 맺는 순간이 시인만의 섬세하고 감성 어린 필치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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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 '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 최정화 '책상 생활자의 요가', 백수린 '댜정한 매일매일'
이 외에도 미식가로서의 감각을 십분 발휘한 한은형 소설가의 ‘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 요가 수련 5년 차로서 독자를 요가와 명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최정화 소설가의 ‘책상 생활자의 요가’를, 유난한 빵 애호가로서 빵과 책을 굽는 마음을 담은 백수린 소설가의 ‘다정한 매일매일’ 등도 최근 몇 달 사이 출간된 에세이다. 작가들의 이유 있는 외도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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